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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의 산업시각] ‘국민기업’의 정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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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의 산업시각] ‘국민기업’의 정의는 무엇인가

포스코홀딩스 임직원 공유 글에 창립 요원, 포항시도 반론
국민기업 바라보는 생각은 동일하지만, 시각의 차이 뚜렷
소통 통해 오해 풀고 새로운 공감대를 만들어 나아가야

지난 3월 2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포스코홀딩스 출범식에서 그룹 최고경영진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병옥 포스코홀딩스 친환경미래소재팀장, 민경준 포스코케미칼 사장, 주시보 포스코인터내셔널 사장, 전중선 포스코홀딩스 경영전략팀장, 최정우 포스코그룹회장, 김학동 포스코 부회장, 정탁 포스코 마케팅본부장, 정창화 포스코홀딩스 미래기술연구원장, 한성희 포스코건설 사장, 정기섭 포스코에너지 사장. 사진=포스코홀딩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3월 2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포스코홀딩스 출범식에서 그룹 최고경영진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병옥 포스코홀딩스 친환경미래소재팀장, 민경준 포스코케미칼 사장, 주시보 포스코인터내셔널 사장, 전중선 포스코홀딩스 경영전략팀장, 최정우 포스코그룹회장, 김학동 포스코 부회장, 정탁 포스코 마케팅본부장, 정창화 포스코홀딩스 미래기술연구원장, 한성희 포스코건설 사장, 정기섭 포스코에너지 사장. 사진=포스코홀딩스
‘국민기업’은 일반인들이 흔히 쓰는 단어다. 언론 보도를 통해 언급된 것이 1970년대부터라고 하니 50년 넘게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국민기업’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는 이들이 있을까? 주변 인사들에게 물어봐도 속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인터넷 등을 뒤져 봐도 근거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의문을 가진 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87년 매일경제신문에 실렸던 한 외부인 칼럼에 국민기업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보려는 노력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필자도 ‘한글학회에서 지은 우리말 큰 사전과 경영학이나 경제학 용어 사전 등을 뒤져봤지만 그 어디에도 ‘국민기업’에 대한 명확한 뜻풀이는 없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특정 기업을 ‘국민기업’이라고 일컫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이해할 만한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면서 ’검증되지도 그렇다고 대다수의 공감을 얻었다는 구체적 자료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특정 기업을 ‘국민기업’으로 포장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기자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그리고 일찍이 정확한 의미를 잡아주었더라면 2022년 불거진 포스코 그룹의 ‘국민기업’ 논란은 없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창립 요원’이 모인 이유


황경로, 노중열, 안병화, 곽증, 이상수, 백덕현, 장경환, 홍건유, 여상환, 박준민, 권태협, 안덕주, 이건배, 이영직. 박태준, 고준식, 윤동석, 이홍종, 이종열, 김규원, 이관희, 김명환, 김완주, 신광식, 육완식, 지영학, 도재한, 배환식, 최주선, 김창기, 이원희, 유석기, 정재봉, 현영환(총 34명).


55년 전, 1968년 4월 1일 포스코 창립과 함께 대역사를 시작한 ‘요원’ 34명의 명단이다. 청암 박태준 설립자는 이들을 ‘요원’이자 ‘동지’라고 불렀다. “명예로운 참여 뒤에는 고통스러운 책임이 따르는 것임을 인식하고 피와 땀, 열과 성을 다하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회사를 건설해 나가자”라는 청암의 첫 일성을 따라 창립 요원 개개인은 능력 이상의 모든 것을 포스코에 쏟아부은 전설이다.

현재 생존한 창립 요원은 모두 9명이다. 이들 가운데 건강 상태가 비교적 괜찮은 황경로 2대 포스코 회장, 안병화 전 포스코 사장, 이상수 전 거양상사 회장, 여상환 전 포스코 부사장, 안덕주 전 포스코 업무이사, 박준민 전 포스코개발 사장 등 6명은 지난 16일 ‘포스코 정체성을 훼손하는 현 경영진의 진정한 자성을 촉구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포스코홀딩스 경영전략팀에서 작성해 지난 4월 6일 임직원들에게 공유한 ‘포스코 그룹 정체성’이라는 메시지에 담긴 ‘포스코는 국민기업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문이다.

많은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지만, 되짚어 보기로 하자. 포스코홀딩스의 글은 △포스코홀딩스는 2000년 정부 보유지분 전략매각에 따른 완전 민간기업이고 외국인 지분도 51.3%에 달한다 △대일청구권 자금의 10%만이 포항제철소(1~2기) 건설에 사용됐고, 사용된 자금 역시 1971~1973년 자본금으로 전환돼 민영화 과정에서 정부 보유지분 매각으로 환수됐다 △제철소 건설에 사용된 유상 청구권 자금(차관) 역시 1996년 원금과 이자의 상환이 완료됐다 △민영화된 기업은 민간이 설립한 사기업과 동일시되며, 과거 공기업이었다고 해서 국민기업이라고 인식되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경영권을 행사하는 지배주주가 없으므로 국민기업이라는 주장은 잘못됐으며, 전문 경영체제가 보편화된 민간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따르고 있다 △정부의 보호와 육성으로 성장한 사실에 대해서는 당시 정부는 포스코뿐만 아니라 여러 기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도움을 줬고, 이에 대한 지원 역시 1986년 종료됐기에, 그간 특별한 혜택은 받은 게 없다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면서 포스코는 국민기업이라는 이름으로 부당한 간섭과 요구는 없어져야 한다면서 앞으로 친환경 미래소재 분야의 ‘국가 대표기업’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창립 요원은 “포스코가 국민기업이라는 칭송을 받는 것이 부담스럽고 부당한 간섭의 빌미가 되니 국민기업이란 이미지를 지워버리고 싶다는 취지였을 것”이라면서 과도한 비판에 시달리고 있는 후배들을 품에 안았다.

