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화의 가속화와 인공지능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개인보다 더 파편화된 존재인 핵개인이 된 우리는, 지난 200년간 지속돼온 산업사회 구조 속의 이름 없는 구성원에서 벗어나 비로소 개인의 역량과 가치, 아이덴티티가 존중받는 호명사회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핵개인들이 이 호명사회에서 이루어 나갈 새로운 문명, 바로 경량문명이다. 21세기 100년의 첫 분기 동안 진행돼온 변혁의 흐름을 종합하고, 다음 분기의 시작점 2025년 이후 본격 대두할 인류의 삶의 모습을 조망한다.
이번 책의 화두로 내세운 경량문명의 태동을 목격한 곳으로 저자는 한 사이트에 주목한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5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내고 있으며, 창업 5년 이내 임직원 50인 이하 등의 요건을 갖춘 기업의 순위를 보여주는 '린AI 리더보드' 대시보드다. 2025년 7월 기준, 평균 22명이 1인당 249만 달러의 매출과 1633억 원의 시가총액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같은 시기 삼성전자 임직원 1인당 17억 원의 시가총액과 비교하면 무려 96배의 차이가 난다.
규모와 양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효율을 창출하던 시대가 빠르게 저물고 있다. 바야흐로 포디즘·테일러리즘의 종언이다. 많은 자본과 인력, 토지를 확보해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대량 생산해 빠르게 시장에 공급하는 조직이 승리를 거머쥐던 시절이 끝나간다. 비숙련자·초심자 인력을 도제식으로 양성하며, 위계와 서열에 의해 의사결정하는 조직은 인공지능 기술과 도구로 무장한 핵개인들의 느슨한 연합체, 협업조직에 밀려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 결과가 린AI 리더보드의 순위표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대마불사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대마필사, 즉 거대하면 죽는다는 경고를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빠르게 전개되고 수시로 명멸하는 지금, 덩치는 불리한 요소다. 클수록 대응이 느리고 변화에 취약하다. 조직이 큰 만큼 움직임의 폭이 크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변화를 시도하는 것부터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는 것이다. 그보다 앞서 이러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부터 쉽지 않다. 비대한 조직의 규모만큼 고려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탓이다. 설령 가능하다 한들 당장 조직을 분해해 스타트업처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조직의 리더들을 위해 저자는 새로운 리더상을 제시한다. 권위와 수직구조를 상징하는 Executive 대신, 창의와 몰입의 즐거움을 촉진하는 Entertainment의 CEO가 되라고 주문한다. 모든 것을 다 내 뜻대로 좌지우지하는 감독자가 아니라 장을 열어주고 판을 깔아주는 안내자여야 인재들이 모여들어 뛰어놀게 된다. 결국 조직의 변화, 그 시작은 리더가 갖고 있는 그릇의 크기에 달린 것이라 본다. 능력이 뛰어난 핵개인들을 굳이 조직 내에 머무르게 하려면 리더 자신의 배포와 자존부터 충분히 크고 넓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비로소 중량조직은 경량조직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가벼워야 뜰 수 있다. 속박을 벗어던지고 무한한 창공으로 힘껏 날 수 있다.
"21세기, 로봇은 고대 문명에서 노예 노동이 차지했던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변화가 채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어 마침내 인류는 속박에서 해방되어 더욱 숭고한 이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 니콜라 테슬라, 1935년
양준영 교보문고 eBook사업팀 과장
조용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ccho@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