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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스토리: 다리이야기(15)] 140년 전 건설된 브루클린 다리…현수교의 원조이자 뉴욕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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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스토리: 다리이야기(15)] 140년 전 건설된 브루클린 다리…현수교의 원조이자 뉴욕의 상징

브루클린 다리는 존 뢰블링과 그의 아들 워싱턴 뢰블링, 그리고 며느리 에밀리가 참가해 완성시킨 다리이다. 에밀리는 준공식 날, 승리의 상징인 수탉을 안고 브루클린 다리를 건넜다. 사진=로이터
브루클린 다리는 존 뢰블링과 그의 아들 워싱턴 뢰블링, 그리고 며느리 에밀리가 참가해 완성시킨 다리이다. 에밀리는 준공식 날, 승리의 상징인 수탉을 안고 브루클린 다리를 건넜다. 사진=로이터
올해로 1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브루클린 다리는 미국 뉴욕의 명물이다. 최초의 현수교로 알려진 이 다리는 독일 태생의 미국 토목 공학자 존 아우구스투스 뢰블링이 설계했다.

뢰블링은 가느다란 강철 가닥을 꼬아 밧줄을 만들고 이를 다리 중앙의 경간에 달아맨 현수교의 모습은 웅장함을 넘어 경이로운 자태를 뽐내며, 다리를 보는 이들의 시야가 넓게 트이고 한번 쯤 걷고 싶게 만든다. 뉴욕의 랜드마크로 일컬어지는 브루클린 브리지는 여러 가지로 의미를 품고 있는 다리이다.
브루클린 다리는 현수교의 대표적인 전형이다. 현수교는 강폭이 넓어 교각을 세우기 어려운 곳에 긴 다리를 건설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공법이다. 브루클린 다리는 뢰블링의 지휘아래 건설을 시작했지만 정작 존 뢰블링은 공사 중에 고산병으로 사망했다.

그 후 그의 아들인 워싱턴 뢰블링이 건설을 이어갔으나 그 역시 고산병으로 인해 중증장애인이 되었다. 그래서 워싱턴의 아내인 에밀리 뢰블링이 남편을 대신하여 건설 현장을 지휘하였다. 에밀리는 남편과 건설자들과 소통하면서 다리 건설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였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브루클린 다리는 1883년 5월 24일 완공됐다.

길이 1,825m, 폭 25m로 세계에서 가장 큰 현수교로 등장한 브루클린 다리는 등장하자마자 세인들의 인기를 끌었다. 개통식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체스터 아서(Chester A. Arthur) 미국 대통령도 참석했다. 다리 공사를 주도했던 뢰블링가의 아내 에밀리는 승리의 상징인 수탉을 태운 첫 번째 마차를 타고 다리 위에서 브루클린 쪽으로 가로질러 건너갔다.

다리 완공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승리를 상징하는 수탉을 앞세웠는지 이를 바라보는 군중들도 아낌없이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개통 첫날, 브루클린 다리를 건넌 인파는 무려 15만 명이 넘었다. 뿐만 아니라 1,800대 이상의 차량도 브루클린 다리를 건넜다는 기록이 당시 언론에 기록되어 있다. 다만,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인 1,510만 달러(약 200억 원)의 엄청난 건설비가 투입된 이면에는 공사과정에서 27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옥에 티였다.

당시 뉴욕 시민들은 이스트 강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다리 브루클린의 안전성에 의문을 가졌다. 브루클린과 뉴욕시를 연결하는 소중한 교통수단이지만 “이렇게 크고 긴 다리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하는 우려가 있었다.

