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강을 건너야 상해에 이르게 되므로 그동안 교통 불편 때문에 도시개발 속도가 늦어졌으나 최근에 소통대교(2008년 개통)와 상해장강대교 및 숭천대교(2009년 개통)가 연이어 건설되어 중국 최대 국제무역도시인 상해뿐 아니라 인근에 있는 유명 관광지인 소주 및 항주 등과 가깝게 연결되어 2000년대 들어와서 부터는 강소성 일대에서 가장 빠른 성장률(년 15% 이상)을 보이고 있는 제2선 도구 개발지역으로 부상한 도시다.
특히 남통은 장강 하구와 동중국해(황해)를 접속하는 장강 삼각주에 위치하므로 옛날 당나라 때부터 수도 장안(현재 서안)에서 장강을 따라 물류가 이동할 때 북쪽으로는 한반도 및 일본에 까지, 남쪽으로는 동남아에 까지 이르는 중간 환적, 환승 항구로 발전해 왔다. 그런 입지적인 장점을 바탕으로 남통은 전통적으로 해안에서의 소금 생산과 쌀농사, 목화 재배 및 면직물 생산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1970년대 들어와 등소평의 중국 현대화정책 하에 외국인 투자가 개방된 14개 항구도시중 하나로 채택됨으로써 도시 현대화 발전에 획기적인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런 기회를 얻게 된 데는 지정학적인 입지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겠지만 그 보다 오늘날 남통시민들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 약 30년에 걸쳐 활약을 했던 한 사람의 이름을 떠 올리며, 이 분이 남통 도시현대화발전에 기초를 이룬 것이 등소평 정부의 개혁개방정책과 더불어 부흥의 때를 만나게 된 근거가 되었음을 더 자랑스럽게 말한다고 하는데 그는 다름아닌 이 지역 강소성 출신 장 지안(Zhang Jian)이란 분이다.
그는 남통시에 중국역사발전을 상징하는 최초의 3대 유업을 남김으로써 후대에 큰 위명을 날렸다. 중국 최초의 현대식 교육기관인 남통 대학, 중국 최초의 민간박물관인 남통 박물관, 그리고 중국 최초의 면방직공장을 세워 직접 경영에 까지 지도력을 보인 장 지안은 남통이 낳은 위대한 정치가요 실업인이자 교육가로 높은 평판을 받았으며 당시 청말(淸末) 시대에 남통을 일컬어 ‘장지안의 왕국’이라 부를 만큼 그 치세능력과 영향력이 대단했다고 한다.
‘남통순회’는 나의 생애에 있어서 또 하나의 예기치 못한 블루오션을 경험케 한 참으로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었다.
우리 일행들이 남통시 북대가(北大街)의 중심 위치에 자리 잡은 ‘홀리데이 인’ 호텔에 도착한 것은 10월 23일 오후 3시경이었다. 이 호텔은 황소옥 사장의 파트너인 옌 바오린(殷寶林) 동사장이 경영하는 호텔이다. 옌(殷) 동사장은 강소서화연료집단(류화그룹)을 모기업으로 해서 산하에 호텔, 오피스텔, 연료기술학원, 에너지개발사업, 항만유통업 등을 경영하는 40대 후반의 남통 출신 기업인이다.
20대 초반에 집안이 하도 가난하여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할빈까지 돈 벌러 갔으나 고생만 실컷 하고 아무것도 벌어들인 게 없었지만 그때 배운 물류 유통의 경험과 성실한 인맥관리를 기초로 해서 아버지로 부터 지원받은 단돈 2000위안의 돈을 종자돈으로 삼아 일으켜 세운 게 바로 이 류화그룹이라고 한다.
특히 모기업인 강소서화연료집단은 자사 보유 선박으로 내몽골산 석탄을 천진항을 통해 남통 연안까지 운송해온 다음 여기서 작은 배로 환적한 후 강소성과 절강성 일대 즉 장강 주변 도시 및 농촌지역 실수요자들에게 직접 공급해주는 사업을 해서 지난 10여 년 동안에 떼돈을 벌어들인 남통시가 내세우는 입지전적인 향토기업이다.
이 류화 그룹이 운영하고 있는 호텔 뒷편에 있는 회사 부지에 잠실 롯데월드와 같은 실내형 놀이시설을 유치하고 싶다는 게 나를 초청해서 자문을 받고자 한 첫 번째 사유이고, 두 번째는 호텔과 오피스텔에 연결되어 있는 9층 건물에 한국형 병원시설을 도입하고자 하는 게 목적이었다.<계속>
/글로벌이코노믹 특별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