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석유가 나올 가능성이 없다고 여긴 페르시아의 국왕이 이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다. 당시 돈이 부족한 샤 국왕으로서는 나름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2만 파운드의 댓가로 60년간 페르시아 영토 대부분(약 120만 ㎢)에 대한 석유 탐사 및 채굴 독점권을 윌리엄녹스에게 준 것이다. 석유가 나올 경우 원유 판매 이익의 16%를 떼어주는 조건으로 60년간 채굴권을 보장받았다. 이 거래가 훗날 이란에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는 사실을 당시로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채굴을 시작한 지 8년 만인 1908년 5월 26일 마침내 석유가 나왔다. 윌리엄 다시의 이 드라마틱한 성공은 이듬해인 1909년 '영국-페르시아 석유 회사(APOC)'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세계적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해 있는 영국 석유라는 거대 기업 즉 BP(British Petroleum)가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영국은 BP에 정부 자금을 투자해 국영회사로 전환한 다음 페르시아 내정에 시시콜콜 간섭하기 시작했다. 소련도 군침을 흘렸다. 러시아 혁명 후 소련은 페르시아 북부 카스피해 연안에 페르시아 소비에트 정권을 세우고 군대를 테헤란으로 진격하려고 시도했다.여기에 카자르 국왕이 협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영국은 이에 대항해 레자 칸(Reza Khan) 장군을 앞세워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사주했다. 쿠데타는 성공했다. 레자 칸은 1923년 카자르 국왕을 퇴위시키고 국왕에 올라 팔레비 왕조를 열었다. 레자 국왕은 1935년 나라 이름을 이란이라고 바꾸고 석유자본을 이용해 이란을 현대화시키는 작업에 나섰다. 레자 국왕은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던 독일과도 교류를 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1941년 6월 나치 독일이 소련을 공격하자 영국과 소련은 그해 8월 이란을 선제 공격해 유전을 장악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었다. 이란군은 무방비 상태로 외국군에 점령당했다. 영국군과 소련군은 레자 칸을 체포해 런던으로 압송했다. 그런 다음 22살 이던 그의 아들인 펠레비(Mohammad Reza Pahlavi)를 꼭두각시 국왕으로 앉혔다.
다급해진 영국은 이란과의 한판 승부에 들어갔다. 이란의 석유 국유화 조치에 맞서 BP는 미국의 5대 메이저와 로열더치셸을 동원해 이란산 석유 매입을 중단하도록 했다. 세븐시스터스(Seven Sisters)로 불리는 거대 석유메이저들이 이란 석유를 사지 않자 이란은 기름을 한 방울도 팔 수 없었다. 이란 경제는 수직 낙하했다. 국민들의 생활은 피폐해졌다. 알토란 같은 유전을 확보하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모사데크에 대한 국민의 불만도 높아졌다. 위기에 봉착한 모사데크는 그 대안으로 소련에 접근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미국이 나섰다. 미국 정보기관 CIA와 영국 정보기관 M16이 공동 작전을 짰다. 쿠데타를 일으켜 팔레비 국왕을 복권시키고 유전을 서방에 되돌려 주는 것이었다. 모사테크는 미국과 영국의 사주를 받은 파즐롤라 자헤디 장군에 의해 체포됐다. 정권은 다시 팔레비 국왕에게 넘어갔다. 다시 권력을 잡은 팔레비 왕조는 미국과 영국의 지원 아래 본격적인 친서방 정책을 펼쳤다. 토지 개혁, 문맹 퇴치, 여성 참정권 부여 등 '백색 혁명'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이슬람 민족주의 세력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미국의 꼭두각시가 돼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개혁을 밀어붙인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팔레비 왕조는 시위대를 가혹하게 유혈 진압했다. 이란의 최고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를 국외로 추방했다.
마침내 이슬람 혁명이 대규모로 일어났다. 위기감을 느낀 팔레비 왕조의 모함마드 레자 샤 팔레비 국왕은 1979년 이탈리아로 도주했다. 외국을 떠돌며 망명 생활을 한 호메이니는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고국 땅으로 돌아왔다.이렇게 나눠 가진 이란 석유는 1979년 호메이니에 의한 이란 혁명에 의해 다시 국유화됐다.
이란 국민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미국의 지미 카터 행정부는 암 투병을 하던 팔레비 국왕의 치료를 명목으로 입국을 허가했다. 이것이 도화선이 됐다. 수백명의 이란 강경파 대학생들이 국왕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며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에 난입해 외교관과 직원 등 52명을 인질로 잡는 사건이 벌어졌다.인질들은 무려 444일이나 억류됐다. 당시 시위대는 인질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잠을 잘 때도 인질들끼리 다리를 끈으로 묶었다.
트럼프의 이란 공격은 사실 40여년 전 그 때의 복수 성격이 짙다. 호메이니 혁명 이전에 보유한 미국의 석유 채굴권 지분을 되찾으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와중에도 틈만 나면 이란 석유를 미국이 관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도 결코 허언이 아닌 것이다. 가장 먼저 발견한 석유가 결국 저주가 된 셈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