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종대의 스틸스토리] 경영권 바뀌어도 끄떡없는 철강기업

글로벌이코노믹

[김종대의 스틸스토리] 경영권 바뀌어도 끄떡없는 철강기업

연합철강, 동국제강에 합병된 후 내년 3월 다시 동국씨엠으로 부활
국제그룹 계열사 연합철강이 동국제강그룹으로 넘겨진 후 유니온스틸로 개명했다가 다시 동국제강에 합병됐다. 사진=동국제강이미지 확대보기
국제그룹 계열사 연합철강이 동국제강그룹으로 넘겨진 후 유니온스틸로 개명했다가 다시 동국제강에 합병됐다. 사진=동국제강
지난 12월 10일(토)은 옛 연합철강의 창립기념일이다. 동국제강과 합병되지 않았다면 창립 60주년 기념식을 가져야 하는 해이다. 연합철강은 국내 냉연기업 중 가장 부침의 역사가 극심했던 기업이다. 라이벌 일신제강 역시 비운의 철강기업이란 별칭을 얻을 정도로 경영권을 넘겨야 하는 과정에서 억울한 측면이 엿보이기도 한다. 이 두 기업의 생산 제품은 국토재건의 메아리가 한참일 시기에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재계 랭킹에서도 상층부에 이름을 올렸던 기업들이었지만 온전히 경영권을 후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한국 땅에서 냉연메이커(단순압연)의 첫 장을 열었던 라이벌 기업 연합철강과 일신제강은 사명을 두서너 번 바뀌었다. 창업 당시의 사명은 아예 역사 속에 묻혀 버렸다.

일신제강의 현재 사명은 KG스틸이다. 창업자인 주창균 회장은 소위 장영자 사건이란 이름으로 온 나라를 어지럽게 만들었던 사채 관련 사건으로 기업의 경영권을 동부그룹에 넘겨야 했다. 그러나 동부그룹 역시 2014년에 막대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KG그룹으로 경영권을 넘기고 KG동부제철(2019년)에서 KG스틸로 새 이름표를 달았다.

연합철강의 사주였던 권철현 씨는 1976년 국제그룹으로 경영권을 넘겼다.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은 방만한 그룹 확장으로 인해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자 1985년 2월 21일 국제그룹 해체라는 전대비문의 이름 하에 경영권을 제3자에 이양했다.
국제그룹의 계열사였던 연합철강은 동종업체이면서 부산에 연고를 둔 철강기업, 재무구조가 양호한 기업이란 측면에서 동국제강그룹으로 넘겨졌다. 이 경영권 변동 과정에서 연합철강 임직원들은 무려 14년 동안 경영권 이양 반대 운동을 펼쳤지만 결국은 동국제강의 계열기업으로 운영되면서 사명을 유니온스틸로 개명했다가 2015년에 동국제강에 합병되었다. 동국제강은 내년 3월에 이사회를 열고 컬러강판을 중심으로 한 표면처리부문을 분리해서 동국씨엠(가칭)으로 새롭게 변신시킨다는 전략을 내놓았다.

두 기업의 창업자 권철현(연합철강) 씨와 주창균 씨(일신제강)는 ‘비운의 철강인’으로 기억되고 있는데, 두 분 모두 작고했다. 연합철강은 국내 철강 산업의 냉연부문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진 핫한 기업이었다.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릴 정도로 세인들의 찬사와 비난을 차례로 겪은 비운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연합철강 60년 기업역사 속에 깃들어 있는 내막은 한편의 드라마로도 부족하다.

가장 핫한 이야기의 핵심은 경영권의 부침이다. 1962년 12월에 창립한 연합철강은 1976년에 국제그룹으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1974년 연말 기준으로 연합철강의 수출물량은 35만 여 톤에 달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실적이다. 이 실적은 연합철강에게 국내 최초의 1억불 수출탑이란 상을 안겨 주었다. 당시 포스코는 계속적인 건설 중이었다.

연합철강의 비운은 1억불 수출탑을 받은 지 2년 만에 국제그룹으로 경영권을 넘겨야 했던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결정적인 이유는 재무상태가 위기 수준이었다는 점이었지만, 세인들은 3공화국에 밉보인 결과 반강제적으로 경영권이 넘어 갔을 것이란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연합철강이 동국제강그룹으로 합병된 후 개명한 유니온스틸. 사진=동국제강이미지 확대보기
연합철강이 동국제강그룹으로 합병된 후 개명한 유니온스틸. 사진=동국제강


1974년 연합철강의 매출액은 626억 원이었다. 그런데도 경영이 악화된 것은 최대 수출 국가였던 베트남이 전쟁을 종식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숨어 있다. 1976년에는 상황이 다소 나아지면서 712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2년 연속 결손이었다.

