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세븐일레븐을 세계 최대의 편의점 체인으로 일궈내며, 이른바 ‘콘비니(편의점)’라는 독창적인 문화를 전 세계에 이식한 스즈키 도시후미(鈴木敏文) 세븐&아이홀딩스 명예고문이 향년 93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단순히 물건을 떼어다 파는 소매점 경영자가 아니었다. 물류와 정보기술(IT), 그리고 금융을 유통이라는 용광로에 녹여내 현대 리테일 산업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꾼 위대한 비즈니스 아키텍트이자 경제인이었다.
1932년 일본 나가노현에서 태어나 주오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스즈키 고문은 출판사를 거쳐 1971년 유통업체 ‘이토요카도’에 뒤늦게 합류했다. 당시 일본 경제는 고도성장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유통의 대세는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대형 슈퍼마켓이었다. 골목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소규모 영세 상점들은 대형 마트에 밀려 곧 도태될 것이라는 수확체감의 비관론이 팽배하던 시기였다. 스즈키의 직관은 남 달랐다. 1972년 미국 시찰 중 그는 우연히 ‘사우스랜드’가 운영하던 소형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목격하고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쇠락해 가는 일본의 중소 소매점들도 생산성을 높이고 유통망을 체계화하면 대형 마트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이토요카도 경영진은 “작은 점포의 시대는 끝났다”며 맹렬히 반대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고 미국 사우스랜드 본사와 끈질긴 협상을 벌인 끝에 1973년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1974년 도쿄 고토구 도요스의 작은 주류 판매점을 개조해 역사적인 일본 1호 세븐일레븐의 문을 열었다. 모두가 실패를 예견했던 이 작은 점포가 훗날 전 세계 8만 5천 개 매장을 거느린 거대 제국의 씨앗이 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스즈키 고문이 남긴 가장 독보적인 경영 업적은 유통에 ‘데이터 경영’의 숨결을 불어넣은 것이다. 1980년대 초반, 그는 전 세계 소매업계 최초로 컴퓨터 기반의 POS(판매시점 정보관리) 시스템을 전격 도입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바코드를 찍어 계산을 빠르게 하는 용도가 아니었다. 그는 유통업의 본질을 ‘가설과 검증의 연속’으로 정의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그가 창시한 ‘단품관리(單品管理·탄핀칸리)’ 기법이다. 스즈키는 매장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까지 발주 권한을 위임했다. "내일 동네 초등학교에 운동회가 있고, 일기예보상 기온이 5도 섭씨 올라가니, 시원한 음료와 주먹밥 수요가 평소보다 30% 늘어날 것이다"라는 식의 구체적인 '가설'을 세워 발주하게 하고, 다음 날 POS 데이터를 통해 그 가설이 맞았는지 '검증'하게 했다.
스즈키는 "은행이 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은행을 만들면 된다"며 2001년 이토요카도와 세븐일레븐의 자본으로 인터넷 전문 은행인 ‘IY뱅크(현 세븐은행)’를 독자 설립해 버리는 승부수를 띄웠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전국적인 촘촘한 편의점 망을 핏줄처럼 활용한 세븐은행의 ATM은 막대한 수수료 수익을 창출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고, 현재 세븐&아이홀딩스 영업이익의 핵심 축을 담당하고 있다. 유통과 금융을 결합한 핀테크(FinTech)의 원조 격인 이 에피소드는 한계 없는 그의 ‘파괴적 혁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오늘날 일본 편의점을 상징하는 고품질의 도시락과 삼각김밥 역시 스즈키의 완벽주의가 빚어낸 합작품이다. 초창기 편의점 주먹밥은 밥의 수분 때문에 겉을 싼 김이 금세 눅눅해져 맛이 없었다. 스즈키는 포장지 개발 업체와 수년간 매달린 끝에, 소비자가 먹기 직전에 비닐을 당겨 밥과 김을 결합시키는 ‘필름 분리형 포장’을 도입했다. 이 작은 혁신 하나로 삼각김밥은 편의점 최고의 폭발적인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그는 "편의점 음식은 싸구려 비상식량"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협력업체들을 모아 세븐일레븐만을 위한 전용 식품 공장(NDF) 조직을 구축했다. 밥을 짓는 온도, 반찬의 염도 하나까지 철저히 통제하는 고도의 공급망 관리(SCM)를 통해 식당 못지않은 프리미엄 도시락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편의점은 단순한 구멍가게를 넘어, 지역 주민의 삼시 세끼를 책임지고 공과금 납부와 택배까지 처리하는 ‘대체 불가능한 생활 인프라’로 진화할 수 있었다.스즈키 고문의 탁월한 경영 수완이 글로벌 무대에서 가장 빛을 발한 순간은 1991년이었다. 그에게 편의점 비즈니스를 처음 가르쳐주었던 스승이자 종주국인 미국 사우스랜드 본사가 무리한 사업 확장과 차입 경영으로 파산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스즈키 고문은 주저 없이 이토요카도를 움직여 사우스랜드의 지분 70%를 전격 인수하는 이른바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역인수를 단행했다. 미국 본사를 인수한 그는 즉각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라는 미국식 매스 마케팅에 젖어있던 미국 매장들에 일본식의 치밀한 ‘단품관리’ 시스템을 이식했다. 재고는 절반으로 줄었고 수익성은 급반등했다. 적자에 허덕이던 미국 세븐일레븐을 불과 몇 년 만에 초우량 기업으로 완벽히 부활시킨 이 사건으로, 월스트리트와 미국 언론은 그에게 ‘허리케인 스즈키’라는 강렬한 경외의 별칭을 헌정했다. 유통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성공적인 글로벌 M&A의 순간이었다.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영웅의 마지막은 씁쓸했다. 스즈키 고문은 40년 가까이 최고경영자(CEO)로서 제왕적 권력을 누렸으나, 그는 오너(소유주)가 아닌 이토요카도 창업주 가문(이토 가문)에 고용된 전문경영인이었다. 2016년, 행동주의 투자펀드인 미국 ‘서드포인트(Third Point)’의 수장 댄 러브가 세븐&아이홀딩스의 비효율적인 경영을 공격하며 경영진 교체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스즈키 고문은 자신의 최측근이자 유력한 후계자였던 이사카 류이치 사장을 경질하고 자신의 차남(스즈키 야스히로)을 후계자로 세우려는 무리수를 두었다. 창업주 가문을 포함한 이사회가 그의 인사안을 부결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평생을 데이터와 합리로 기업을 이끌었던 혁신가도 핏줄을 향한 집착과 냉혹한 자본시장 지배구조 의 벽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이사회 충돌 직후 83세의 나이로 불명예스럽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말년의 퇴장 과정에서 뼈아픈 오점을 남기긴 했으나, 스즈키 도시후미가 세계 상업사와 경제계에 남긴 족적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만큼 거대하다. "고객을 위해서(For the customer)가 아니라, 철저히 고객의 입장(Stand in the customer's shoes)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 평생을 관통했던 그의 이 서늘한 철학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돌파해야 하는 오늘날의 수많은 기업가와 경제인들에게 영원히 유효한 나침반으로 기억될 것이다. 10평 남짓한 작고 네모난 공간에서 전 세계 물류와 금융, 데이터의 거대한 흐름을 지휘했던 유통 거인이 갔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