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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왜 국산 청정수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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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왜 국산 청정수소인가?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이미지 확대보기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에너지 전환은 화석연료 중심의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소는 더 이상 ‘깨끗하지만 비싼 연료’에 머물지 않는다.
철강, 석유화학, 조선, 해운 등 산업 전반의 체계를 바꾸고, 국가의 공급망과 무역 질서를 재편하는 전략 자원으로 부상했다. 그렇다면 왜 굳이 국내에서 청정수소를 생산해야 할까. 이는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산업 주권과 국가 생존이 걸린 선택이기 때문이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는 위험하다. 운송비, 환율, 원산지 인증비용, 수출국 정책변수 등이 얽히면 도입가격은 예측 불가능해진다.
특히 유럽의 CBAM(탄소국경조정제)이나 일본의 JH2 인증제처럼 생산 전 과정을 추적해야 하는 제도 아래에서는, 생산부터 이력을 투명하게 증명할 수 있는 국산 청정수소가 오히려 ‘신뢰의 자산’이 된다. 값이 다소 비싸더라도 공급망 안정성과 위험 회피 측면에서 훨씬 높은 경쟁력을 가진다.

한국은 수전해 핵심 기술에서 이미 세계 상위권이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다. 전력요금과 설비비용이 여전히 높아 수소 생산단가는 8~10달러/kg에 머무른다.
화석연료 개질에 CCS(탄소포집·저장)를 결합한 블루수소는 유력한 대안이지만, 상업적으로 안정된 저장소 확보가 관건이다. 포집 효율이 90% 이상 되어야 청정수소 인증 기준(수소 1kg당 4kgCO₂ 이하)을 충족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제도적 업그레이드가 필수적이다. 현재의 청정수소 인증제는 ‘확인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를 인증서 거래제(CH-CTS; Clean Hydrogen Certificate Trading System)로 확대해야 한다.
청정수소를 생산한 기업이 인증서를 판매해 추가 수익을 얻는 구조, 즉 전력 부문의 REC(신재생공급인증서)와 유사한 시장형 메커니즘을 도입하면 청정가치가 정책이 아닌 시장의 가격 신호로 전환된다. 보조금 중심의 인위적 시장에서 벗어나 자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청정수소 시장경제로 체질이 바뀌게 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레지스트리(registry)다. 생산 방식이 무엇이든, 최종 산물인 수소는 분자 수준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구분 없이 사용할 수는 없다.
공정, 전력원, 배출량, 운송, 저장, 활용 등 전 과정의 탄소이력 데이터를 추적·관리하지 않으면 감축 실적이 왜곡되고 신뢰를 잃게 된다. 따라서 청정수소 인증서는 단순한 증서가 아니라 국가적 디지털 자산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이 역할을 수행할 최적의 기관은 한국에너지공단이다.
공단은 이미 REC, 효율인증 등 유사 제도의 전산·회계·감사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청정수소의 발급–정산–취소–이력 추적까지 통합 관리할 수 있다.

원전 전력을 이용해 수소를 생산한 뒤 다시 전기로 되돌리는 방식은 효율 면에서 합리적이지 않다. 전기→수소→전기의 왕복 효율은 30% 남짓에 불과하다. 따라서 원전 기반 수소는 전력 복귀용이 아니라 전동화가 어려운 산업 부문(철강, 정유, 해운 등)에 투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력은 전력대로, 수소는 산업연료로 각각의 역할을 분담할 때 전체 효율이 극대화된다.

이제 관건은 재생에너지다. 한국은 국토 제약과 간헐성 문제로 재생에너지의 대규모 확장이 쉽지 않다. 그러나 그 한계를 보완할 열쇠가 바로 청정수소와 섹터 커플링(Sector Coupling)이다.
재생전력으로 생산한 수소를 저장해 필요할 때 산업용 연료로 공급하고, 잉여 전력은 RE100 산업단지에서 직접 사용하면 전력망의 불안정성을 완화하면서 산업의 탈탄소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수소는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흡수하는 버퍼이자, 산업단지 안으로 재생전력을 끌어들이는 매개체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재생전력 50~100TWh를 수전해에 투입하면 연간 100만~200만t의 그린수소 생산이 가능하다. 기술적·입지적 제약을 감안하더라도 2050년까지 국내 수요(약 2,800만 t)의 30% 가량은 현실적이다. 이 과정에서 RE100 산업단지, 분산형 수전해 허브, 지역별 청정수소 클러스터가 전력–수소–산업–지역경제를 하나로 묶는 통합 생태계로 발전해야 한다.
청정수소 인증제와 거래제, 레지스트리 관리, 섹터 커플링 전략은 단순한 정책 수단이 아니라 한국 산업의 미래와 기술 주권을 지키는 새로운 설계도다. 복잡하고 비용이 들더라도 지금 하지 않으면 늦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