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봄, 프롭테크 스타트업 대표 10여 명을 만났다. 질문은 간단했다. '무엇을 바꾸고 있고, 그 일을 왜 택했는가'다. 각자 다른 영역에 있던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문제를 끈질기게 들여다보고, 시장 관습에 의문을 품으며,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꾸는 방식이다.
◇ 손에서 머리로: 반복 업무를 넘겨주다
송중석 포비콘 대표가 건드린 건 건축 도면의 물량 산출이었다. 숙련된 인력이 하루 종일 매달려야 하는 업무를 인공지능(AI)이 20분 만에 해치운다.
"기술이 실무자를 위협한다고요? 아니요. 실무자가 진짜 할 일을 하게 돕는 거죠."
이장규 데브올컴퍼니 대표는 건설 현장의 행정 업무에 'AI 부사수'를 투입했다. 계약과 청구, 수납 같은 비효율의 늪에서 실무자를 건져냈다.
"기술은 실무자 옆에 앉는 동료가 돼야 해요."
기계가 할 일과 사람이 할 일을 구분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이호승 파이퍼블릭 대표는 직설적이었다. "왜 부동산 투자 정보는 늘 기관에만 몰려 있죠?"
그 질문에서 시작해 AI 기반 자산 리스크 분석 플랫폼 '리얼리틱스'를 만들었다. 일반 투자자도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했다. 정보의 민주화라는 거창한 말보다 '공평하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배우순 디스코 대표는 실거래가와 매물 정보를 지도 위에 풀고 있다.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사용자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커뮤니티로 키워가고 있다. "정보는 누군가 독점할 게 아니라 공용 자산이 되어야 해요."
김정석 클라우드앤 대표의 '디지털 닥터'는 건물의 전력, 수분, 배관 상태를 실시간 체크한다.
"건물도 살아있는 존재거든요. 우리는 그 주치의 역할을 하는 거죠."

◇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혁신
박형준 삼삼엠투 대표는 프로젝트 기반 근로자를 위한 새로운 주거 모델을 제시했다. 보증금 33만 원, 단기로 입주 가능한 체류형 플랫폼이다. "떠날 수 있다는 자유가 때론 머물 힘이 되거든요."
이주성 아키스케치 대표는 인테리어 설계를 누구나 수정하고, 공유할 수 있게 했다. "디자인도 깃허브처럼 오픈소스로 여겨져야 해요." 전문가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디자인을 모두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신동훈 컨텍터스 COO는 중소형 건물 관리의 '방치된 일상'에 눈을 돌렸다. 5분 내 문제 접수-대응 체계를 만들었다. "기술은 돌봄을 자동화하는 수단이에요."
◇ 속도가 아닌 방식의 혁명
이덕행 랜드업 대표는 부동산 개발 사업성 검토라는, 가장 전통적인 영역을 건드렸다. 주소 하나만 입력하면 입지와 수익성·시공성을 분석해주는 자동화 보고서를 만들었다.
"시간을 아끼려는 게 아니에요. 기회를 거머쥐는 속도를 높이려는 거죠."
수십 개 엑셀 파일을 비교하던 시간이 몇 분으로 줄어들었다. 더 중요한 건, 중소 시행사가 대기업 수준의 판단 도구를 쓸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윤의진 우리가 대표는 도시정비 현장의 조합 운영을 바꿨다. 도장, 우편, 대면이 필수였던 조합총회를 전자 플랫폼으로 옮겼다. 시간도 줄고 투명도도 높아졌다.
이들의 기술은 결국 관계를 복원하고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줄이고, 폐쇄적 의사결정을 투명하게 만들며, 소유와 창작의 개념을 다시 그렸다.
도시는 여전히 반복된다. 하지만 이제 그 반복을 질문하는 혁신가들이 생겨났다. 이들의 기술은 '속도'가 아니라 '방식'에 대한 답이다. 빨라지려는 게 아니라 더 잘 살려는 것. 기계가 반복을, 사람이 목적을 다룬다면 그 도시는 오래 지속될 것이다.
프롭테크는 도시에 질문을 던진다. 반복을 견딜 것인가, 아니면 바꿀 것인가. 반복을 줄이면서도 관계를 촘촘하게 짜고 있다. 빠르지만 인간적이고, 효율적이지만 연결고리는 끈끈한 새로운 도시의 리듬이다.
낡은 구조 위에 새로운 패턴을 입히는 이들의 시도는 유효하다. 그 질문 끝에 다음 도시가 시작된다.
이상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angho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