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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의 산업시각] 삼성의 기술경영이 성공시킨 LCD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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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의 산업시각] 삼성의 기술경영이 성공시킨 LCD 사업

반도체 이어 1991년 시작 후 31년 만에 간판 내린 성공사업
‘같은 가격이면 더 큰 화면 니즈’ 알아챈 경영진 결단 통해
日 경쟁사보다 한뼘 더 큰 패널, 파트너에 공급해 시장 늘려
1993년 9월 9일 삼성전자 기흥사업장내에서 양산한 9.4형(인치)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화면(TFT-LCD) 해외 첫출하를 기념하기 위해 운송트럭 앞에서 임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디스플레이이미지 확대보기
1993년 9월 9일 삼성전자 기흥사업장내에서 양산한 9.4형(인치)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화면(TFT-LCD) 해외 첫출하를 기념하기 위해 운송트럭 앞에서 임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디스플레이
삼성이 LCD(액정화면) 사업을 31년 만에 중단한다.

반도체 개발‧생산방힉과 유사해 세계 1위 성공 DNA를 심기에 가장 용이한 사업이었던 LCD 사업을 통해 삼성은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하던 브라운관(CRT)에서 평판 디스플레이로 전환하는 격변기에뛰어들어 전 세계 모든 선발 전자업체들을 제치고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로 성장했다.

비록 중국의 공세에 밀려 LCD 사업에서 철수하지만, 이후 LED(발광다이오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를 넘어 QD-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에선 여전히 경쟁사를 앞세우는 ‘초격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LCD 사업을 접는 이 순간, 과연 LCD 후발주자였던 삼성이 어떻게 선도자였던 일본을 제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기술적 우위와 대규모 투자 못지 않게 시장의 변화를 읽어나가는 경영진의 판단력과 글로벌 파트너 업체들과의 연합전략 덕분에 가능했다. 다음은 2005년 성균관대학교에서 진행한 삼성 CEO 특강에서 이윤우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의 강연 내용 중 LCD 사업부문을 발췌한 것이다.
LCD 사업은 어렵다.

자재비용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세트(완제품) 사업과 같고. 선행 투자 규모도 크기 때문에 반도체 사업 특성 △계란으로 바위치기 수준의 도전적인 사업 △한 두푼 투자하는 게 아니라 삼성그룹이 망하느냐 마느냐 정도의 막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리스크한 사업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인재가 필요한 사업 △한달만 늦어도 막대한 돈이 왕창 날아갈 만큼 스피드 한 사업 △상시적인 위기의식 속에 살아야 하는 스피드한 사업과 동일하다.

여기에 LCD 패널 제품의 로드맵도 불분명하고 기복이 심하다. 반도체 사업을 ‘스트레스 사업’이라고 하는데 반도체보다 사업의 좋지 못한 모든 특성을 다 갖추고 있는 분야가 LCD 사업이다.

대신 장점은 확실한 시장이 있다는 것이다. 1991년 삼성전자가 LCD사업을 시작했을 때 PC 시장은 연간 1억2000만대가 팔렸다. 이중 노트북PC에만 LCD가 들어갔는데 노트북PC는 연간 100만대 정도 팔렸다. 데스크탑PC는 아직 LCD가 비싸 LCD를 쓰지 않았다.

TV에도 LCD가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TV도 연간 1억2000만대씩 팔렸다. 즉, 2억4000만대의 확실한 시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업에 성공하고 가격을 맞추면 얼마든지 교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차세대 수종산업이 된다는 확신을 갖고 남들보다 먼저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현재(2003~2004년 기준) LCD는 삼성전자 전체 매출의 27%, 반도체는 35%를 차지, 회사 매출의 50% 이상이 두 제품에서 나오며, 이익도 휴대폰도 있지만 대부분이 여기서 나온다.

LCD 부문 만을 독립시킬 경우 우리나라 전체 산업 중 6위에 해당할 정도로 성장했다.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삼성전자의 LCD 사업도 네 가지 발전단계가 있었다. 처음은 ‘태동기’, 두 번째는 본격적인 양산을 시작한 ‘기반 구축기’, 세 번째는 선진 회사를 따라잡고 1등으로 올라선 ‘도약기’, 마지막으로 업계 1위를 유지하는 ‘산업 주도기’이다.

