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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개의 뱃고동 소리를 모은 여수엑스포의 랜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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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개의 뱃고동 소리를 모은 여수엑스포의 랜드마크

[홍성훈의 오르겔이야기(46)] 사일로오르겔

[글로벌이코노믹=홍성훈 오르겔 바우 마이스터] 벌써 몇해 전의 일이다. 여수에서 살아 숨쉬는 해양을 주제로 엑스포 개최를 위한 공모전이 있었다.

여수 산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사일로(시멘트 저장창고) 두 개를 철거하지 않고 이를 이용해 엑스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할 수 있는 국제 공모전이었다. 참여한 그룹만도 전 세계 60여 그룹에 달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여러 회사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한 후 무엇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나를 찾아왔다. 소리를 갖고 무언가 가능성을 찾기 위한 기본적 판타지의 스케치를 가지고 과연 이런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논의하고 답을 구하고자 했다.

▲여수엑스포사일로오르겔설치작업모습.
▲여수엑스포사일로오르겔설치작업모습.
자세히 딱히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새로운 소리를 담은 조형물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 프로젝트가 성사되도록 기술 디자이너 역할을 맡기로 했다.

나는 무엇이든 안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시작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한 플라톤의 말을 깊이 공감한다. 목표만 바라보기만 한다면 단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다.

실제로 본 여수의 두 개의 사일로는 실로 거대했다. 높이만도 50m에 달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생각하지 못하던 아이디어가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단초는 바다에 둥둥 떠있는 배들의 새해맞이였다. 새해가 다가오기 바로 1분전, 바다에 떠있는 배들은 새해가 시작될 때까지 각자 뱃고동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큰 배는 큰 고동소리, 작은 배는 작은 고동소리가 바다에 울려퍼졌다. 수백채의 배들에서 뒤섞여 울리는 소리는 제각기 음의 불균형 상태로 불협화음일 수밖에 없지만 그처럼 멋진 화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만큼 기가 막혔다.

그 뱃고동 소리를 한데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그것으로 음을 만들어 엑스포를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가까이에서 제대로 들려준다면 이것만큼 신나는 일도 없겠다 싶었다.
▲사일로오르겔꼭대기에서바라본여수엑스포전경
▲사일로오르겔꼭대기에서바라본여수엑스포전경
여수 엑스포의 관람관은 디지털로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음악이 있기는 하지만 전자적 사운드가 그 자리를 메웠다.

파이프는 80개로 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적어도 피아노 건반수 만큼 넓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오르겔 형태의 장치를 갖게 됨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이 쉽게 칠 수 있는 장점도 생긴다. 그 덕분에 80개의 뱃고동소리가 모아지는 것이다.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10여m 넘는 파이프가 저 멀리까지 들릴 수 있도록 소리를 낼 수 있느냐와 다른 하나는 해안의 바깥에 설치되는 파이프가 바람과 비에 어떻게 견뎌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첫째, 소리는 보통의 터빈형태의 모터를 사용하기 마련인데, 바람을 압축해 강한 압력을 파이프로 불어넣어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컴프레서 방법을 사용하여 소리의 강력함을 만들어냈다. 둘째, 또 다른 문제인 파이프가 비에 맞을 경우에 대비해서는 빗물이 자연히 파이프 통을 흘러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했다.

▲사일로오르겔꼭대기에서바라본여수앞바다
▲사일로오르겔꼭대기에서바라본여수앞바다
여수 엑스포의 사일로오르겔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스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프로젝트에 동참해 정말 큰 경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에 지금도 감사할 따름이다.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한 사일로오르겔(북스마리스)은 여수 엑스포 3개월 동안 개장과 폐장을 알리는 신호음악으로 엄청난 음을 내뿜으며 제 기량을 다하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엑스포가 열리던 첫날 엑스포 조직위원장의 카운트다운을 시작으로 울려 퍼지던 사일로의 웅장한 파이프소리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소리는 인간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아무리 현대적 기기의 발달로 삶을 극대화 하고자 하지만,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원한다.

여수 엑스포의 사일로오르겔이 그 역할의 희망적 모티브를 주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