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기술 뒤처진 유럽 완성차, 중국 기업에 생산 시설 개방하며 생존 모색
‘메이드 인 유럽’의 기술 주권 상실 우려…업계 “돌이킬 수 없는 쇠락 신호”
‘메이드 인 유럽’의 기술 주권 상실 우려…업계 “돌이킬 수 없는 쇠락 신호”
이미지 확대보기유럽 자동차산업의 심장부였던 공장들이 중국 자본과 기술의 ‘전초기지’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과거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던 유럽 제조사들이 전기차 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과잉 생산이라는 덫에 걸리면서, 생존을 위해 중국 기업에 생산 시설까지 내주는 처지에 내몰렸다.
지난 19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프랑스 렌(Rennes)에 위치한 스텔란티스(Stellantis NV) 공장은 오는 2028년부터 중국 둥펑자동차(Dongfeng Motor Corp.)의 ‘보야(Voyah)’ 브랜드 차량을 생산할 예정이다.
쇠락하는 ‘메이드 인 유럽’…중국 기술 의존 가속화
유럽 완성차 업계가 중국과 손잡는 배경에는 전기차 전환 실패에 따른 절박함이 깔려 있다.
유럽 제조사들은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지난 수십 년간 내연기관 시장을 독점해 왔으나,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며 소프트웨어와 배터리 등 핵심 기술 경쟁에서 중국에 뒤처졌다.
이로 인해 폭스바겐(Volkswagen AG)의 올리버 블루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8일 주주들을 대상으로 “독일에서 개발하고 유럽에서 생산해 전 세계에 판매하던 기존 사업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시인했다.
스텔란티스는 둥펑뿐만 아니라 저장립모터(Zhejiang Leapmotor Technology Co.)와도 협력하며, 오펠(Opel), 시트로엥(Citroen), 피아트(Fiat) 등 자사 핵심 브랜드 모델의 근간에 중국산 기술을 이식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두고 유럽 자동차 산업이 중국의 ‘트로이 목마’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럽의 생산 시설이 중국 브랜드의 유럽 시장 진출을 돕는 가교 역할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진단이다.
“요리법 잊은 주방장”…기술 주권 상실의 경고
유럽 제조사들이 중국과의 협력을 ‘공장 가동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스마트한 선택’이라고 항변하지만, 현장 노동자들과 전문가들의 시각은 냉담하다.
필립 질르롱 스텔란티스 노조 대표는 “기술 노하우를 넘겨주면 나중에 스스로 회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중국 기업들이 우리의 생산 라인을 빌려 쓰는 동안 유럽은 점차 독자적인 자동차 제조 능력을 잃어가는 ‘요리법을 잊은 주방장’ 신세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의 유럽 공략은 공격적이다. 비야디(BYD)는 독일 폭스바겐의 안방인 중국 시장에서 이미 판매량 1위를 차지했으며, 현재 헝가리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건설 중이다.
체리자동차(Chery Automobile) 또한 스페인의 닛산 공장을 인수하며 유럽 내 직접 생산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산업 붕괴의 서막인가,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인가
유럽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경영 실패를 넘어 대륙 전체의 산업 경쟁력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최근 수차례 지적했듯, 파편화된 에너지망과 낡은 단일 시장 구조는 유럽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대 경제권 사이에서 성장 동력을 잃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과의 파트너십이 당장의 고용 안정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유럽이 스스로 혁신을 멈추고 중국 기술의 조립공장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고 진단한다.
증권가에서는 이미 유럽 자동차 산업 지수가 지난 2024년 4월 고점 대비 약 40%가량 하락하며 시장의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이 직면한 현실은 냉혹하다. 전동화 전환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한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은 중국의 부품 공급망과 생산 체계에 편입되는 길을 강요받고 있다.
향후 10년, 유럽 자동차산업이 기술 예속의 길을 걸을지 아니면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주권을 되찾을지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최대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