LCD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적인 리더십이다, “1위는 우리(삼성)”라는 리더십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삼성이 표준을 만들어서 전 세계 업체들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만들자는 구상을 하게 되었다.

처음 LCD 사업을 시작할 때는 노트북 LCD는 10.4형(인치)이 주류였다. 일본 히타치가 10.4형을 만들었다. 우리도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몰랐으니 1라인에는 10.4인치를 만들려고 공장을 지었다. 그러려다 보니 생산한 LCD 패널 불량이 반 이상이고, 가격도 계속 내려갔다. 이 사업을 할 수 있겠느냐는 내부적 논의가 많았다. 그래도 우리는 자신감을 갖고 진행하여 가동 8개월 만에 수율 80%, 생산량 4만대 이상을 달성했다.

일본 LCD는 샤프, 히타치, 후지츠가 강하다. 이들 회사들이 LCD 패널을 키워 11.3형을 표준으로 하기로 하고 3세대 라인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이들을 잡기 위해 더 큰 사이즈를 표준으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온 게 12.1형이다. 12.1형을 표준으로 하기 위해 세계 1위 노트북 생산업체인 일본 도시바와 제휴를 맺었다. 12.1인형 패널을 줄테니 이것으로 노트북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12.1형 패널 생산에 맞는 3세대 라인을 건설키로 했다. 우리의 3세대 기판은 12.1형 패널이 8장 나온다. 그런데 일본의 3세대 라인에서는 11.3형 패널은 8장이 나오지만 12.1형은 6장 밖에 나오지 않았다.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 규격으로 라인을 만들었다.

그런데 1995년 당시 어려운 시기에, 내부에서는 LCD 사업을 분사시키자는 말이 나올 정도였는데 4조원을 투자해서 공장 짓겠다고 하니 얼마나 반대가 심했겠는가. 결국 그들을 설득시켜 공장을 지었고, 12.1형 패널은 업계 표준이 되었다.

12.1형 패널이 나오자 경쟁업체는 이번에는 13.3형 패널을 만들었다. 우리는 똑같은 방법으로 이번에는 미국 델과 손을 잡고 노트북을 14.1형 패널로 만들자고 했다. 이와 함께 델은 PC제품 모니터로 취급했던 브라운관을 라인에서 몰아내고 앞으로 LCD 모니터로 한다고 약속했다. 델과 손잡고 14.1형 패널을 표준으로 발표하자 13.3형 패널은 못 팔거나 가격이 떨어져 경쟁력을 상실했다. 이를 통해 삼성은 LCD 세계 1위에 오르는 한편 누적적자도 해소할 수 있었다.

이 전략은 데스크탑용 모니터에도 적용했다. LG, 샤프. 히타치 등이 15형, 18.1형 패널을 시장에 내놓았을 때 우리는 17형, 19형 패널을 같은 가격에 주겠다고 했다. 당연히 소비자는 같은 가격에 더 큰 화면의 제품을 선택했다. 이를 통해 많은 이익을 올리는 한편 업계의 사실상의 표준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젠 TV였다. 브라운관을 LCD로 바꿔야 하는데 많은 방법을 연구했고, 돈도 많이 필요했다. 가로 길이 300m, 세로 길이 350m인 패널을 들 수 있는 거대 공장을 지어야 했는데 이 것이 바로 7라인 공장 크기이다. 따라서 TV하면 아직도 인정받는 일본 소니와 제휴를 맺고 합작회사(당시 S-LCD)를 설립했다. 마켓(시장)을 잡으면서 캐퍼(생산규모)를 늘리는 방법을 썼다. 40형, 46형 제품을 갖고 지금부터 시장을 공략하려 한다. TV시장 진입에 성공하면 아직도 한 없이 넓은 시장을 잡을 수 있다. (삼성은 2002년부터 LCD 패널 세계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고, 삼성전자는 이 패널을 바탕으로 개발한 글로벌 히트작 LCD TV ‘보르도’로 글로벌 TV시장 를 차지, 지난해까지 18년 연속 세계 1위 위상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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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산업부장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