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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스토리: 다리이야기(11)] 땅과 바다 밑에 길을 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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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스토리: 다리이야기(11)] 땅과 바다 밑에 길을 뚫다

한강에는 37개의 다리가 얹혀 있다.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이 다리에는 낭만적인 스토리보다 비극의 스토리가 더 많다. 끊어진 한강 철교 사진은 6‧25 전란의 비참한 장면을 연상 시킨다. 성수대교 붕괴는 우리에게 부실 공화국이란 오명을 씌웠다.

프랑스 파리를 가로 지른 센 강변에도 공교롭게 37개의 다리가 있다. 파리 시내를 가로지르는 센 강변의 다리들은 예술의 도시답게 독특한 형태를 갖췄다. 철강인들이 세계 각국의 교량에 유독 주목하는 것은 토목공학이 구조재료, 즉 강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지하철 터널을 뚫는 모습.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하철 터널을 뚫는 모습. 사진=로이터

건축공학도에게 “세계 제일의 건설회사가 어디냐”고 질문을 던졌더니 의외로 프랑스 ‘브이그’를 말한다. 자칭 ‘지구의 조각가’라고 했던 ‘벡텔’은 10위권에 턱걸이 하고 있다. 한국의 건설기업들도 기술 수준이 세계적이지만 아직 상위권에 랭크되지는 못했다.

고성장 시대와 성숙 시대의 최고 자리는 그만큼 기술의 정도나 경험 그리고 기업역사에서 차이가 난다. 토목기술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프랑스의 기술은 지하 수십 미터를 뚫고 건설된 파리의 지하철이 대변해 준다. 파리의 땅속에 거미줄처럼 교통망을 형성한 파리 지하철의 역사는 1900년에 시작되었다. 파리 시내 땅속에는 파리시를 설계한 오스만 시장 시절에 만들어진 지하 상수도가 깔려 있지만 파리의 지하철도 오랜 역사를 지닌 토목공사의 본보기이다.

그보다 먼저 개통된 지하철은 영국 런던 지하철이다. 프랑스보다 37년이나 앞서 개통되었다. 최초의 지하철은 1896년에 개통된 영국 글래스고 지하철이다. 그 다음이 헝가리 부다페스트 지하철이다. 파리 지하철은 유럽에서 네 번째 지하철로 개통되었지만 땅을 파면 해수가 스며드는 지형적 특성을 극복한 기술이어서 토목기술 분야에서는 으뜸으로 삼는다.

프랑스 지하철은 1호선부터 14호선, 그리고 2개의 독립지선을 포함해 모두 16개 노선이 연결되어 있다. 총 운행거리 213㎞를 통과하는 거리에는 약 300개의 지하철역이 있다. 이들 역은 교외 지역을 고속으로 연결한다. 가장 최근에 건설된 지하철은 2007년 개통된 14호선이다. 지하철 입구에서부터 플랫폼 등은 대부분 강철과 스테인리스로 구성됐다. 이 노선은 ‘리옹역’과 ‘생라자르역’까지 통과하는 9㎞를 무인 운전시스템으로 운행된다.

땅은 좁고, 교통망은 한정되어 있다. 하늘로 길을 내자니 비행기의 이착륙 거점을 걱정하는 것은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이다. 최근에 한반도 남쪽에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대신 가덕도에 신공항을 건설한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하늘 길보다 바다 속에 길을 뚫은 유럽을 지켜보면 하늘 길에 너무 집착할 것도 아니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지하철을 개통시킨 영국은 런던에 지하철을 놓기 23년 전에 이미 바다 길을 만들었다. 그 바다 길은 템즈강 하저 터널이다. 1841년에 관통된 템즈강 하저터널은 1주일에 고작 4.3m씩의 굴착을 하면서 무려 20년 가까운 시도 끝에 완성했다.

