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론 새로 시작하는 지휘권자의 생각대로 체제가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조직의 전체 시스템 차원에서 보면 선임 지위권자들의 추구하는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 전임자들의 추진업무들을 단칼에 잘라버리고 새로이 시작하면 조직 전체 차원에서는 큰 혼란이 생긴다.
잘 진행되고 있던 프로젝트는 하루 아침에 스톱이 되고 여기에 관련된 부서들의 업무 또한 중단된다. 이렇게 지속성이 없다보니 우리의 정치는 변함없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기관장들의 임기에 따라서 한번씩 뒤집어지니 지속성 있게 장기로 밀고 가는 정책이나 체계가 유지되지 못하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이 속도를 빨리하여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이와 같은 속도를 가지고 변화를 추구할 수는 없다. 분야에 따라 중장기에 걸쳐 지속적인 변화를 주며 조정하고 보완하며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이러한 시간들과 과정을 무시하면 반드시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점이 바로 이점이다. 물론 빨리빨리를 외쳐대며 쉴틈 없는 변화를 통해 오늘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
몇해 전부터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임박했다며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고 했다. 그러나 쉽게 넘어설 줄 알았던 그 3만 달러는 이제는 마의 장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1위는 룩셈부르크로 11만423달러이다. 3만 달러를 넘자고 아등바등하는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고지가 얼마 만큼으로 보일까. 올해 3만 달러를 넘긴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상황으로 봐서는 여전히 3만 달러는 벽으로 남을 것 같다. 세계가 놀라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기는 하였지만 이제부터가 진검승부이다. 빨리 달리느라 대충대충 넘어선 기술과 제도를 정비하고 기술에 기반한 정밀한 온전한 제품이 필요하다. 카피제품으로 양으로 승부하던 시대는 이제 과거가 되었다.
기술 기반으로 온전한 제품이 생산되고 발전되려면 연구와 돈이 투자되는 시간의 과정이 필요하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 나라의 주요 기획과 운영의 임무를 맡은 의원들과 정부가 바르게 서고 지속성 있는 나라의 발전을 추진할 수 있는 바탕이 우선되어야 한다. 국민들에게 미래가 희망이 되려면 지역과 사회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치가 희망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대중의 이목만 이끄는 선심정치는 우리의 깊은 환부를 보지 못한다. 인기를 얻지는 못해도 필요한 정책을 만들고 수행하여 내외부가 같이 발전하는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한다.
김용훈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