석유 고갈에 전력망 붕괴… 트럼프식 봉쇄와 베네수엘라 수출 중단이 불러온 비극
국제 유가 급등 속 외화 부족 겹치며 에너지 안보 마비… 미·쿠바 갈등 '시계제로'
지정학적 갈등과 강력한 경제 제재가 맞물리며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가 국가적 기능 마비 상태에 빠졌다.
국제 유가 급등 속 외화 부족 겹치며 에너지 안보 마비… 미·쿠바 갈등 '시계제로'
지정학적 갈등과 강력한 경제 제재가 맞물리며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가 국가적 기능 마비 상태에 빠졌다.
이미지 확대보기이번 사태는 단순한 전력난을 넘어 미·쿠바 관계의 악화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붕괴가 신흥국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비축분 0%의 절망, 하바나 뒤덮은 암흑과 "불을 켜라"는 외침
쿠바 전력 체계가 사실상 가동 중단 상태인 '블랙아웃'에 빠지며 시민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 하바나 시내 곳곳에서는 수백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쓰레기를 태우고 냄비를 두드리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번 시위는 지난 1월 에너지 위기가 본격화된 이래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로 평가받는다.
비센테 데 라 오 레비(Vicente de la O Levy) 쿠바 에너지광업부 장관은 국영 TV에 출연해 국가 에너지 시스템의 완전한 파산을 공식 선언했다.
오 레비 장관은 "현재 쿠바 전역의 전력망을 돌릴 수 있는 연료와 디젤이 전혀 없는 상태"라며 "비상 상황을 대비한 최소한의 예비 전력과 연료 비축분마저 바닥나 전력망이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하바나 내 대다수 구역은 하루 중 2시간에서 4시간을 제외하고는 전력 공급이 완전히 차단된 실정이다.
시위 현장에 있던 로이터 통신 취재진은 전기가 잠시라도 들어오는 지역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오지만, 다시 암흑이 찾아오면 시위가 격화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현장의 긴박함을 전했다.
에너지 안보의 붕괴, 미국의 '석유 봉쇄'와 베네수엘라 공급망 절단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지난 1월, 쿠바에 석유를 수출하는 국가에 강력한 무역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시행하며 수십 년간 이어온 대(對)쿠바 봉쇄 수위를 한층 높였다.
특히 결정적인 타격은 핵심 우방국인 베네수엘라로부터의 공급 중단이었다. 지난 1월 미군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압송하면서, 쿠바 에너지의 젖줄이었던 남미발 석유 공급선이 완전히 끊겼기 때문이다.
시장 분석가들은 쿠바가 그간 베네수엘라산 원유에 의존해 전력의 상당 부분을 생산해 왔으나, 이 경로가 차단되면서 대체 공급처를 찾지 못한 것이 치명적이었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이후 쿠바에 원유를 인도한 대형 유조선은 지난 3월 70만 배럴을 운송한 러시아 국적의 '아나톨리 콜로드킨(Anatoly Kolodkin)'호가 유일하다.
미국 정부는 이를 인도적 조치라고 설명했으나, 쿠바 전체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수준으로 확인됐다.
중동 전쟁의 유산, '자원 무기화'가 신흥국에 던지는 경고
쿠바 정부는 부족한 연료를 확보하기 위해 국제 시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현실은 냉혹하다.
오 레비 장관은 연료 수입을 위한 협상을 지속하고 있지만,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요동치고 물류 흐름이 복잡해지면서 모든 협상이 사실상 중단되거나 난항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강경한 대외 정책과 글로벌 분쟁이 맞물리며 쿠바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쿠바 공산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군사적 조치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지정학적 리스크는 최고조에 달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에너지 부족으로 인한 민생 파탄은 곧 정권의 정당성 위기로 직결된다"며 "외부로부터의 에너지 공급이 재개되지 않는 한 하바나의 밤은 더 길어질 것이며, 이는 카리브해 지역의 체제 불안을 가중하는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에너지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자체 생산 능력이 전무한 국가가 제재와 전쟁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어떻게 '에너지 주권'을 상실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향후 쿠바 사태는 미·중·러 간의 에너지 패권 다툼 속에서 신흥국들이 겪게 될 미래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