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문을 막았을 때 돈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불 보듯 뻔했다. 당시 한국은행은 저축은행 대출 증가 배경으로 부동산 매입과 생계자금 수요뿐 아니라 은행권 대출 규제 강화의 영향도 꼽았다. 은행·상호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 중신용자는 5% 안팎의 금리를 적용받지만 그러지 못하면 15% 안팎을 부담할 수 있다는 ‘금리 단층’도 지적했다. 한은이 규제 차익에 따른 풍선효과를 경계한 이유다.
5년이 지난 지금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은 8조3000억 원 늘었고, 이 가운데 은행권 증가액만 7조6000억 원에 이르렀다. 다른 업권의 문을 조인다고 자금 수요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조건이 나은 은행으로 다시 몰리는 모양새다.
5대 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 목표는 이미 약 80%가 찼고 3곳은 목표치를 넘어섰다. KB국민은행은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주택구입자금 대출 한도를 6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낮췄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도 모집인 접수를 중단하는 등 문턱을 높였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대출 셧다운’은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연간 총량에 맞춰 대출 문을 열고 닫는 방식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소득과 담보, 상환능력이 같은 차주라도 연초에 신청하면 대출을 받고 총량이 소진된 하반기에 신청하면 거절당할 수 있다. 가계부채 관리가 차주의 위험을 심사하는 제도가 아니라 신청 시점에 따라 희비가 갈리는 ‘선착순 금융’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당국은 고액 사내대출이 금융권 대출과 결합해 주택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은행과 보험사 대출을 막으면서 기업에 사내대출까지 자제하라고 요구하면 정상적인 자금조달 통로가 어디에 남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빚투'와 다주택 투기 수요는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그렇다고 주택 구입과 전세, 생활비, 치료비 등 실수요까지 동일한 총량 잣대로 눌러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무차별적인 공급 축소가 아니라 차주의 소득과 상환능력, 대출 목적을 구분한 공급이다. 실수요자에게는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투기성·고위험 대출에는 더 강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
대출을 못 받게 한다고 돈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수요를 외면한 규제는 부채를 없애는 대신 더 비싼 부채와 금융 불평등을 키운다. 가계부채 정책의 성패는 얼마나 세게 잠갔느냐가 아니라 필요한 곳에 감당할 수 있는 조건으로 자금을 공급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홍석경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ng@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