이 우려는 귀신의 주문처럼 발생했다. 다리가 개통된 지 일주일 만인 5월 30일 벌어진 압사 사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한 여성이 다리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다른 여성이 비명을 지르는 사이 군중이 앞으로 밀려나갔다. 당황한 사람들은 차례로 밀려나면서 순식간에 좁은 계단은 사람들로 꽉 막혀 서 있던 순서대로 겹겹이 쌓여 압사하고 있었다. 몇 분 만에 1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생명을 잃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28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지난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할로윈 축제를 즐기려고 수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일어난 압사사고를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압사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에 쇼맨이자 서커스 창립자인 P.T. 바넘은 브루클린 다리 개통을 축하하겠다는 엉뚱한 제안을 내놓았다. 당시 서커스로 유명세를 얻고 있었던 코끼리 점보를 앞세워 브루클린 다리에서 코끼리가 다리를 횡단하는 행진을 벌이겠다는 것이었다. 바넘의 제안은 단번에 거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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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다리를 바라보는 대중의 신뢰는 여전히 흔들렸다. 그리고 브루클린 다리 개통 1주기가 다가오자 다리의 파워를 보여주겠다던 바넘의 아이디어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브루클린 안전담당 기관은 바넘의 이벤트를 뒤늦게 허락했다. 1884년 5월 17일, 바넘은 코끼리 21마리와 낙타 17마리를 이끌고 브루클린 다리를 건넜다. 이 코끼리 행진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제서야 브루클린 다리의 견고성을 인정했다.

오는 5월 24일, 브루클린 다리 개통 140주년을 맞아 아담스 뉴욕시장은 갖가지 축하 행사를 벌일 계획이다. 아담스는 10년 동안 사용하지 않던 브루클린 다리의 주변에 산재한 공공 공간을 재개장하여 스포츠, 게임, 관람석을 갖추기로 했다.

이 시설들은 19세기 최고의 공학적 업적 중 하나로 꼽히는 리오 델 에스테 강 다리가 개통된 5월 24일에 정확히 개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담스는 5개 자치구의 공공 공간에 3억7500만 달러(약 4900억 원)를 투자했다. 이 투자에는 브루클린 다리 아래와 주변을 포함하여 도시 전역의 공공 영역을 개선하자는 캐시 호철 주지사의 제안도 포함되었다.

이다니스 로드리게스 교통부 커미셔너에 따르면 주변 재건공사는 예정보다 일정을 앞당겨 이미 완료를 눈앞에 둔 상황이다. 뉴욕시 교통국은 현재 1870년에서 1883년 사이에 건설된 이 다리의 유지보수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이 다리 재건 작업에는 다리 경간을 구성하고 있는 화강암 돌 전체를 세심하게 청소하는 작업도 포함되어 있다. 한 세기 이상 쌓인 먼지, 매연, 오염으로 퇴색된 갈색 빛을 걷어내고 19세기 때 빛나던 원래의 회색빛으로 복원하는 중이다. 말하자면 광화문에 설치된 이순신 장군 동상에 켜켜이 묻은 먼지를 물로 씻어내는 광경과 흡사한 작업이다.

이 복원 공사에서 화강암 돌 사이의 모르타르도 교체했다. 이 작업은 다리를 설계한 뢰블링 가문이 초기 건설에 사용한 것과 동일한 시멘트를 뉴욕 북부의 채석장에서 공급받아 사용했다고 전한다. 석공들은 현재 붉은 벽돌 아치의 원래 디자인을 수작업으로 재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올해 말까지 진행된다.

강철이 적용된 교량은 해를 묵힐수록 전통과 이름값을 더한다. 아주 오래될수록 도시의 랜드마크로 이름 되는 것이 강철 교량의 행복이다. 수년전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보브포러스 다리가 완공되고 이를 기념하는 개통식에서 타이거 우즈는 헬기로 날아와 다리 위에서 유럽 방향으로 골프공을 날렸다.

부산 용호대교가 완공됐을 당시에도 비슷한 이벤트가 열렸다. 당시 박세리 프로골프선수가 용호대교 위에서 용호동 해변을 향해 골프공을 날렸다. 아쉬운 것은 잔나비 흉내 내듯 똑같은 이벤트가 아니라 진정한 상징적 이벤트가 없었다는 점이다.

한강에는 37개의 다리가 놓여져 있다. 마침, 내년 10월 21일이면 성수대교가 붕괴된 지 30년이 된다. 이쯤에서 안전과 연결된 이벤트를 기대해 본다. 코끼리를 몰고 성수대교를 건너자는 말이 아니다. 하얀 국화 한송이를 다리 밑에 던지며 부모의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상을 바꿔 보자는 의미이다.

다리는 안전이 최우선이다. 철강은 안전을 위해 선택되는 무기물이어서 스스로 환경변화를 이겨 낼 수는 없다. 지킴이 역할은 인간이 해야 하는 몫이다. 더하여 안전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이벤트가 열린다면 더 좋을 것이다.


김종대 글로벌이코노믹 철강문화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