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오늘날의 행복은 성공한 삶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성공한 삶이 없으면 행복한 삶도 없으므로 우리는 행복한 삶을 위해 성공을 꿈꾼다. 그렇다면 어떤 삶이 성공한 삶이고 어떤 삶이 실패한 삶인가. 성공한 삶에 대한 관점은 저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나는 실패한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지적한 바 있듯이 실패한 삶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다 끝나는 삶이다. 어릴 때는 부모님께 사랑받기 위해 순종하고, 학교 가서는 선생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에 가서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결혼해서는 아내 혹은 남편과 아이들에게 맞추기 위해 일상을 바치는 삶이 바로 그것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도 인간으로서 나름 가치 있는 삶이 아니겠냐고. 물론 그럴 수 있다. 또한 타인을 위한 삶으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세인들이 말하는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렵다는 데 있다. 우리가 아는 인류 역사의 성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타인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다. 그 일례로 예수님은 가난하고 병든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다. 설혹 내가 선의를 베푼 사람이 내 것을 훔쳐가는 도둑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나더라도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내밀어라'는 태도로 다 내어주셨다. 그리고 인류의 구원이라는 구세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신 다음,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끝으로 십자가 위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이 살고자 한 삶을 사셨고 그로 인해 행복하셨을 것이다.
석가모니는 어떠했는가? 가련하고 불쌍한 이들을 도울 때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는 사실조차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설파하셨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선행, 즉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행하는 것만이 진정한 자비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석가모니는 자신이 큰 은혜를 베푼 사람과 우연히 마주쳐도 "댁이 누구시더라?"라고 물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을 도왔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므로... 이들처럼 오로지 남을 위한 삶만으로 자신의 행복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리 흔치는 않을 것 같다.
사유를 업으로 하는 철학자들은 말한다. 사유의 가장 큰 주제는 '인간은 무엇인가'란 물음이고 삶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그 일례로 이마누엘 칸트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먼저 해결하는 것으로 '인간은 무엇인가'에 답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주체적으로 결정하기 위해 사유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한 삶은 자신의 삶이 아닌 남의 시선에 빼앗긴 삶이다.
내가 살고자 하는 삶과 주변인이 내게 원하는 삶이 일치한다면 그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삶과 나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바람이 서로 상충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마도 이 때 필요한 지혜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태도가 아닐까 한다. 성공에 대한 자신만의 원칙을 곧게 세우되,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상대를 포용하는 마음가짐을 잊지 않을 때, 우리는 '상생의 성공'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신현정 중부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