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대통령이 굳이 거친 표현으로 ‘쓸 데 없는 규제는 우리의 원수’라고 하지 않아도 불필요한 규제를 제거해야 혁신과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은 자본의 시대가 도래한 이래 만고의 진리다. 80년대 이후 정부들에게 ‘규제 개혁’은 공통 과제였다. 전두환 정권은 1982년 ‘성장발전저해요인개선위’, 노태우 정부는 행정규제완화위, 김영삼 정부는 행정쇄신위를 만들어 규제 감축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IMF의 권고로 규제개혁위를 설치한 김대중 정부에서야 약간의 성과가 있었고 노무현 정부는 규제총량제를 제기했다. 이명박 정부는 전봇대를 뽑겠다며, 박근혜 정부는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고 나섰다. 결국 34년간 규제 개혁을 시도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기간 중 등록 규제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국무조정실이 집계한 규제 숫자는 지난해 말 기준 1만5070건이다.
결론은 하나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규제 자체가 아니다. 규제 자체는 가치중립적이고 규제의 탄생은 분명 매우 ‘사회적’이고 ‘역사적’이다. 나쁜 규제가 한없이, 끈질기게 양산되고 혁파하려 해도 할 수 없을만큼 강하게 착근된 우리 사회의 불량한 시스템이 문제다. 나쁜 규제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조차도 생긴 원인과 과정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런데 규제 탄생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이 이제 자신들의 불편을 이유로 규제 혁파론자가 되는 모습은 영 보기 불편하다. 규제개혁민관합동회의 이후 많은 경제단체와 기업들이 여론몰이에 나섰다. 언론들도 가세했다. 하지만 규제가 특정 이익집단의 정치적 힘으로 개혁된다면 그것부터가 문제다. 잘못된 규제가 민간의 창의를 가로막는 일도 있겠지만 대부분 규제는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 규제의 합리화는 필요하지만 함부로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외환위기, 카드사태, 저축은행 사태, 부실대학 양산, 부동산 투기는 섣부른 규제 완화의 결과물이다. 온 국민을 분노와 불안에 떨게 한 카드 개인정보 유출사태도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 규제를 게을리 한 정부와 감독당국의 탓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규제=적’이라는 이분법이다. 규제로 인한 이해 득실을 국민경제 전체의 구도 속에서 종합적, 총체적으로 따져보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적으로 ‘규제는 악’이라고 외치는 것은 오히려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지금 국민들은 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 부진한 탓을 온전히 규제 때문으로 생각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하지만 규제 때문에 내 삶이 이리 걍팍해졌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진짜 원인은 실질임금의 정체와 소득 불평등 확대에 따른 내수 부진이다. 결국 과도한 불평등이 문제였다. 그러한 인식은 지금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프란체스코 교황이 설파했고 가진 자들을 위한다는 다보스포럼이, 신자유주의를 외치던 IMF가 소득 불균형이 세계 경제 성장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재분배가 성장을 해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이 때 기업인들의 민원만큼, 아니 그보다는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개선하고 보통 사람들의 삶을 제자리에 돌려놓은 일이다. 지난해 11월 프란체스코 교황은 말했다.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이 인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분명한 규제였던 것처럼, 오늘날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에 대해 우리는 ‘그래서는 안돼’라고 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