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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 “안전은 완벽 없어…오직 철저·지속 대비만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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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 “안전은 완벽 없어…오직 철저·지속 대비만 필요”

3호선 전철 대형 참사 막아 낸 순재열 기관사
‘순간의 판단과 신속한 대처’, 교육, 안전의식 덕분
이태원 참사 100일. 사회 안전의식 수준 높아져

코레일 소속 순재열 기관사는 3호선 선로에서 발생한 화재를 순간적인 판단과 신속한 대처로 초기 진화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상황을 막아냈다. 사진=남상인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코레일 소속 순재열 기관사는 3호선 선로에서 발생한 화재를 순간적인 판단과 신속한 대처로 초기 진화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상황을 막아냈다. 사진=남상인 기자
“칠흑같이 어두운 지하터널에서 발화한 선로 위 빨간 불길은 너무 선명하고 밝았습니다. 급히 열차를 비상정차한 뒤 정신없이 달려가 발화지점에 소화기를 분사했습니다.”

지난 6일 코레일 일산승무사업소가 있는 경기 고양시 덕양구 능곡역에서 만난 코레일 소속 순재열(50) 기관사는 “고무가 타는 듯한 매캐한 냄새가 나는 화재현장에는 커다란 불길과 함께 뿌연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며 긴박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당시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한 화재는 지난해 12월 23일 이른 새벽 지하철 3호선 무악재~독립문역 사이 선로에서 발생했다. 폐쇄된 공간인 땅속 깊은 지하터널에서 일어난 화재라 초기 진화를 제대로 못 했다면 불이 확산해 2차 폭발로도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긴박했던 위기의 순간 때마침 전동열차로 이곳을 지나던 순 기관사는 화재현장을 발견하고 ‘순간의 판단과 침착하고도 신속한 대처’로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기를 막아냈다.

그는 “이런 위기 극복이 가능했던 것은 평상시 지속적인 교육과 안전의식 강화 노력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우연히 화재현장을 지나던 한 기관사였을 뿐, 철도인 이라면 모두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며 그의 침착한 대처 때문에 대형화재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는 주변의 칭찬을 인정하지 않았다.

1998년 역무원으로 코레일에 입사한 순재열씨. 그는 수송원, 매표역무원 그리고 전동열차 차장을 두루 거친 특이한 이력의 기관사였다. 대부분 기관사로 신규 입사해 퇴직하는 것이 일반적인 데 이와 달리 그는 사내선발을 통해 기관사가 됐다. 철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며 어린 시절 시골의 작은 역에서 철길을 놀이터 삼아 시간을 보내면서 기관사 등 철도직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후 기관사는 철도 안전을 책임지는‘최후의 보루’라는 사명감으로 국내에서 가장 복잡하고 어렵다는 서울 구로승무사업소에서 경부선과 경인선 기관사로 9년 동안 성실하게 근무했다. 무악재 터널 선로에서 화재가 발생하기 6개월 전 일산승무사업소로 전근해 왔다.

사고 당일 대곡역에서 오금역으로 가는 열차를 운행하던 순 기관사는 홍제역을 발차해 무악재역에 도착할 무렵 관제센터에서 무전 연락을 받았다. 무악재역을 조금 지난 지점에 연기가 나고 있으니 현장에 가서 이상 유무를 확인하라는 내용이었다.
긴급 연락을 받고 사고 지점으로 향하던 중 무악재역에서 독립문역 방향 500m 지점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목격하고 급히 정차했으나 제동거리가 긴 특성 때문에 열차는 발화지점 위에 멈춰섰다. 그는 “많은 승객이 타고 있는 열차 밑에 불이 옮겨붙으면 대형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최대한 빠르게 조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이어 “관제센터에 긴급보고하고 차장에게 상황 전파를 요청한 뒤 열차에서 내려 홀로 30여m를 정신없이 달렸다”고 말했다.

화재현장 발견에서 진화까지 채 10분도 안 되는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이었다. 정신없이 화재를 수습한 그는 “뿌연 연기 속으로 열차 안 놀란 승객의 모습을 보았다”며 “채 한숨 돌릴 여유도 없이 승객들이 출근 시간에 늦지 않게 또다시 운전을 이어갔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비록 잦은 사고로 사회의 비난과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매달 2시간씩 현장직무교육을 받는 코레일 기관사의 안전의식은 직업 특성상 남달라 보였다. 2003년 19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는 모든 철도인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고 한다. 그는 “이 때문에 모두 안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며 사소한 안전사고도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고 꾸준하게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순 기관사는 “장시간 어두운 지하 구간을 운행하며 수많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사의 머릿속에는 떠나지 않은 사고”라며 “만약 내가 사고 열차 기관사였으면 ‘나는 어떤 조치를 하고, 어떻게 대처했을까?’ 자신에게 묻곤 한다”며 당시 사고의 안타까움을 전했다.

벌써 이태원 참사 100일(5일)이 지났다. 대형참사가 잇따르며 사회 전반의 안전의식 수준은 꽤 많이 높아졌고, 안전시스템과 관련 제도도 갖춰졌다. 하지만 그는 “안전에는 완벽이 없다며 오직 철저하고 지속적인 대비만이 필요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남상인 글로벌이코노믹 선임기자 baunamu@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