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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대 박사의 인문학] 가득해도 빈 것 같으면 쓰임이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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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대 박사의 인문학] 가득해도 빈 것 같으면 쓰임이 무한하다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제45장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이미지 확대보기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
지식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은 똑똑해 보이지 않는다. 아는 체하지 않아서 어리석어 보인다. 하지만 앎을 비웠다 해도 부족함이 없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지식과 지혜를 무위로 면면히 냄으로써 그 쓰임새는 무한하다.

그러나 지식과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많이 알고 잘난 체한다. 그런 유의 사람은 정작 지식과 지혜가 필요할 때 불의한 꾀를 내어 타인을 현혹할 뿐 대지를 적셔 무위로 덕을 베푸는 샘의 쓰임새를 교묘히 험담하고, 저 자신을 위할 뿐 마른 샘처럼 베풀 줄을 몰라 쓰임새가 없다.

이런 비유는 어떨까? 꽃병에 예쁜 꽃을 빈틈없이 수북이 꽂아 놓은 것보다 몇 개의 꽃가지를 공간을 두고 여유롭게 꽂아 놓은 모양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이것을 비움의 아름다움이라 했던가? 그와 같이 지식이 넘치게 보이는 사람보다 좀 모자란 듯해 보이는 사람이 더 훌륭하고 매력적이다.

노자가 말했다. 완전한 것은 흠이 있는 것 같아도 그 쓰임은 낡아지지 않으며, 한가득 찼어도 빈 것 같으면 그 쓰임은 무한하다고 했다. 또 말하기를, 대의를 위하는 사람은 재주를 부리지 않아서 서툴러 보이고, 뛰어난 웅변가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으며 어눌해 보인다. 급하게 움직이면 추위를 이기고 고요하면 더위를 이기니 맑고 고요함이 천하에 올바른 도리라 하였다.
진실로 크게 이룬 사람은 이루었다는 티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허술해 보인다. 석가모니 붓다가 그랬다. 대각(大覺)을 이루었으나 그런 사실을 애써 내보이려 하지 않았다. 옷차림도 해진 누더기를 걸치고 진수성찬도 마다하고 거지처럼 얻어먹어 위대한 성자의 품위가 없어 보였다.

그리 생각하면 4대 성인 중 한 사람인 저 중국의 대학자 공자는 비단옷을 입고 화려한 수레를 타고 천하를 주유했다. 노자는 공자의 그 모양을 일갈했다. 황금 수레를 타고 비단옷을 입을 만한 존재일 때 호화롭게 치장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붓다는 달랐다. 누더기를 걸치고 걸식을 했으나 앎은 한량없고 보석보다 빛났으며 어리석은 중생을 위해서는 골짜기 물처럼 무위했다. 이렇듯 앎이 충만한 깨달은 이는 필요할 때가 되면 무궁한 지식과 지혜와 때에 따라서는 기적 같은 놀라운 앎을 내보였다.

노자는 그러함을 부족한 듯 완전함이라 하였다. 거기다가 진실로 완전을 이룬 사람은 한가득 짐을 실은 수레가 소리 없이 바퀴를 굴리는 것처럼, 무겁고 진중하게 처신한다고 하였다. 앎이 얕은 자들이 입이 가벼워서 걸핏하면 목청을 높여 대단한 인물인 양 자신을 높이려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의 목청이 제아무리 높아도 얕은 지식이 탄로 나기 마련이다.

붓다처럼 진정한 앎을 증득(證得)한 사람은 무위로 가르치고 베풀므로 현묘한 지혜로 깨달음을 얻은 자임을 천하가 알고 숭배의 대상으로까지 존중한다.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언젠가는 앎의 인도자로 그의 존재가 천하에 드러나고, 현재와 미래까지 그의 명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노자가 연이어 말했다. 급하게 움직이면 추위를 이기고 고요하면 더위를 이기니 맑고 고요함이 올바른 도라 하였다. 추위와 더위는 상대적 관계다. 움직이면 추위를 이기고 고요하면 더위를 이긴다는 뜻은, 추위는 음이라서 움츠리고 부드럽고 고요함이고, 더위는 양이라서 발광하고 거칠게 발산한다. 그러나 음양 두 기운이 평등하게 합해져서 천하 기운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맑은 봄 날씨처럼 천하가 평온해진다.

그와 같이 추위에 반응하듯 움츠리고 급하지 말 것이며, 더위에 반응하듯 거칠고 발산하고 발광하지 말고 중도를 지키라는 뜻이다. 그리하면 춥지도 덥지도 않은 꽃 피고 새 우는 평화로운 봄 날씨 같은, 그 마음이 평온하여 잘난 체하고 떠들어 대지도 아니하고 그렇다고 침묵만 지키는 것이 아니다. 붓다의 무위 행처럼 중도를 지키라는 뜻이다.

노자는 그리하는 마음이 곧 천하에 올바른 도리라 하였다. 도리란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올바른 길이란 뜻이다. 치우침이 없이 중도를 지키면 도리는 저절로 행해진다. 그리하면 무위는 시키지 않아도 자연히 그 마음속에 관습으로 자리 잡아 그 영혼이 티 없이 맑아진다.

정경대 박사의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이미지 확대보기
정경대 박사의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종교·역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