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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때 50% 건조 대금 줘도 오케이” K-조선 리스크 관리 능력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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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때 50% 건조 대금 줘도 오케이” K-조선 리스크 관리 능력 강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후 조선‧해운업 침체 빠지며, 헤비테일 계약이 주 이뤄
건조비 자체 마련해야 하는데, 금융권 거부로 유동성 빠져, 국내 생태계 붕괴
정부 지원 받은 中 조선사, “선수금 1% 내고, 80% 인도 때 달라”며 싹쓸이
2020년 들어 발주량 늘면서 수익 늘고 구조조정 통해 조선소 운영 능력 향상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 사진=한화오션이미지 확대보기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 사진=한화오션
HD한국조선해양과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빅3가 선가 상승과 수주 지속 덕분에 자금관리 능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K-조선 빅3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 이은 수주 단절과 자금 부족 등으로 2010년대 잃어버린 10년 동안 퇴보한 가장 큰 원인인 현금 동원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2020년대 들어 수주량이 늘고, 그만큼 건조하고 인도하는 선박도 늘면서 수입이 많아지면서 건조 대금을 무리 없이 동원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조선소 현장 근로자들로서는 회사의 영업이익 흑자보다 더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조선사는 선주로부터 선박 건조를 수주한 뒤 이를 건조해 얻은 대금으로 회사를 운영한다. 선박 건조 대금은 척당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므로 선주는 계약 후 인도 시까지 통상 5회에 걸쳐 나눠서 20-20-20-20-20 비율로 대금을 조선사에 지급한다. 조선·해운업이 초호황기일 때는 배를 지을 수 있는 조선소가 적어서 선주는 계약 즉시 지급하는 선수금을 전체 건조 대금의 50%를 주는 ‘톱 헤비(Top Heavy)’ 방식의 계약도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선주가 조선소를 선택하는 구도로 바뀌면서 선박을 건조해 인도할 때 50% 이상을 받는 ‘헤비테일(Heavy Tail)’ 계약이 보편화됐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톱 헤비 방식이나 헤비테일 방식 모두 건조 대금 전액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헤비테일 계약은 조선사가 자체 자금을 끌어와 건조 작업을 하므로 유동성이 담보돼야 한다. 다수의 선박을 동시에 건조하는 국내 조선사들은 현금 부담이 크다”면서 “2010년대에는 국가 경제불황까지 겹쳤고, 조선업이 사양산업으로 낙인찍히면서 금융권으로부터 돈을 차입하기가 어려웠고, 설상가상으로 선주의 선박 발주량이 급감해 신규 수익 창출에도 애를 먹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중국 조선사들이 중앙정부와 지자체 금융당국의 막강한 지원을 받아 선가를 후려치면서 물량을 싹쓸이했다. 불용 자산 매각, 인력 축소로 버티던 국내 중견·중소 조선사들은 결국 경영 불능에 빠져 파산하거나 채권단 관리 체제로 들어가는 등 생태계가 무너졌고, 빅3도 창사 이래 최대 구조조정을 감수해야만 했다.

또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조선사들의 횡포는 엄청났다. 선주로부터 건조 선수금을 1%만 받겠다고 했고, 인도 때 70% 또는 80%를 내라고도 했다”면서 “중국 측의 제안을 받은 선주들이 우리 조선사에도 같은 금융조건을 요구했고,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여야 했지만, 국내 금융권은 지원을 거부했다. 이러다 보니 자금난은 더욱 심각해졌다”고 강조했다.

2020년 카타르 정부로부터 대규모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발주로 혜택을 얻은 빅3는 새로운 호황기를 맞았다. 선가는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고, 신규 발주도 이어지면서 빅3는 최소 3년치 건조 물량을 확보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도 헤비테일 계약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과거처럼 인도 때 70% 이상의 건조 대금을 내겠다는 선주는 없어 계약 환경이 나아졌다”면서 “건조 물량이 많아지면서 자재 구매량이 늘어 가격 협상력이 높아졌고, 조선소 전체가 풀가동해 고정비 지출 부담도 없어져 50%를 마지막에 받는 계약도 수익을 낼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빅3가 자체 경쟁력을 키운 것도 주효했다. 채권단 관리를 받긴 했으나 뼈를 깎는 구조조정 덕분에 금융권에 의지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힘을 키웠다. 오히려 정부에 기댄 중국 조선사들의 대규모 파산이 우려될 만큼 기술과 자금 경쟁력에서 우리가 한발 더 앞서 나갔다”고 말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