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코노믹 기획시리즈] 세계의 자동차 박물관 탐방
한국 자동차 생산이 세계 5위, 국내 브랜드가 세계 4위로 올라섰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동차에 대한 지식은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국민을 위한 지식 정보 제공에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자동차업체들이나 단체들은 박물관이나 전시장을 짓고 다양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글로벌이코노믹은 ‘세계의 자동차박물관을 가다’ 시리즈를 마련, 조성주 기자가 세계의 자동차 박물관과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을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주>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성들과 멋쟁이 남성들을 모두 한데 모아놓은 듯한 도시 밀라노에서 하루를 묵었다. 가죽 장인들이 세계 최고의 가죽과 번뜩이는 패션 아이템들을 내놓는 곳이다. 밀라노도 멋지지만 여기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만 동남쪽으로 내려오면 모데나의 마라넬로(Maranello)라는 마을이 나온다. 보잘것 없는 시골마을이지만 페라리의 고향인 데다 차 이름으로도 쓰이면서 세계에 이름이 떨쳐졌다.
독일의 구불구불한 도로와 달리 이탈리아는 산이 없어 고속도로도 완전히 올곧은 직선이다. 사실 너무 곧으니 좀 지루하기도 하다. 왜 이 동네에서 페라리가 만들어졌는지 알 것만 같다. 지루함을 떨쳐버리고 도로를 짜릿하게 달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의 바로 그 공간
페라리 공장은 자동차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간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항시 사람들로 북적댄다. 이곳에 박물관이 자리잡은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낡은 책상에서 여전히 집무를 보는 모습의 창업자 엔초 페라리(Enzo Ferrari) 밀랍인형이 앉아있다. 엔초 페라리가 쓰던 책상이며, 전화기며, 노트가 갖춰진 건 물론 옷이나 신발, 선글라스까지 모두 고스란히 입혀놔서 살아있는 사람 같다. 그에 대한 신봉은 어디까진지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
페라리 오너 엔초 페라리와 인근 람보르기니 농기계 회사의 오너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수차례에 걸쳐 말다툼을 했던 점은 유명한 일화다.

람보르기니가 바로 이곳 공장까지 찾아와 페라리에게 차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이야기다. 아마 엔초페라리는 저 책상에 앉아 저렇게 삐딱한 자세로 람보르기니를 비웃었을 것만 같다. 이 사건이 실제 있었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당시 갑부였던 람보르기니가 뭔가 단단히 화가 나서 페라리의 엔지니어들을 하나둘씩 영입하고 ‘타도 페라리’를 외쳤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만큼 페라리는 당시도 모든 이의 공격대상이자 질투의 대상이었고 지금도 그 같은 자리는 여전하다.
박물관은 2층 건물 규모로 은근히 소박하다. 그럴 만한 게 페라리는 나온 차가 그리 많지 않아서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관람객들은 어떤 박물관보다 더 열정적인 것 같다. 적어도 이 시골까지 굳이 찾아올 정도의 열정이면 보통 팬은 아니라서다.
얼마 전 경매에서 수백억에 낙찰돼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에 이름을 올린 250 GTO도 한 대 서 있고, 창립자 이름을 따서 만든 슈퍼카 ‘엔초 페라리’는 물론 F40 등 각종 희귀 페라리들이 눈길을 끈다. 당시엔 없었지만 요즘에는 페라리 최고 자동차인 ‘라페라리’까지 전시된다고 한다.

엔초 페라리는 유일한 아들 알프레도페라리(Alfredo Ferrari)를 ‘디노’라 부르며 유독 아꼈다. 그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그를 위해 ‘디노’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 다만 당시도 12기통을 고집하던 슈퍼카 ‘페라리’와 달리 ’디노’에는 8기통과 6기통을 장착하면서 좀 더 작고 현실적인 차를 만들었다. 다만 디노 페라리는 병들어 24살의 나이로 단명했고, ‘디노’ 브랜드도 얼마 되지 않아 실패했다. 8기통은 페라리답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바로 그 아픈 사연을 안고 있는 ‘디노’ 브랜드의 모든 차들도 이곳에 전시돼 있다.
하지만 작은 페라리 ’디노’에 대한 바람은 얼마 후부터 다시 싹텄다. 현재 가장 인기가 많고, 가장 페라리다운 스포츠카로 평가받는 차 ‘페라리 458 이탈리아’가 바로 당시 페라리와 그의 아들이 꿈꾸던 8기통 페라리다. 그의 죽음 이후 60년이 지나서야 그게 옳은 길이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자동차는 경험하는 것
이곳에 전시된 모든 차들은 우리 돈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차들이다. 건물에 있는 차들을 모두 팔면 현대차가 샀다는 서울 삼성동 부지를 사고 남을지도 모른다. 한대한대 모두 직접 보는 것도 꿈도 못꿀 차들이었는데 놀랍게도 어지간한 차들은 직접 만져볼 수도 있었다. 좀 황송한 느낌마저 들어서 손을 살며시 대어볼 수만 있었다. 클래식 페라리 차체에 손이 닿는 순간에는 당시 이 차를 만들었던 사람들, 몰았던 사람들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한 묘한 느낌도 들었다.

‘드림카’는 사람들이 꿈꾸게 해야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슈퍼카 메이커라면 이 같은 전시장을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