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대표소송’은 회사가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소(訴)를 제기하지 않을 경우에 개개의 주주가 회사에 갈음하여 제기하는 소를 말한다. 즉, 회사 경영진이 잘못된 경영활동으로 주주가치가 하락했을 경우 주주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상법에서는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자는 발행주식의 총수의 100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라고 명기하고 있다. 따라서 대표소송의 영향력과 효과를 높이려면 지분율이 높은 주주가 제기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국내 주식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더 적극적으로 대표소송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2022년 7월 말 기준 국내 주식 투자액은 138조8000억원으로 전체 국민연금 기금의 15.2%에 해당한다. 또한, 2021년 말 기준 투자한 종목 수(주식 평가액 1억원 이상)는 1164개이며, 이 가운데 지분율 5% 이상 종목은 260여개, 10% 이상은 40여개에 이른다. 당연히 이들 종목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네이버, 현대자동차, 삼성바이오로직스, 카카오 등 국내 대표기업들이 포함되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계는 국민연금의 크고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국민연금의 입김이 기업경영에까지 미치지 않겠냐는 우려에서다.
여기에 국민연금이 기업에 대표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대표소송은 주주를 보호하는 데 필요하다는 점은 동의한다. 그러나 대표소송이 본래 취지와는 다른 의도에 의해 추진되면 벌어질 피해는 누가 감당해야 할까. 국민연금은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공적 연금 제도이며, 국민 개개인이 소득 활동을 할 때 납부한 보험료를 기반으로 하는 연금이다. 국민연금이 기금을 투자한 기업에 대표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결국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을 간접적으로 통제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24일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결정 권한을 수탁위에 일임하는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개정안’을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에 상정했다.
‘국민연금법’상 수탁위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위 안건을 사전 검토‧심의하는 기구로 규정되어 있다. 소위 말하는 자문기구로, 기금위에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에 머물며, 기금위 결정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책임을 지지 않는’ 자문기구가 기업과 주주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권한 행사 여부를 결정토록 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이해하기 힘든 발상이 나온 것인지는 수탁위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들여다보면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수탁위 위원은 총 9명으로 사용자(경영계)와 근로자(노동계), 정부가 지명한 시민단체 추천 인사가 포함된 지역가입자 단체 등이 각 3명씩 추천하며, 다수결로 결정한다. 사용자 측과 근로자 측 간 주장이 평행선을 그려왔듯이 수탁위에서도 안건마다 경영계와 노동계는 늘 충돌했다고 한다. 이에 지역가입자 측 위원이 ‘캐스팅 보트’를 쥐기 때문에 경영계 입장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한다.
더군다나, 수탁위의 책임지지 않는 결정이 몰고 올 파장은 국민연금에도 미칠 수 있다. 대표소송에서 패소했을 경우 국민연금은 의도와 상관없이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하며, 이러한 책임을 국민이 납부한 기금으로 메워야 한다. 매우 심각한 문제다.
지난달 열린 기금위에서도 해당 안건에 대한 논의가 지속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결론을 내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도입 여부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 국민연금을 책임지고 있는 보건복지부가 부여받은 결정 권한을 법 개정에 맞도록 회수해 위법성을 해소하고, 기금위가 구체적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자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전면적으로 지침을 개정해야 한다.
최악의 경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하나의 규제라도 더 풀어 기업이 좀 더 본연의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범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할 때다.
채명석 산업부장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