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기업 팔다리 다 잘려나가나… ‘규제 3법’ 논란 커져

공유
0

기업 팔다리 다 잘려나가나… ‘규제 3법’ 논란 커져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국무회의 통과
상법 개정안, 소송 남발과 투기자본 위협 우려
지배구조 개선하려 해도 비용 늘어나 부담 증폭
삼성·현대차·한화 등 금융그룹 수준 감독받아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는 화상으로 진행됐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는 화상으로 진행됐다. 사진=뉴시스
재계에서 “재고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았던 이른바 ‘규제 3법’이 지난 25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기업 경영권이 대폭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규제로 기업의 팔다리가 다 잘라내는 ‘악법’ 논란도 예상된다.
정부가 의결한 ‘규제 3법’은 상법 일부 개정안과 독점규제·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이다. 3법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다가 회기가 지나 폐기됐다. 정부는 이들 3법을 정부 입법으로 다시 추진해 21대 정기국회 개원 전에 제출할 방침이다.

◇ 해외 투기자본 어쩌나…‘제2 엘리엇’ 못 막아


상법 개정안은 ‘다중 대표 소송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골자로 한다. 다중 대표 소송제는 자회사 이사가 모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때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이사와 감사위원을 따로 선임해 감사위원 독립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다.

취지는 좋지만 재계에서는 기업의 소송 리스크(위험)를 키울 뿐 아니라 해외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을 쥐고 흔들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소송을 낼 수 있는 모회사 주주 요건으로 비상장회사는 총 발행 주식의 1%, 상장회사는 6개월 이상 0.01%를 보유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지만 투기자본이 막대한 자금력으로 지분을 대량 확보해 소송을 남발해도 기업이 이에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안에 따르면 상장회사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하거나 해임할 때 특수 관계인을 포함한 최대 주주는 지분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의결권이 3%까지만 인정된다. 자칫 단기 수익을 노린 헤지펀드 몇 군데가 연합해 의결권을 행사하면 꼼짝없이 감사위원 자리를 내주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기업의 내밀한 회계장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권한을 감사위원이 해외 투기자본 몫으로 넘어가면 기밀이 유출될 위험이 생긴다.

실제 지난해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는 다국적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가 ‘내정간섭’에 나서면서 크게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당시 엘리엇은 사외이사 세 자리를 내놓으라고 현대차를 압박했다. 엘리엇이 보유한 현대차 지분은 2.9%에 불과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국내 기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주 여론에 힘입어 엘리엇을 물리쳤다.

◇ 공정거래법, 지주회사 개편 ‘걸림돌’ 될까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기업이 자회사 또는 손자회사를 지주회사로 편입하는 요건을 강화한다. 현행법은 주식시장 상장기업이 지주회사 체제(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로 지배구조를 개편하려면 자회사·손자회사로 편입할 회사 지분을 20%만 갖고 있으면 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자회사·손자회사로 편입하는 데 필요한 지분율이 30%로 높아진다. 비상장회사는 40%에서 50%로 비율이 올라간다.

재계는 지주회사 편입 요건 강화가 자발적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기업을 오히려 옥죌 수 있다고 걱정한다. 복잡하게 얽힌 그룹 계열사와 대주주 간 지분 관계를 지주회사 산하로 정리하려고 해도 확보해야 할 지분이 더 많아 비용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현재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대기업 집단은 삼성·현대차·한화 등을 비롯해 16곳으로 파악됐다. 재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지주회사 편입 요건 강화에 따른 추가 비용만 3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됐다.

정부가 지주회사 편입 요건을 강화한 명분은 지주회사로 전환한 대기업 집단 내부거래 비중이 전체 거래 금액 절반이 넘는다는 것이다. 모회사와 자·손자회사, 또는 자회사와 자·손자회사 간 거래를 규제해 부당한 경제력 남용, 정확히는 최대 주주의 ‘사익편취’를 막겠다는 의도다. 같은 이유로 내부거래가 제한되는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 지분율을 상장회사 기준 현행 30%에서 20%로 강화했다. 총수 일가가 지분 20% 이상 가진 회사는 다른 계열사와의 거래가 제한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업이 원료나 반조립 제품을 자회사를 통해 생산해 비용을 낮추고 사업 효율성을 높이는 것까지 막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갤럭시 S20’에 탑재된 카메라 모듈(조립체) 일부를 삼성전기로부터 공급받는데 이마저도 내부거래 규제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

◇ 삼성·현대차·한화에 “자본 건전성 감시받아라”?


정부가 새롭게 제정을 추진하는 금융그룹감독법은 보험사나 증권사, 캐피탈(할부금융)사 등을 보유하고 이들 금융회사 자산 총액이 5조 원 이상인 기업 집단을 겨냥한다. 비(非)금융그룹 중에는 삼성(증권·선물·생명·화재·카드·자산운용·벤처투자), 현대차(캐피탈·카드·증권·커머셜), 한화(생명·투자증권·손해보험·자산운용·저축은행)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에 따르면 이들은 금융그룹 수준으로 규제받는다. 규제 대상 기업은 계열 금융회사 공동으로 내부 통제 정책과 위험 관리 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각종 경영 사항을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자본 적정성 비율이나 재무 상태가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금융위원회로부터 제재도 받는다.

재계 우려는 기업 집단에 소속된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금융당국이 따져본다는 이유로 비금융 계열사 경영까지 간섭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비금융 사업이 주력인 삼성·현대차·한화 등은 단순히 개별 금융 계열사 수준을 넘어선 금융당국의 감시·감독까지 받아야 하는 ‘이중 감시’에 놓이는 셈이다.

정부는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3법이 제정 또는 개정되면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대기업집단의 부당한 경제력 남용이 근절되며 금융그룹의 재무 건전성이 확보되는 등 공정경제의 제도적 기반이 대폭 확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계 관계자는 “(규제 3법에) 경제계의 목소리가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라며 “정부의 과도한 경영 개입으로 부담이 늘어나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성상영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ang@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