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북위 70도, 알래스카 북부 프루도베이(Prudhoe Bay)의 영구동토대 지하에는 천문학적인 양의 천연가스가 잠들어 있다. 매장량만 35조 입방피트에 달하는 이 거대한 가스전은 1960년대 후반 유전 발견 이래 반세기 넘게 ‘잠자는 거인’으로 불려 왔다. 원유는 일찌감치 1,300km에 달하는 트랜스-알래스카 송유관(TAPS)을 타고 남쪽 항구 밸디즈로 흘러내려가 전 세계 시장을 적셔왔다. 문제는 가스이다. 정작 원유와 함께 뿜어져 나온 막대한 메탄가스는 파이프라인이 없어 다시 땅속으로 재주입되는 운명을 반복해 왔다.
알래스카주 정부와 역대 지도자들에게 이 가스를 태평양 너머 한국, 일본, 대만 등 에너지 소비 대국으로 실어 나르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오랜 숙원이자 하나의 거대한 신화였다. 지정학적 지도만 놓고 보면 그 명분은 더없이 찬란하다. 멕시코만을 거치는 미국 걸프 연안(US Gulf Coast) LNG에 비해 동아시아 시장까지의 항해 거리가 절반 이하로 단축되며, 파나마 운하의 병목이나 통행료 부담,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과 말라카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해상 리스크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롭다.
알래스카 LNG를 상업화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번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세계 최대 민간 석유 기업이자 자본의 논리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는 액슨모빌(ExxonMobil), 그리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BP와 코노코필립스는 이 장밋빛 프로젝트의 지분을 내려놓고 차례로 손을 털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알래스카 LNG의 실체적 진실과 경제성의 한계를 냉철하게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얼어붙은 대지와 800마일 파이프라인: 천문학적 CAPEX의 함정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의 본질은 단순한 가스 액화 터미널 건설이 아니다. 북극해 연안의 노스슬로프(North Slope)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정제한 뒤, 알래스카 산맥과 동토대, 거친 하천을 가로질러 남중부 니키스키(Nikiski) 액화 플랜트까지 약 807마일(약 1,300km)에 이르는 고압 가스 파이프라인을 부설해야 하는 복합 토목·플랜트 사업이다.
총사업비는 추산치만 500억달러를 훌쩍 넘어간다. 이 천문학적인 초기 자본적 지출(CAPEX)이 바로 프로젝트 경제성을 옥죄는 결정적 족쇄다. 알래스카의 가혹한 기후 조건은 일반적인 인프라 공사비의 서너 배를 요구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불안정해진 영구동토층 위에 가스관을 매설하거나 지상으로 지탱하려면 고도의 지반 냉각 기술과 내진 설계가 필수적이며, 이는 공기 지연과 비용 초과(Cost Overrun)의 위험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운다.
더욱이 알래스카는 미국 내에서도 환경 규제의 잣대가 가장 엄격한 지역 중 하나다. 연방 정부의 환경영향평가와 원주민 보호 구역 통과 문제, 야생동물 서식지 교란 방지 대책 등 인허가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적·재무적 비용은 민간 투자자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기에 충분했다.
액슨모빌의 철수: 자본 규율과 포트폴리오의 재편
액슨모빌은 단순한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투하자본수익률(ROIC)과 배당 여력을 극대화해야 하는 냉철한 주식회사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액슨모빌이 알래스카 가스관 사업 추진체(AK LNG LLC)에서 발을 빼고 지분을 알래스카 가스라인 개발공사(AGDC)로 넘긴 결정적 배경은 글로벌 에너지 지형의 급변과 포트폴리오 재편에 있었다.
둘째는 자본 집약도와 회수 기간의 격차다. 액슨모빌은 막대한 자본이 수십 년간 묶이는 초대형 그린필드(Greenfield) 프로젝트 대신, 보다 즉각적이고 높은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자산으로 자본 배분을 집중했다. 가이아나 해상 광구의 초대형 심해 유전 개발과 본토 퍼미안 분지의 타이트 오일 자산 확보, 그리고 모잠비크 및 카타르의 저비용 LNG 확장이 그것이다. 알래스카 LNG는 40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쏟아붓고도 첫 배를 띄우기까지 10년 이상의 리스크를 감내해야 했지만, 다른 대안들은 훨씬 낮은 원가로 단기간에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자본의 효율성 측면에서 알래스카는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경제성의 현실: 단축된 항로가 파이프라인 비용을 상쇄하는가
알래스카 LNG 지지론자들은 줄곧 '물류비 절감'을 내세운다. 알래스카 니키스키에서 한국의 평택이나 일본 요코하마까지의 항해 기간은 약 7~9일로, 멕시코만에서 출발해 파나마 운하를 거치는 20~24일, 혹은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35일 안팎의 항해 기간과 비교하면 수송 거리와 시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지닌다.
그러나 냉정한 가스 경제학의 셈법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LNG의 최종 도입 가격(Landed Price)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가스전 현두 가격(Feedgas Cost), 액화 및 파이프라인 수송 요율(Liquefaction & Pipeline Tariff), 그리고 해상 운송비(Shipping Cost)다.
알래스카는 지리적 근접성 덕분에 해상 운송비에서 MMBtu(100만 영국 열량 단위)당 1~2달러가량의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800마일 파이프라인과 영구동토대 액화 플랜트 건설에 투입된 천문학적 CAPEX를 회수하기 위해 부과되어야 하는 파이프라인 및 액화 수수료는 MMBtu당 최소 4~6달러 이상으로 치솟는다. 배를 타는 시간은 짧아졌으나, 가스가 바다에 닿기까지 육상에서 지불해야 하는 '통행료'가 해상 운송비의 절감분을 완전히 잠식해 버리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오프테이커의 부재와 에너지 전환의 그늘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LNG 프로젝트가 성사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장기 구매계약(SPA)'을 통한 확실한 오프테이커(구매자)의 확보와 이를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완성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전통적인 대형 구매자인 한국과 일본의 국영 및 민간 가스 기업들은 알래스카 LNG와의 장기 구속력 있는 계약(Binding Contract) 체결을 극도로 망설여 왔다.
카타르의 대규모 증산 프로젝트(North Field Expansion)가 전례 없이 낮은 원가로 글로벌 가스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으며, 호주와 미국 걸프 연안의 프로젝트들 역시 공격적인 조건으로 장기 계약을 제시하고 있다. 구매자 입장에서 높은 초기 원가가 불가피한 알래스카산 가스를 20년 이상 경직된 조건으로 장기 계약할 경제적 유인이 빈약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기조와 ESG 경영의 강화는 대규모 화석연료 개발에 대한 국제 금융권의 대출 문턱을 비가역적으로 높여 놓았다. 북극 인근 생태계를 관통하는 파이프라인 사업에 글로벌 상업은행들이 수백억 달러의 신ди케이트론을 제공하는 것은 재무적 위험뿐 아니라 평판 리스크까지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알래스카 LNG는 ‘에너지 안보의 전략적 다변화’라는 화려한 외교·지정학적 명분과 ‘차가운 시장의 자본 논리’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징적 현장이다. 액슨모빌의 철수는 자원 개발이 단지 땅속에 묻힌 매장량의 크기나 지도 위의 최단거리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철저한 원가 경쟁력과 대체 투자처 대비 자본 회수율의 비교우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를 다시금 웅변한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