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고이즈미 전 총리의 연설은 두 개의 문장으로 요약된다. “배탈이 나면 부드러운 죽보다 거친 평상식을 먹어라” “어떤 음식도 오래 씹으면 단 맛이 난다”. 다시 말하면 입에 넣기만 하면 씹지 않아도 꼴딱꼴딱 넘어가는 죽보다는 잘근잘근 오래 씹어야 삼켜지는 나물 같은 음식을 먹으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거친 음식을 곤죽이 될 때까지 오래 씹으면 침샘 분비가 활발해지게 되고, 분비된 침에는 소화효소뿐만 아니라 면역물질도 포함돼 있어 많이 씹으면 씹을수록 몸의 면역력이 강해지기 때문이란다. 아프면 으레 죽을 찾던 나에게는 그의 제안이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듣고 보니 전혀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고이즈미 전 총리는 단순히 한 치과대학의 10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라서 저작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런 축사를 준비한 것일까. 물론 그런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을 잘 곱씹어보면 K대학이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온갖 역경과 고난을 극복한 결과로 얻어낸 100년 역사의 영광을 곤죽이 될 때까지 씹어서 우러나오는 지천 채소의 단맛으로 비유한 것은 아닐까 싶다. 마치 중국 명나라 말기의 환초도인(還初道人) 홍자성(洪自誠)의 채근담(菜根譚)처럼 말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채근’을 ‘먹을 수 있는 채소의 뿌리’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때로 ‘채근’은 맛없고 거칠고 보잘것없는 음식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하다. 본래 이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송나라의 학자 왕신민(汪信民)이 ‘인상능교채근즉백사가성(人常能咬菜根卽百事可成)’이라고 한 데서 기인한 말로,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일을 다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홍자성은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 바닥난 국고 등 이미 멸망의 기운으로 쇠락해가는 명나라 말기에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가에 대한 통찰을 채근을 씹는 자세에 비유해 어록으로 남겼다. 소박하고 깊은 맛을 지닌 나물뿌리는 입안에 거칠기 때문에, 신분이 높아져 윤기 흐르고 부드러운 음식 맛에 익숙해지면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는 지름길임을 모르고 말이다.
쉬운 길로 돌아가기 보다는 정면 승부로 위기를 돌파한 이 대학은 이러한 쾌거를 대내외에 널리 공표함과 동시에 전쟁을 같이 치른 교직원 전우들과 대학의 부활을 자축하고자 때늦은 행사를 준비했을 것이다. “어떤 음식도 오래 씹으면 단 맛이 난다”는 고이즈미 전 총리의 축사 때문이었을까. 그 날 축하연에서의 식사 시간은 유난히 길었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여름날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나 겨울날의 파베 초콜릿처럼 입안에서 스르르 녹아내리는 안락함을 꿈꾼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안락함은 꼭 탈이 나게 마련이다. 그러니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부러라도 조금은 소박하고 불편하게 살되, 비루하거나 천박해지지 말기를” 당부하는 ‘채근담’의 교훈을.
신현정 중부대학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