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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CNBC 짐 크레이머 "뉴욕증시 월가의 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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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CNBC 짐 크레이머 "뉴욕증시 월가의 광대"

짐 크레이머 CNBC 간판 앵커/ 사진=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짐 크레이머 CNBC 간판 앵커/ 사진=로이터
세계의 돈이 몰리는 미국 뉴욕증시에는 스타들도 많다. 미국 뉴욕 증시의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CNBC 방송국 스튜디오에는 어김없이 굉음과도 같은 고성이 울려 퍼진다. 붉은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한 사내가 사방에 배치된 부저를 누르고 온갖 소품을 집어던지며 화면을 향해 호통을 친다. 그의 손짓 하나에 개인 투자자들은 환호하고, 월가의 기관들은 실소를 머금는다. 미국 주식 시장에서 가장 시끄럽고, 가장 논쟁적이며, 동시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그가 바로 짐 크레이머(Jim Cramer)다.

짐 크레이머는 CNBC 인기 프로'매드 머니(Mad Money)'의 진행자이다. 하버드 출신의 엘리트로 헤지펀드 매니저로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했던 인물이다. 금융 미디어를 직접 창업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가 추천하는 종목마다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인간 역발상 지표(Human Inverse Indicator)'로 자주 회자된다.

짐 크레이머의 본명은 제임스 J. 크레이머이다. 1955년 2월 10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포장재를 판매하는 소상공인이었다. 어머니는 예술가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주식 시세표를 읽기 시작했다. 청소년기에는 신문 배달을 하며 스스로 자금을 모으는 등 남다른 상업적 감각을 드러냈다. 지역 명문인 스프링필드 토운십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미국 최고 명문인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했다. 하버드에서 그는 정부학(Government)을 전공하며 학내 언론사인 '더 하버드 크림슨(The Harvard Crimson)'의 편집장을 지냈다. 이 시기 다져진 취재력과 문장력, 그리고 시사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은 훗날 그가 금융 저널리스트이자 방송인으로 성공하는 강력한 자산이 되었다.

1977년 하버드를 졸업한 크레이머는 곧바로 금융계로 가지 않고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로스앤젤레스 헤럴드 익스미너 등에서 범죄 및 시사 담당 기자로 활동했으나, 기자 생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로스앤젤레스 거주 당시 아파트에 도둑이 들어 전 재산을 도난당하고 수개월 동안 자신의 자동차에서 노숙 생활을 하는 등 극심한 생활고를 겪기도 했다. 1981년 하버드 로스쿨(J.D.)에 입학했다. 로스쿨 재학 시절, 그는 법학보다 주식 투자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주식 거래로 학비를 벌던 그는 자신의 기숙사 방 전화기 응답기 메시지에 당일의 추천 종목과 시황 분석을 녹음해 두었는데, 이 메시지가 월가의 거물들의 귀에 들어가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 당시 월가의 대부 중 한 명이었던 마틴 퍼레츠(Martin Peretz)는 크레이머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게 50만 달러의 거금을 맡기며 투자를 일임했다. 크레이머는 로스쿨 재학 중에 이 자금을 운용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1984년 로스쿨을 졸업한 후 변호사의 길이 아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의 주식 중개인(Broker)으로 입사하며 본격적인 월가 커리어를 시작했다.
골드만삭스에서 탁월한 영업력과 시장 분석력을 인정받은 크레이머는 1987년,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건 헤지펀드 '크레이머 베르코비치(Cramer, Berkowitz & Co.)'를 설립했다. 이때부터 2000년 은퇴할 때까지 약 14년간 펼쳐진 그의 헤지펀드 매니저 경력은 그야말로 독보적이었다. 크레이머가 이끄는 펀드는 기술주 버블의 생성과 붕괴, 1987년의 블랙 먼데이,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등 세계 경제의 격동기 속에서도 연평균 무려 24%에 달하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가 운영 기간 동안 고객에게 단 한 해도 손실을 입히지 않았다. 1999년 기술주 폭등장에서는 무려 47%의 수익률을 올리며 월가의 정점에 섰다.

헤지펀드 매니저의 삶은 영혼을 갈아 넣는 피말리는 전쟁이었다. 크레이머는 하루 3~4시간만 자며 시장의 모든 지표를 분석했고, 수익률이 떨어지는 날에는 사무실의 모니터를 부수고 직원들에게 폭언을 퍼붓는 등 극도의 조울증 증세를 보였다. 결국 그는 2000년, 정신적 피로감과 건강 악화를 이유로 헤지펀드 매니저 직을 내려놓고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당시 그가 챙긴 자산만 수천만 달러에 달했다.헤지펀드 운영과 동시에 그는 금융 미디어의 혁신을 이끌었다. 1996년, 크레이머는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개인 투자자들이 기관에 비해 정보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실시간 금융 정보 및 분석을 제공하는 웹사이트 '더스트리트(TheStreet.com)'를 공동 창업했다. 이 사이트는 인터넷 기술주 버블의 중심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상장에 성공했고, 크레이머는 단순한 펀드매니저를 넘어 금융 콘텐츠의 공급자로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러한 미디어적 재능을 눈여겨본 CNBC는 2005년, 그를 전면에 내세운 주식 전문 프로그램 '매드 머니(Mad Money)'를 론칭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 투자자들이 아는 '방송인 짐 크레이머'의 시작이었다.짐 크레이머는 '매드 머니'를 통해 월가의 전유물이었던 고급 투자 정보를 안방극장으로 가져왔다. "종목을 다각화하라", "네가 사는 주식이 무엇인지 공부해라", "가장 위대한 주식은 현금 흐름이 좋은 회사다"와 같은 그의 격언들은 개인 투자자들에게 훌륭한 나침반이 되었다. 그러나 매일 방송에 출연해 수십 개의 종목을 진단하고 시장의 방향성을 예측해야 하는 방송 환경은, 한때 완벽했던 그의 투자 기록을 갉아먹는 독이 되었다. 시장의 변동성이 극대화될 때마다 그의 예측은 어긋나기 시작했고, 이는 대중에게 거대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이로 인해 탄생한 별명이 바로 '인버스 크레이머(Inverse Cramer, 크레이머 반대로 하기)'다.