완공된 템즈강 하저터널은 폭 11m, 높이 6m, 길이 396m 규모이다. 영국 국왕이 방문한 직후에 영국인들에게 개방된 시기가 1843년 3월이다. 그러나 템즈강 하저터널은 보행자들만의 통로로만 사용되어 사업적인 성공을 이루진 못했고, 점차 우범지대로 전락했다.

노숙자가 들끓고, 강도‧매춘부 등이 출몰하던 이곳은 1869년 ‘동 런던 철도’의 터널로 사용되면서 비로소 교통로의 기능을 갖게 됐다. 지금은 보수와 보강작업을 거쳐 2010년부터 런던 지하철의 일부로 사용되고 있다.

터널의 굴착에는 강철의 사용이 필수 조건이다. 특히 터널을 뚫을 땐 작업 인부들의 인명 사고가 없어야 하고, 터널이 무너지지 않도록 안전한 버팀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기본사항이다. 여기서 인간의 갖가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며, 강철을 소재로 한 특수 강철장비도 출현한다.

템즈강 하저 터널을 만든 핵심은 ‘배좀벌레’에서 힌트를 얻은 ‘쉴드’공법이다. 두 번째 하저 터널인 ‘타워 서브웨이’는 ‘세그멘트’라는 강철 조각을 볼트로 연결하여 라이닝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접목시켜 성공한 사례이다.

‘타워 서브웨이’는 지상에서 제작한 강철 세그먼트를 가져와 볼트로 조립만 하면 되는 스피디하고 안전한 작업 방법을 적용했다. 터널이 무너지기 전에 재빨리 강철 세그먼트를 끼워 놓으면 터널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타워 서브웨이’는 처음 12명의 승객을 태운 소형 증기엔진 차량을 운행하다가 보행도로로 사용되었으나 다시 수력회사가 인수하여 용수 터널로 사용했다.

강철 세그먼트가 사용된 터널은 구조적으로 안전했다. 2차 세계대전 때 터널 근처에 폭탄이 떨어졌으나 안전도 조사 결과 70년이 지난 터널임에도 라이닝 상태는 매우 양호했다고 한다.

터널을 뚫으려면 굴착기가 있어야 한다. 강철로 구성된 굴착기는 많은 변천을 해왔다.

최초의 암반 터널 굴착기를 발명한 사람은 ‘헨리 조셉 마우스’였다. 몽스니 터널 굴착을 할 때(1848년) 처음 굴착기를 개발했으나 정치 바람에 공사가 지연되다가 다시 공사가 재개(1857년) 되었을 때는 천공-발파 공법이 성공적으로 도입 되는 바람에 ‘마우스’의 굴착기는 실제로 사용되지 못했다. 최초라는 의의를 제외하면 기술적 공헌은 없었다.

두 번째로 제작된 암반 굴착기는 미국의 후삭 터널을 뚫을 때 ‘찰스 윌슨’이(1851년 제작, 1853년에 시험) 적용했다. 그러나 굴착 속도가 너무 느려 시험 운행 후에 곧바로 고철로 매각되었다. 쓸 만한 굴착기가 개발된 것은 1881년에 개발된 원형의 회전식 ‘디스크커터’다. ‘브런트’와 ‘트리어’가 개발한 걸작이다.

암반 터널을 실제로 굴착한 최초의 굴착기는 ‘버몬트-잉글리시’의 ‘터널 굴착기’이다. 이 굴착기는 실제로 ‘채널 터널’의 영국측 구간을 굴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프레드릭 에드워드 브레킷 버몬트’와 ‘토마스 잉글리시아’라는 두 명의 육군 장교에 의해 설계되었다.

‘쉴드’ 개발의 계기가 런던의 템즈강 하저 터널이었다면 암반 굴착기의 개발 계기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 해협을 연결하는 ‘채널 터널’이다. 채널 터널은 1994년에 개통되어 초특급 열차 유로스타로 영국과 프랑스 파리를 2시간15분 만에 잇는다. 철의 위력은 지하도시를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도구가 된다.


김종대 글로벌이코노믹철강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