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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윤봉길 의사 의거 81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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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윤봉길 의사 의거 81돌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507]
[글로벌이코노믹=김영조문화전문기자] 1932년 4월 29일, 81년 전 오늘은 윤봉길 (1908. 6. 21 출생 24살로 의거 순국) 의사가 상해 홍구공원(지금은 노신공원)에서 일제의 조선침략을 만천하에 응징한 날입니다. “제가 채소 바구니를 등 뒤에 메고 날마다 홍구 방면으로 다니는 것은 큰 뜻을 품고 천신만고 끝에 상해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중략)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마땅히 죽을 자리를 구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동경 사건과 같은 경륜이 계실 줄 믿습니다. 저를 믿으시고 지도하여 주시면 은혜는 죽어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위는 백범일지에 나오는 이야기로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만남 장면입니다.

▲의거전한인애국단장김구선생과함께(왼쪽),이때김구선생에게건너준윤봉길시계(보물제568-3호)이미지 확대보기
▲의거전한인애국단장김구선생과함께(왼쪽),이때김구선생에게건너준윤봉길시계(보물제568-3호)


거사 당일인 429일 새벽 백범은 윤봉길 의사와 마지막 식사를 합니다. 식사가 끝나고 거사 장소로 나서기 전 윤봉길 의사는 앞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1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자신의 6원짜리 시계를 백범에게 주고 자신은 백범의 2원짜리 시계를 찹니다. 그리고 백범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현장으로 떠나지요. 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경에게 붙잡힌 윤봉길 의사는 525일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21924살의 젊은 나이로 숨져갔습니다.

중국 장개석 총통이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고 높이 평가했고 이를 계기로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일본 국회의원들이 야스쿠니를 떼 지어 참배하고 아베신조 일본 총리의 조선 침략 사실을 부정하는 망언을 접하면서 또다시 아시아 평화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는 이때에 윤봉길 의사의 목숨을 건 저항 정신을 되새겨봅니다.
▲아사히신문1932년5월1일치에실린홍구공원의거직후의사진(왼쪽),윤봉길의사가던진물통폭탄(검정),의거뒤자살용이었던도시락폭탄)이미지 확대보기
▲아사히신문1932년5월1일치에실린홍구공원의거직후의사진(왼쪽),윤봉길의사가던진물통폭탄(검정),의거뒤자살용이었던도시락폭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