1975년 이전부터 연합철강의 경영사정은 악화일로였다. 원자재인 핫코일 가격이 상승일로였지만 판매가는 제자리걸음에다 판매가격이 떨어지기까지 했으니 채산성이 악화되어 부채비율이 400%에 이르렀다. 한 때는 1000%까지 치솟은 때도 있었다. 당시 원자재인 핫코일은 170달러 수준이었다. 반면에 완제품 가격은 180달러에 불과했다. 50여 달러에 달하는 가공비를 부채로 쌓을 수밖에 없었다. 수출하는 대로 적자가 나는 상황이었지만 3공화국은 연합철강의 경영상황을 그대로 봐주지 않았던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게다가 회사를 책임져야 하는 사주 권철현 씨가 딸의 골수암 치료를 위해 해외에 나가 있어 수습할 여력이 없는 데다가 외화유출 혐의로 수입 원자재를 국내 전용 판매라는 악수까지 두면서 여론도 최악에 이르렀다.

1975년 당시 한국은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국가부도를 감지한 대통령이 수출기업들을 불러 대책을 세우고 독려했다. 그런데 하필 연합철강의 사주 권철현 씨는 이 자리에 궐석하여 정권의 반감을 살 수도 있었다. 정부의 온갖 혜택을 다 받고 포상까지 받은 기업이 국가위기를 모른 체한다는 의심을 받게 된 형국이었다. 엎친데 덮친다는 속담이 연합철강 경영 한복판에 자리 잡은 가운데 연합철강의 경영 안팎은 상황이 급하게 돌아갔다.

결국 연합철강은 1976년 법인세 추징금 15억 원을 내지 못하고 모두 19억 여원의 결손이 발생하자 주거래은행이었던 서울신탁은행의 주도하에 연합철강을 은행관리에 넘기게 되었다. 당시 연합철강에 근무했던 중역들은 연합철강이 부실하다거나 전망이 안 좋아서 기업을 제3자에 넘긴 것이 아니라 권철현 씨를 경영에서 손을 떼데 하려는 의도로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일신제강이 동부제철에 인수된 이후로 순탄한 경영을 해왔던 동부제철은(현 KG스틸) 철강 산업이 하향국면에 진입한 이후 유럽발 금융위기 등이 철강업황을 장기침체에 빠뜨렸다. 동부제철 경영은 큰 충격을 받았다.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당진 전기로 열연공장은 제대로 가동되기도 전에 2014년 말로 문을 닫고, 2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부채부담만 안겼다.

국내외 유력 철강사들을 대상으로 매각을 추진했지만 번번히 불발로 그쳤다. 정부의 요청에도 포스코마저 동부제철 인수에 손사래를 쳤고,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등 '빅3' 역시 동부제철 인수 결과는 실패가 될 것이란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KG그룹이 동부제철을 인수하겠다고 나서자 철강기업 경험이 없는 KG그룹이 철강분야에 뛰어든 것부터 무모하다는 평가가 나왔었다.

동부제철은 결국 KG그룹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사명을 KG동부제철로 했다가 최근에 KG스틸로 바꾸었다. 동부제철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전기로 설비는 리버티스틸로 매각되면서 국내 전기로 메이커의 걱정을 한숨 돌리게 했다.

KG스틸의 오너는 곽재선 회장이다. 그는 2003년 KG케미칼을 인수하고 KG그룹을 출범시켰다. 2010년에 언론사 이데일리를 인수하고 2020년에는 KG모빌리언스를 인수했다. KG케미칼은 2005년 설립한 KG바텍을 2011년 합병했다. 또 시화에너지를 인수, 지금의 KG에너지로 사명을 변경했다. 2017년에는 KFC코리아, 희테크(KG ICT) 등을 인수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여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두 냉연기업의 오늘은 활발한 항해중이다. 동국제강부산공장(전 연합철강)은 컬러강판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생산 능력을 갖출 정도로 최첨단의 설비를 가동하고 있다. 패션 감각을 철판에 적용한 기술로 인도와 동남아국가로의 수출 물량이 증대하고 있다. 동국제강이 연합철강의 경영권을 인수한 뒤로 최대의 투자를 과감하게 해왔던 덕분이다.

일신제강(현 KG스틸)도 냉연부문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당진공장의 전기로는 아예 매각했다. 구조조정을 마친 KG스틸 역시 과감한 설비 투자에 인색한 모습이 아니다. 선장이 바뀌어도 끄떡없는 철강기업들이 많아야 국가 기간산업이 흔들리지 않는다.


김종대 글로벌철강문화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