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가격 불확실성이 리스크" LTA 서명… 수급 안정성에 삼성·SK 몸값 재평가
무라타 시총 18조 엔 폭등, 물량보다 '고부가가치 믹스 개선' 주효… 상승 가로막는 계약 상단은 과제
무라타 시총 18조 엔 폭등, 물량보다 '고부가가치 믹스 개선' 주효… 상승 가로막는 계약 상단은 과제
이미지 확대보기AI(인공지능) 인프라 구축 열풍으로 메모리 반도체가 석유보다 가치 있는 패권 원자재로 탈바꿈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9일(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세계 3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시가총액이 글로벌 3대 석유 기업의 합산 가치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고질적인 가격 변동성에 시달리던 메모리 산업이 빅테크 기업들과의 장기 공급 계약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고수익 구조로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AI 서버용 부품 수요 폭발로 일본 무라타제작소의 시가총액이 한 달 만에 2배 가까이 급등하는 등 AI 수혜 생태계가 반도체 장비와 소재를 넘어 전자부품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번 사이클의 승부는 ‘얼마나 팔리느냐’가 아니라, 어떤 계약 구조로 팔리느냐에서 갈릴 가능성이 높다.
메모리가 바꾼 에너지 패권… '1조 달러' 클럽 진입한 반도체 동맹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의 위상 변화는 시가총액 비교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WSJ 데이터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합산 시가총액은 각각 1조 달러(약 1507조 원)를 돌파했다. 이는 세계 최대 석유회사 사우디 아람코와 엑슨모빌, 셰브론 등 3대 석유 거인의 합산 시가총액을 22% 웃도는 규모다. 플래시 메모리 제조사 샌디스크 역시 지난 3월 이후 시가총액이 3배 가까이 폭등하며 아시아 최대 석유 기업인 페트로차이나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 같은 밸류에이션 급등의 배경에는 AI 발(發) 수급 불균형이 자리 잡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지난 1분기 실적 발표에서 향후 3년간 공급 능력을 초과하는 수요가 지속될 것이라는 가이던스(전망치)를 제시했다. 메모리 가격과 공급 불확실성이 고객사들의 핵심 경영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마이크론이 지난 3월 첫 5년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샌디스크도 내년 생산 능력의 30% 이상을 커버하는 장기 계약을 5개 고객사와 확보했다.
부품으로 번진 AI 온기… 무라타, 고부가가치 믹스 개선이 핵심
AI 인프라 투자의 수혜는 반도체 칩을 넘어 핵심 전자부품으로 빠르게 전이 중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9일 도쿄 주식시장에서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세계 1위 기업인 무라타제작소의 시가총액이 18조 8938억 엔(약 178조 7700억 원)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4월 말 10조 엔(약 94조 6220억 원)을 돌파한 이후 단 한 달 만에 2배 가까이 급등한 수치다. 이날 무라타제작소 주가는 장중 제한폭 상한인 1만 40엔까지 치솟으며, 올해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시장 전문가들은 단순한 출하량 확대가 아니라 고사양 전환에 따른 고부가가치 제품 다변화(믹스 개선)를 수익성 폭발의 핵심 변수로 꼽는다. 통상 AI 서버 1대에는 일반 서버 대비 월등히 많은 1만 5000개에서 2만 5000개의 MLCC가 탑재된다. 특히 가혹한 컴퓨팅 환경을 견디기 위한 고온·고전압 대응 제품의 비중이 늘면서 평균단가(ASP)가 크게 상승했다. 수율이 높은 무라타제작소로 주문이 몰리는 이유다. 회사 측은 오는 2028년 3월까지 생산 설비에 800억 엔(약 7569억 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밸류에이션 점검과 양날의 검이 된 장기 계약 리스크
주가 상승으로 눈높이(평가 기준) 자체가 완전히 바뀌고 있지만, 메모리 기업들의 선행 PER은 여전히 한 자릿수에 머물러 ‘실적 대비 저평가’ 구간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마이크론의 경우 지난 2분기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 이후 월가 컨센서스(시장 평균 전망치)가 가파르게 상향 조정되면서 선행 PER이 10배 미만으로 떨어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6배에서 7배 수준에 머물러 있어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 평균(26배)을 크게 밑돈다. 결국 이번 사이클의 핵심은 '설비투자(CAPEX) → 장기공급계약(LTA) → 가격 안정성'으로 이어지는 판단 프레임의 정착 여부다.
단기적으로 전망은 밝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이 내년 서버용 DRAM 생산량의 3분의 2를 선점했다. 미국 유비에스(UBS) 증권은 내년 전체 DRAM 출하량의 최대 30.0%가 장기 공급 계약으로 묶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 반도체 기업들의 분기 실적 가시성이 높아지며 주가의 하방 경직성이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 구간에서는 분명한 리스크 요인도 존재한다. 장기 계약 구조화는 다운사이클의 충격을 막아주지만, 반대로 상승 탄력까지 제한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향후 빅테크의 AI 설비투자 속도가 둔화(피크아웃)되면 고정 가격 계약이 수익성의 상단 캡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울러 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최신 규격 진입 속도에 따라 마이크론·SK하이닉스와의 점유율 재편 구도가 요동칠 수 있다는 점도 핵심 변수다.
투자자가 당장 확인해야 할 3가지 체크포인트
첫째, 빅테크 기업의 분기별 설비투자(CAPEX) 집행률을 확인해야 한다. 인프라 투자의 지속성을 가름하는 지표로, 이 투자가 정체되면 장기 계약의 단가 방어력도 약화될 수 있다.
둘째, 전체 DRAM 출하량 중 장기 공급 계약(LTA) 비중의 추이를 점검해야 한다. LTA 비중이 시장에서 거론되는 기준선인 30%를 안정적으로 상회해야 소위 '석유형 패권 자산'으로서의 가치 재평가가 유지된다.
셋째, 글로벌 고부가 MLCC의 가동률과 주문 후 인도 시간(리드타임)을 주시해야 한다. 무라타제작소발 고온·고전압 부품 특수가 삼성전기 등 국내 부품사의 제품 믹스 개선과 실적 동반 상승으로 연결되는지 가늠할 핵심 기준선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