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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이유 한가지’ 믿고 기술에 올인한 조석래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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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이유 한가지’ 믿고 기술에 올인한 조석래 명예회장

‘부잣집 아들’은 외면한 공학도 길 선택
부친 뜻에 경영자 됐으나 기술 열정 커
스판덱스·타이어코드 등 일류상품 개발

1956~1959년 일본 유학중 부친 학생 조석래(왼쪽)와 부친 조홍제 효성 창업회장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효성그룹
1956~1959년 일본 유학중 부친 학생 조석래(왼쪽)와 부친 조홍제 효성 창업회장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효성그룹
29일 89세를 일기로 별세한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은 섬유에서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전기, 중공업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중공업의 성장사를 이끈 주역이자 재계를 대표해 국내는 물론 국제관계에도 관심을 갖고 행동으로 옮긴 ‘실천하는 경영인’으로 평가 받는다.

기술과 품질을 중시했던 그는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등 효성의 대표 제품을 세계 최고 반열에 올렸고, 대표 경제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맡는 등 재계의 ‘얼굴’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되는 이유 한가지가 중요” 기술에 대한 집념


조 명예회장은 기술에 대한 집념이 상당했다. 나일론, 폴리에스터 등 합성섬유로 성공한 뒤 합성수지인 폴리프로필렌에 도전했던 1980년대 당시에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면 정부의 허가도 받아야 하고 기술적 기반도 약해 뛰어들기 쉽지 않았다.

경쟁사들도 늘어나고 있는 시기여서 회사 내부에서는 “이 사업을 하고 싶지만 안하는 게 좋겠다”고 만류했다. 하지만 조 명예회장은 ‘안되는 이유 백 가지' 보다 '되는 이유 한 가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정도의 어려움은 도전정신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76년 11월 효성그룹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조석래 명예회장이 직원들의 목마를 타고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다. 사진=효성그룹이미지 확대보기
1976년 11월 효성그룹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조석래 명예회장이 직원들의 목마를 타고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다. 사진=효성그룹
당시 폴리프로필렌의 원료인 나프타는 선발업체들이 선점한 상황이었고, 일본에서도 구할 수 없었으나, 수소문 끝에 미국의 한 회사에서 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해 프로필렌을 만드는 탈수소공법을 적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직 개발중인 신공법인데다 이를 상업화할 기술이 없었으나 조 명예회장은 용단을 내렸고, 결과적으로 탈수소공법을 적용한 폴리프로필렌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구창남 전 동양나이론 사장은 “공학도 출신의 조 명예회장이 치밀하게 분석하고, 기술을 이해한 뒤 확신이 들면 사업을 전개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직원들과 신혼여행 함께 가서 기술연수


조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 공대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공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IT가 미래 유망업종이지만 조 명예회장이 공부할 당시 ‘부잣집 아들’이 공학을 배우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송재달 전 동양나이론 부회장은 “조 명예회장은 기술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 대단히 강했으며, 영위하고 있는 사업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면서, “조 명예회장은 결혼식 후 신혼여행을 이탈리아 포를리라는 곳으로 갔는데, 이 지역은 동양나이론의 기술자들이 나일론 생산기술을 익히기 위해 연수를 받고 있던 곳이었다. 조 명예회장은 직원들과 함께 직접 기술연수를 신혼여행을 이 지역으로 갈 정도로 기술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고 했다.

1999년 6월 스판덱스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오른쪽)이 직원들과 설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효성그룹이미지 확대보기
1999년 6월 스판덱스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오른쪽)이 직원들과 설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효성그룹

가방 들고 혼자 출장가는 ‘미스터 조’


조 명예회장은 무슨일이든 직접 나서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무진과 토론도 많이 했고, 임원들도 생각이 다르면 조 명예회장에서 그건 틀린 것 같다며 건의하기도 했다. 조 명예회장은 아무리 부하직원이라도 전문지식과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면 받아들였다. 반대로 잘못이나 약점을 감추려는 사람은 질타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만큼 솔직하고 소탈했다. 해외 출장을 갈 때도 수행원 없이 늘 혼자 다닐 정도로 허례허식을 싫어했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의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2007년 2월 23일 동양공업전문대학 제38회 졸업식에서 이사장인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효성그룹이미지 확대보기
2007년 2월 23일 동양공업전문대학 제38회 졸업식에서 이사장인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효성그룹
정철 전 효성물산 전무는 “홍콩 주재원 당시 경비실에서 ‘미스터 조’라는 분이 찾아왔다는 연락이 와서 내려가 보니 조 명예회장이 가방을 들고 혼자 서 있었다”면서 “깜짝 놀랐지만 정말 소탈한 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기억했다.

과거 일본에 출장을 갈 때는 자동차를 고집하기보다 전철을 이용했다고 한다. 멋지게 폼잡는 것보다는 시간약속에 맞춰다니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전철을 이용하는 것쯤은 전혀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