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사 지체 통해 친환경·현대화 무장
아시아나항공 합병 승인 앞두고 '전략적 포석'
아시아나항공 합병 승인 앞두고 '전략적 포석'

업계에서는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이 미국 당국의 승인을 앞두고 미국 회사에 통 큰 베팅을 했다는 것이다. 보잉과의 협력 관계가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최대 규모로 기제를 사들여 미국에 '신뢰'를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이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판버러 국제 에어쇼'가 열린 영국 햄프셔주 판버러 공항에서 보잉 777-9 20대, 보잉 787-10 30대(옵션 10대 포함) 도입을 위한 구매 양해 각서(MOU)를 체결했다. 창사 이후 역대 최대 구매다. 이날 체결식에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스테파니 포프 보잉 상용기 부문 사장 등 양사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대한항공이 구매한 B777-9과 B787-10은 미주·유럽 등 장거리 운항이 가능한 기종이다. 연료 효율이 높고 탄소 배출량이 적은 친환경 항공기다. 두 기종은 아시아나항공과 통합한 뒤 대한항공 기단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꿈의 항공기'로 불리는 B787-10은 22일 대한항공에 처음 인도됐다. 오는 25일 일본 노선에 처음으로 투입된다. 현재 여객기의 내부 인테리어를 새롭게 바꾸는 등 통합 작업을 시작했다. 대한항공은 연내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편입한 뒤 2년 안에 하나로 합친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조 회장은 "이번 계약은 대한항공의 기단 확대·업그레이드라는 전략적 목표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승객의 편안함과 운항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탄소 배출량은 크게 줄여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장기적인 노력을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조 회장이 보잉 항공기를 대량 구매한 건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염두에 둔 전략적 판단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대한항공은 2021년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결합을 14개국에 신고했고, 미국 공정거래 당국의 승인만 남았다. 미 법무부는 10월 말경 심사 결론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항공이 보잉의 잦은 사고 이후 유럽 에어버스 항공기를 대량 구입하며 보잉과의 협력 관계가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미국산 항공기를 최대 규모로 사들이며 미국에 '신뢰'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보잉은 1월 알래스카항공 소속 보잉 737맥스9 여객기의 도어플러그 파손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지며 사상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다. 자국 산업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 대한항공의 대규모 기제 구매는 큰 호재다.
조 회장은 합병 후 세계 10위권 초대형 항공사로 자리 잡기 위해 이번에 차세대 여객기를 대거 도입하고 기종 단순화를 노리고 있다. 최신 기종 도입과 기종 단순화로 운영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3월 약 18조원을 투자해 에어버스 장거리용 대형 여객기 A350을 33대 구매했다. 이를 포함해 2034년까지 최첨단 친환경 항공기를 203대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김태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host42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