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리턴매치가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와 미국 언론의 보도를 종합해 보면 트럼프가 설욕할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입소스 최근 조사를 보면 트럼프가 바이든과의 가상 양자 대결에서 40% 대 34%로 6%포인트 앞섰다. 특히 트럼프가 지난 대선에서는 저학력·저소득층 백인 남성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으나 이제 여성과 유색 인종으로 지지층을 확대해 가고 있다.
현재로서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하는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4건의 형사 기소를 당한 트럼프가 유죄 선고를 받아 출마 자격을 잃거나 감옥에 가는 것이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트럼프에게는 대법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변수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재 대법원이 보수파 6명, 진보파 3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돼 있어 트럼프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그러니 바이든이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시나리오는 미국 경제가 올해 소프트랜딩(연착륙)에 성공하고, ‘골디락스(goldilocks)’의 꿈이 실현되는 것이다. 고용은 강하게 유지되면서 인플레이션이 꺾이면 골디락스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 임금발(發) 인플레이션 장기화 가능성이 줄어들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경기침체를촉발하지 않으면서도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 골디락스 경제에서는 물가 상승 부담 없이 실업률 하락, 소비 확대, 주가 상승,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월가에서는 물가 안정과 경제 성장이 동시에 이뤄지는 골디락스가 도래할 것이라는 분석과 둘 다 실패하는 ‘역(逆)골디락스’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맞서고 있다.
문제는 골디락스 경제의 열쇠를 바이든이 아니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쥐고 있다는 점이다. 연준 의장이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유는 정부의 재정정책이 아니라 연준의 통화정책에 따라 경제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파월 의장이 이번 대선을 좌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연준은 정치적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받고 있다. 그러나 피터 코이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는 “세상에 100% 독립적인 곳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물론 연준의 통화정책은 파월 의장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이 투표로 결정한다. 그럼에도 연준 의장이 FOMC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파월 의장이 지금부터 대선 전까지 ‘경제 활성화’와 ‘인플레이션 재발’ 사이에서 줄타기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 측은 파월 의장이 조기에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를 되살려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조 칸나 민주당 하원의원은 지난해 말에 “파월 의장이 지금 당장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트럼프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될 것”이라고 압박했다. 연준이 금리인하 시점을 늦추다가 미국이 연내에 경기 침체에 빠지면 바이든의 재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와 정반대로 파월 의장이 너무 서둘러 금리를 내렸다가 인플레이션이 다시 뛰면 바이든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바이든이 고전하는 핵심 이유도 유권자들이 지금 팬데믹 이후 고물가·고금리 장기화 후유증에 혹독하게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연준의 독립성을 지키면서 경제를 안착시켜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그는 올해 내내 선거판의 뒤편에 꼭꼭 숨어있고 싶겠지만, 경제 주체들이 그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