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스벨트 대통령이 후버댐을 두고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후버댐의 위용은 엄청나다. 후버댐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자동차로 약 50분 거리에 있다. 그랜드 캐니언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이곳을 들렀다 갈 만큼 후버댐의 명성은 자자하다. 영화 007과 '트랜스포머'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핸더슨을 지나 93번 도로를 달리다 보면 큰 호수가 나타난다. 이 호수는 후버댐을 만들 때 인공적으로 조성된 ‘미드 호수(Lake Mead)’이다. 바다같이 넓은 호수의 끝을 따라가 보면 웅장한 댐이 일어선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후버댐의 규모에 놀라고, 지형적 악조건에 또 놀라고, 미국인들의 도전정신에 감탄한다. 후버댐(Hoover Dam)은 미국 네바다주와 애리조나주 경계에 있는 콜로라도강 중류의 그랜드 캐니언 하류, 블랙 캐니언에 있다. 높이 221m, 길이 411m의 중력식 아치댐이다. 이 댐의 완성으로 길이 185km의 인공호수인 미드 호수도 생겼다.
후버댐 건설은 미국 서부 지역에 부족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당시 미국은 서부 개척이 시작되고, 인구가 대폭 유입되자 생활용수 등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었다. 특히 봄과 여름에 녹은 눈은 낮은 지역의 농토와 거주지를 자주 잠기게 했다. 반대로 늦여름이나 초가을이 되면 하천의 수량이 매우 적어 인근 지역에 물을 공급할 수가 없었다. 결국, 로키 산맥으로부터 캘리포니아 만에 걸쳐 2,253km를 흐르는 콜로라도강을 이용하여 홍수 조절과 적정량의 물을 확보하는 프로젝트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마침 미국은 '블랙 먼데이'로 시작된 경제공황이 무려 10여 년간 지속되자 '테네시강 유역 개발계획'과 '뉴딜 정책'을 앞세워 댐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실업난을 극복하고, 미국 경제를 다시 안정화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볼더댐으로 이름 붙여진 이 공사는 1931년 후버 대통령의 주도로 착공했으나 완공하지 못하고, 1935년 루스벨트 대통령에 이르러 건설을 완료하게 된다. 이후 1947년 '후버'대통령을 기념하여 후버댐으로 바꾸었다. 2025년이면 90주년을 맞이한다.
후버댐의 건설을 주장한 허버트 클라크 후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중에 제일 인기가 없는 대통령이란 오명을 받고 있지만 대규모 댐 공사를 통해 미국경제를 안정시키는 등 실물경제에 능통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독일출신의 이민세대이며, 스탠포드대학에서 지질학과 광산학을 전공하고 젊은 나이에 백만장자가 된 신화적인 인물이다.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를 10년간 여행했으며, 중국에서 대기업을 7년간 이끌 정도로 해외경험이 풍부한 인물이다. 상무 장관을 거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후버는 미국 3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의 취임연설의 핵심은 경제적 가치였다.
"모든 차고에는 자가용을! 모든 냄비에는 닭고기를!"
(A chicken in every pot, a car in every garage)
이 공약은 이미 경제공황의 한복판에 머물고 있는 미국경제를 완벽하게 되살리는 데는 역부족이었지만 후버댐 건설로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했고, 경제회복의 단초를 마련한다.
아무튼 후버댐 건설은 1935년 9월 30일 당초 계획보다 2년 앞서 완공됐다. 1년 후 발전시설이 완공되고 10월에는 첫 발전을 시작했다. 연령이 90년 가까운 이 댐은 물과 전력의 판매로 공사비를 이미 다 갚았고 남은 돈은 매년 보수 유지비로 사용되고 있다. 후버댐에 투입된 콘크리트 양은 6,600만 톤이다.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미국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는 4차선 고속도로를 건설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이다. 2년의 건설기간 동안 2만 명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었지만 댐 건설 중 112명이 사망할 정도로 공사는 험난했다.
기록에는 96명이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콘크리트에 매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첫 희생자는 댐 건설지를 조사하다 익사했다. 그 후 13년이 지나 발생한 마지막 희생은 첫 번째 희생자의 아들이라고 한다. 미국 현대 건축물 중 7대 건축물로 손꼽히는 후버댐의 외관 디자인은 LA의 유명 건축가 ‘카우프만’이 맡았다. 콘크리트 댐의 두께는 최대 200m, 저수량은 320억㎥이다. 소양강댐 저수용량의 11배가 넘는다. 수력발전 용량은 2080MW로, 원자력발전소 2기의 용량에 달한다.
댐에 투입된 시멘트의 빠른 냉각을 위해 냉각탑을 별도로 건설했다. 이 냉각탑을 통해 수온 4℃의 냉각수를 강철 파이프 라인으로 공급하여 공사기간을 2년가량 단축시켰다. 그래도 가장 깊숙한 곳에 타설된 콘크리트는 근 90년이 된 아직까지도 완벽하게 굳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후버댐 건설로 인해 탄생된 미드 호수의 넓이는 서울시의 크기와 비슷하다(593㎢). 미드 호수에 저장된 물은 수력 발전, 관개, 식수 및 산업 용수 등으로 사용되고 댐의 상부는 콜로라도 강을 가로지르는 교통망 도로로 활용되고 있다. 미드 호수의 이름은 호수개발(1924~36) 책임자였던 엘우드 미드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다.
다큐멘터리 채널 ‘히스토리’는 후버댐이 인류가 멸망하더라도 1만년을 버틸 수 있는 건물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대규모의 건축공사나 토목공사 현장에서는 또다른 경제가 파생하는 법이다. 인간이 밥만 먹고 살 수 없듯이 후버댐 건설에 참여한 수만 명의 노동자들도 여가를 즐겨야 했다. 후버댐 공사 현장 인근의 라스베이거스는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자연스럽게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산업이 활성화 되고 그곳은 밤을 잊은 불야성의 도시로 발전된 것이다. 후버댐과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는 인간에게 필요한 인프라의 제공 차원을 넘어 미국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 곳에는 보이지 않는 철강재가 엄청나게 투입되어 댐의 척추를 견고히 하고 있다.
물 위에 연육교를 놓아 섬과 육지를 잇고, 육지의 배를 갈라 빠른 바다 길을 만들고, 바닷물과 호수를 막아 댐을 만드는 인간의 지혜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다. 그 지혜는 토목기술의 발전과 함께하고, 토목기술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것은 철강 산업이다.
김종대 글로벌이코노믹 철강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