2008년 3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서막이 오르던 시절, 한 시청자가 CNBC 방송에 전화를 걸어 투자은행 베어스턴스(Bear Stearns)의 건전성을 물었다. 크레이머는 단호하게 고함을 치며 "베어스턴스는 안전하다! 돈을 빼지 마라!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 후, 베어스턴스는 유동성 위기로 파산 직전에 몰려 JP모건 체이스에 헐값으로 매각되었다. 이 사건은 크레이머의 커리어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으며, 수많은 투자자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힌 전설적인 오판으로 기록되었다.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상화폐와 기술주 폭등장에서 그의 '인간 지표' 성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그는 넷플릭스, 메타(구 페이스북), 엔비디아 등이 폭락하기 직전에 "지금이 매수 타이밍"이라고 외쳤다. 반대로 이들 기업이 바닥을 치고 본격적인 반등을 시작하기 직전에는 "희망이 없으니 매도하라"고 권고했다.

2022년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CEO 샘 뱅크먼-프리드를 가리켜 "우리 시대의 제이피 모건(JP Morgan)"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나, 불과 몇 달 후 FTX는 세기의 사기극으로 밝혀지며 파산했다.이러한 현상이 반복되자 글로벌 투자자들은 그를 조롱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투자 전략으로 삼기 시작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Reddit)의 주식 포럼을 중심으로 "크레이머가 사라고 하면 팔고, 팔라고 하면 사야 돈을 번다"는 법칙이 정설처럼 퍼졌다.2023년 3월, 미국의 자산운용사 터틀 캐피털(Turtle Capital Management)은 짐 크레이머가 추천하는 종목을 공매도하고, 그가 매도하라고 하는 종목을 매수하는 '인버스 크레이머 ETF(티커명: SJIM)'를 실제 미국 증시에 상장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상품은 포트폴리오 회전 비용과 시장의 불규칙성으로 인해 장기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청산되었으나, 한 금융 전문가의 이름이 '반대 매매'의 대명사로 상품화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에게는 뼈아픈 굴욕이었다.여기에는 방송 미디어의 생태계와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의 구조적 필연성이 존재한다.
첫째, 샘플링의 오류와 다수 법칙의 함정이다. 헤지펀드 매니저 시절 크레이머는 철저히 선별된 소수의 종목에 집중했고,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숏(매도) 포지션을 취했다. 그러나 '매드 머니'라는 일일 방송에서는 일주일에 수십, 수백 개의 종목에 대해 즉각적인 의견을 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라 할지라도 예측의 모수가 수천 개로 늘어나면 확률은 50%의 균등 수렴선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중은 그가 맞춘 수많은 종목보다, 가장 자극적으로 틀린 몇 가지의 대형 오판(베어스턴스, FTX 등)만을 집중적으로 기억하고 확증 편향을 갖게 된다.

둘째, 군중 심리와 미디어의 후행성이다. 방송 매체의 특성상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이미 시장에서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종목, 즉 거래량이 폭발하고 주가가 고점에 달한 종목을 다룰 수밖에 없다. 크레이머가 방송에서 특정 기술주나 밈 주식을 추천하는 시점은 이미 그 종목의 모멘텀이 정점에 달해 과열된 상태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의 추천 직후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지며 주가가 폭락하는 현상은, 그가 무능해서라기보다 '고점 신호' 역할을 하는 미디어의 속성 자체에서 기인한다.

셋째, 엔터테인먼트와 투자 분석의 경계 상실이다. 짐 크레이머는 본질적으로 애널리스트가 아닌 '쇼맨'이다. CNBC 역시 그에게 냉철한 수치 분석보다는 시청률을 견인할 수 있는 자극적인 멘트와 화포 같은 액션을 요구한다. 확신에 찬 어조로 "이 주식은 무조건 갑니다!"라고 소리쳐야 방송이 살기 때문에, 그의 발언에는 투자에 필수적인 '확률적 유보'나 '리스크 관리'에 대한 경고가 생략되기 일쑤다. 단정적 어조와 미디어의 전파력이 결합하면서 그의 오판은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된다.

짐 크레이머는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월가에서 가장 독특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엘리트 금융인들의 전유물이었던 투자라는 영역을 대중의 거실로 끌어내려 보편화시킨 '공로자'인 동시에, 미디어의 과장법과 결합했을 때 전문가의 조언이 얼마나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준 '반면교사'다.그에게 쏟아지는 조롱과 별명은 어쩌면 매일 밤 시장의 신들을 달래기 위해 작두 위에서 춤을 추어야 하는 금융 예능인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인버스 크레이머'라는 비아냥 속에서도 여전히 미국 경제 방송의 중심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