그러나 창립 요원은 “포스코는 상업적일 수만은 없는 고유의 역사와 정신과 전통이 확고한 회사”라면서 “포스코의 뿌리가 대일청구권 자금이라는 사실은 ‘그 돈을 정부에게 언제 다 상환했느냐’라는 <돈의 문제>를 초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의식과 윤리의식의 문제로서 ‘산업화의 초석이 돼야 하겠다’라는 선배들이 포스코의 탄생과 성장에 혼신의 힘을 쏟게 만든 <포스코 정체성의 핵>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포스코, 과거와 현재와는 다르다


글 초반에서 언급했듯이 기자는 이번 논란의 원인은 ‘국민기업’에 대한 과거의 현재의 포스코인들 사이에 벌어진 이해 때문으로 본다. 이에 대해 창립 요원은 다음과 같은 글로 갈등의 근원을 제시했다. 그들은 “민족 기업, 국민기업이라는 수식어는 포스코가 민영화되었다 하여 없어지지 않는다. 법규적 요건에 의한 ‘국민기업’과 역사적, 윤리적, 전통적 근거에 의한 ‘국민기업 칭호’는 구별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국민기업이 일반명사화해서 많은 기업들에도 동일하게 불렀지만, 사실 이 단어가 처음 세상에 등장하게 한 것은 아무래도 포스코가 설립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덕분이라고 봐야겠다. 민족 기업의 또 다른 표현인 국민기업은 1970~1980년대에는 ‘국민으로부터 유‧무형 지원을 얻어 설립해 발전한 기업’이라는 통념으로 쓰였던 것 같다.

1992년 9월 24일 포스코는 ‘민족 기업, 인간 존중, 세계지향’이라는 기업이념을 선포했으며, 일주일여 후인 10월 2일 광양제철소 고로 4기 준공식을 겸한 포스코 4반세기 대역사 종합 준공식에서 청암은 “다음 세기의 번영과 다음 세대의 행복을 창조하는 국민기업의 지평을 열어가자”라고 역설했다. 여기서 말하는 민족 기업과 국민기업의 정의도 위와 동일선상이다.

그런데, 국민기업에 또 다른 정의가 추가됐다. 1988년 포스코 국민주 발행과 청약으로 1차 민영화가 이뤄진 시점에 국민기업은 ‘특정인이 주식을 많이 갖고 있지 않고 고루 잘 분산된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주를 발행한 다른 공기업들도 국민기업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국민기업’ 의미를 전‧현직 포스코맨들은 모두 같은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해석은 정반대다. 전직 창립 요원들은 포스코 설립과 성장의 역사에 사명감과 자부심이 크고, 따라서 ‘국민기업’이라는 칭호는 영광스러운 것이다. 포스코 제철소와 함께 하는 포항시민과 광양시민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반면, 현직 포스코맨들에게 있어 ‘국민기업’은 자신의 현재 위상과는 맞지 않는 불편한 옷과 같은 것이다. 이들은 포스코가 설립된 지 53년 후의 세계를 살고 있다. 입사 시기도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후였고, 경영진과 임원진들도 민영화 이후 포스코에 입사한 사례도 많다. ‘국민기업’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날 옛적 단어라 마음에 잘 와닿지 않는다. 지금 포스코는 수출기업이다. 조만간 해외 사업 비중이 국내를 넘어설 것으로 보여 포스코의 글로벌화는 더욱 가속할 것이다. 그 당시 ‘국민기업’은 포스코의 미래를 떠올렸지만, 시대가 바뀐 지금은 과거에 집착하는 유물이 됐다.

더군다나 국민기업이라는 이유로 정치권과 정권이 얼마나 많이 포스코를 흔들었나? 그럴 때마다 포스코맨들은 정신적‧육체적으로 피해를 보았다. “대체 국민기업이 뭔데?” 포스코맨 사이에서도 이런 질문이 자주 오간단다. 지주회사 포스코홀딩스 출범으로 새로운 도약의 첫발을 내디딘 포스코 그룹은 적어도 ‘국민기업’이라는 정신적 유물은 잊지 않되 ‘국민기업의 한계’를 극복해내야 한다는 과제도 해결해야 한다. 그런 의도에서 글을 공유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건 포스코홀딩스의 주장과 창립 요원의 반론 모두 틀렸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포스코 그룹이 조금만 더 신중했으면 하는 것이다. 올 초 포스코홀딩스 본사의 서울 설치 건도 포스코 그룹의 계획은 당연하였으나 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시끄러워졌다. 국민기업 논란도 대국민 캠페인 전개나 토론회 개최 등을 통해 공론화시켰으면 어땠을까. 사기업 이해관계를 공적인 자리에서 논하는 건 상식에 맞지 않지만, 포스코니까 그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대화를 통해 모두가 공감하는 선에서 과거의 현재, 미래의 포스코를 상징하는 새로운 수식어를 만들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채명석 산업부장
채명석 산업부장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