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루블 정산 비중 90% 달하지만… 국경 간 결제 지연·거부 속출
美 ‘2차 제재’ 위협에 놀란 중 대형 은행들, 위험 회피 위해 준수 심사 극단적 강화
우회 경로·중개 대리인 활용한 ‘그림자 금융 체인’만 기형적 비대화… 무역 마찰 극치
美 ‘2차 제재’ 위협에 놀란 중 대형 은행들, 위험 회피 위해 준수 심사 극단적 강화
우회 경로·중개 대리인 활용한 ‘그림자 금융 체인’만 기형적 비대화… 무역 마찰 극치
이미지 확대보기양국 간 무역 거래의 대부분을 루블화와 위안화 등 자국 통화로 전환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미국 정부가 내건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 보복 카드가 글로벌 금융망을 뒤흔들면서 국경 간 대금 결제가 사실상 마비되는 초유의 병목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6일(현지시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글로벌 국제 금융 전문가들과 러시아 대형 은행가들은 최근 가중되고 있는 중·러 간 대금 지급 마찰을 두고 "달러 의존도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서방의 강력한 글로벌 금융 금융 감시망과 제재 체제를 완전히 무력화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중개 은행 끼고 몇 주씩 지연”… 스베르방크 부의장, 결제 인프라 공백 폭로
이 같은 통상 마찰의 민낯은 3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 2026 현장에서 생생하게 폭로됐다. 러시아 최대 국영 은행인 스베르방크(Sberbank)의 알렉산더 베디아힌 경영위원회 제1부의장은 "중·러 간 결제 인프라 내부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거대한 공백을 목격하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베디아힌 부의장은 "결제 경로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으며, 법적 위험을 피하려는 대형 은행들이 추가적인 중개 은행들을 결제 체인에 무리하게 포함시키고 있다"며 "이로 인해 결제 중간 단계에서 상세한 이유 설명도 없이 송금이 전격 거부당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토로했다.
그가 지목한 병목 현상의 근본 원인은 2023년 말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러시아의 전쟁 경제 체제를 무력화하기 위해 도입·확대한 '2차 제재'다.
1차 제재가 러시아 기업과 개인을 직접 타깃으로 삼는다면, 2차 제재는 이들과 거래를 매개하거나 대금 결제를 중개하는 제3국의 금융기관까지 미국 달러화 기반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전격 퇴출시킬 수 있는 초강력 법적 무기다.
결국 중국 대형 대출기관들은 러시아와의 무역을 촉진해야 하는 정치적 명분과 미국 달러 결제망 접근권을 사수해야 하는 글로벌 생존 과제 사이에서 극심한 균형 잡기 강박에 시달리게 된 셈이다.
"상대방과 거래 내용이 뇌관"… 중국 위안화 결제 시스템(CIPS)도 역부족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Natixis)의 알리시아 가르시아-에레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군산산업 기반과 연결된 기관을 정조준한 2차 제재의 강도가 워낙 세다 보니, 중국 은행들이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위험 저감(De-risking)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단순한 대금 처리 기간이 몇 주씩 늘어지는 것은 다반사라는 지적이다.
가르시아-에레로 수석은 "중국 대형 은행들이 독자적인 국경간위안화결제시스템(CIPS)을 보다 적극적으로 가동하고는 있지만, 현재 가용한 전체 결제 인프라는 전쟁 이전의 정상적인 채널에 비해 운영 효율성이 극도로 떨어지고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많이 든다"고 비판했다.
중국산업상업은행(ICBC)의 수석 재무 관리자이자 베이지 중국세계화센터 비상주 준연구원인 마테오 조반니니 역시 자국 은행들이 취하고 있는 '극도의 신중함'을 인정했다.
조반니니 연구원은 "2차 제재의 위험은 단순히 어떤 통화(달러·위안·루블)를 사용하느냐가 아니라, 거래하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기초 거래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의해 결정된다"며 "이 때문에 결제 체인은 한층 더 복잡하고, 느려지며, 예측 불가능한 영역으로 빠져들었다"고 분석했다.
‘불확실성세’ 피하려 꼼수 횡행… ‘사적 합의의 반그림자’로 숨어든 무역 대금
대금 송금이 불가능해지는 최악의 파국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 수입·수출 기업들은 변칙적인 하이브리드 결제 네트워크를 궁여지책으로 도입하고 있다.
신유라시아 전략센터의 알렉세이 치가다예프 부연구원은 자금이 설명 없이 반환되거나 몇 주씩 묶이는 이른바 ‘불확실성세(Uncertainty Tax)’를 피하고자 러시아 은행들이 직접 이체를 사실상 포기했다고 전했다.
대신 투명한 라우팅(자금 경로 추적)을 숨긴 채 수입과 수출 흐름을 은행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상쇄시키는 청산 시스템에 의존하거나, 홍콩 및 아랍에미리트(UAE) 등 제3의 '완충 지역'에 전문 결제 대리인을 배치하는 편법이 횡행하고 있다.
치가다예프 연구원은 "중·러 무역 현장에서 직접 지급은 이제 '규칙이 아니라 예외'로 간주된다"며 "일시적인 미봉책으로 시작된 교란된 결제 구조가 아예 제도화되면서 양국 금융 흐름의 상당 부분이 합법적인 시장을 벗어나 '사적 합의의 반그림자(Penumbra)' 영역으로 숨어들었다"고 통렬히 꼬집었다.
조반니니 연구원은 현재 중·러 교역의 90% 이상이 자국 통화로 정산된다는 양국 정부의 선전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이번 사태가 ‘탈달러화 논의에 낀 거대한 거품과 오해’를 걷어내는 계기가 됐다고 짚었다.
그는 "달러 의존도를 기계적으로 줄인다고 해서 금융 인프라 간의 마찰이 저절로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국제 결제의 본질은 통화의 종류뿐만 아니라 은행 간의 신뢰 밸류체인, 엄격한 준수(Compliance) 체계, 글로벌 금융 인프라 접근 권한 등에 얽혀 있기 때문에 대체 통화의 도입이 제재 관련 제약을 완벽히 상쇄할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결국 중국 상무부와 금융 당국 역시 러시아와의 지정학적·전략적 공조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국의 글로벌 금융 시스템과 막대한 무역 이익을 저해하지 않기 위해 러시아행 결제망에 고도의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는 것이 월가의 지배적인 평가다.
미국의 강력한 2차 제재 위협이 철회되지 않는 한, 세계 무역의 주도권을 쥔 자원 강국과 제조 거인 간의 겉모양만 화려한 탈달러 결제망 우회 작전과 지연 마찰은 당분간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