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블랙박스가 내 차 망가뜨린다

글로벌이코노믹

블랙박스가 내 차 망가뜨린다

상시녹화기능으로 배터리 방전 잇따라
[글로벌이코노믹=허경태 기자] 교통 관련 사고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는 차량용 블랙박스가 사실은 배터리를 잡아먹는 괴물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소비자 피해가 속출하면서 관련 민원 또한 급증하는 추세다.

20일 자동차 업계와 소비자보호원 등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차량용 배터리는 2~3년, 주행거리 기준으로는 5만~6만km 정도 운행하면 교환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최근 블랙박스 장착이 일반화되면서 배터리 방전 사고와 이에 따른 보험사의 긴급 출동이 부쩍 늘어난 상황이다.

원인은 교통사고시 차량 상황을 생생히 기록해 ‘차량의 변호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블랙박스의 상시가동 기능이 배터리의 수명을 갉아먹는 데 있다. 더구나 배터리 방전을 최소화하려면 보조 배터리를 구입해야 하지만 평균 40만원대를 호가해 서민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 아닐 수 없다.

차량 배터리의 본래 역할은 차량에 시동을 거는 것이다. 엔진을 비롯해 차량의 각종 전기장치에는 배터리가 아니라 차량에 장착된 발전기(제네레이터)에서 전기를 공급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블랙박스는 배터리가 작동시킨다. 한 정비업체 관계자는 “상시녹화 기능을 이용할 경우 차량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도 블랙박스를 계속 작동시켜 방전 발생은 필연적”이라며 “차량용 블랙박스의 상시녹화기능은 실제로는 사용되면 안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불가피하게 써야할 경우에도 보조배터리(딥사이클 배터리)를 추가로 장착해 메인 배터리의 손상을 막아주어야 한다고”고 조언했다.

현재로서는 보조배터리 장착이 방전으로 인한 배터리 및 차량 손상을 막는 유일한 방법인지만 보조배터리의 시중가격은 40만원대를 호가한다. 실상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한편 이같은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최근 출시되는 블랙박스에는 상시전원장치가 기본 장착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역시 방전이 여전해 차단효과는 그렇게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상시전원장치는 배터리 전압이 일정 수준으로 떨어지면 전원이 차단되는 장치인데, 차량에 쓰이는 납산배터리의 경우 완전방전되면 제 성능의 70%밖에 사용할 수 없게 되고, 이같은 일이 반복되면 결국 복구가 안되어 배터리 수명이 단축되가는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결국 블랙박스 판매업체들의 광고와는 달리 상시녹화기능은 현 기술 수준으로는 차량 배터리의 수명만 단축할뿐 사용이 권장되어서는 안된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현재 상시녹화기능에 대한 부작용을 고지하고 있으며, 상시전원차단장치 등 보완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면서도 “상시녹화기능은 배터리 수명을 단축시키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권장하지는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내 차량용 블랙박스 시장은 지난해 120만대, 올해 240만대 규모로 예상되며 시장규모는 최소 3000억원에서 최고 5000억원대로 추정된다. 2009년 초창기 연간 시장규모가 200억원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빠른 성장세다.

이 시장은 2000년대 후반 보험사들이 블랙박스 장착 차량의 보험료를 2~5% 깎아주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지난해와 올해에 보통 2~3년 정도로 보는 교체주기가 돌아오고 TV홈쇼핑까지 가세하면서 특히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올해 CJ오쇼핑에서 팔린 양만 20만대에 달할 정도다.

현재 블랙박스의 누적 매량은 5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지만 국내 차량 등록 대수 1940만대에 비하면 1/4 수준이다. 즉 충분히 추가 성장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비례해 소비자 불만역시 급증하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의 블랙박스 피해구제 건수는 2010년 21건에서 2011년 54건, 2012년 127건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올해는 10월말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많은 138건을 기록하고 있다. 피해 구제란 소비자원이 직접 중재에 나설 정도로 피해가 심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라 실제 품질 불만은 이보다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례로 여성운전자 Y씨(58)는 지난 여름 홈쇼핑 방송을 통해 블랙박스를 구입했다가 낭패를 봤다. 방송에서는 상시녹화 기능으로 인해 방전된다는 고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블랙박스 장착 후 줄곧 말썽을 일으키던 배터리가 최근 기온이 크게 떨어지자 결국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방전 가능성을 사전 고지해줬더라면 배터리를 교체할 필요가 없었을텐데 홈쇼핑 업체는 제조사의 문제라며 발뺌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