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코노믹=전혜정 미술비평가] 우리는 평생을 자신을 탐구하면서 산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면서 스스로 자신을 끊임없이 복제해간다. 이메일 속의 나는 현재의 나와 다르고, 게임 속 아바타의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인터넷 쇼핑을 위해 사이트 여기저기를 훑는 나는 세상 누구보다도 깐깐한 소비자이고,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시시콜콜 댓글을 다는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 가상공간에서 나는 누구보다도 뜨거워지며, 누구보다도 냉철하며, 누구보다도 멋지다. 그러나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가상현실 속 무한복제 되는 아바타 '나는 누구인가'
이미지 확대보기▲이희우작무한복제(Infinitereplication),캔버스에아크릴,콘테,각각22X28cm,2005
이희우는 PC방 문화를 탐구하여 이 시대의 여러 ‘나’들을 표현한다. 이희우의 작품은 가상세계에 있는 나의 아바타와 현실 세계의 나라는 자아에 대한 탐구를 그 주제로 한다. 다음, 네이버, 여러 게임 사이트 등등 가상 세계 여러 곳에서 존재하는 자신의 아바타들은 작가 본인의 자아에 대한 고민을 나타낸다. 청년기에서부터 현재까지 당시의 시대상을 같이 경험한 청춘들의 비슷한 경험을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보여주고 있다. 택배 상자처럼 누런색을 배경으로 한 작가 본인과 그 아바타들의 우스꽝스런 행보는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바로 자신의 모습이다. 조선시대의 민화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종이가 누래진 것처럼 누런 배경에 그림을 그렸다는 작가는 민화가 서민의 모습을 대변했듯이, 어디에서건 굳건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 시대 청춘들의 고민과 소통을 그렸다.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다른 모든 사물은 의심할 수 있어도 그와 같이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 의심하고 있는, 다시 말해서 사유(思惟)하고 있는 순간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방법적 회의 끝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git? ergo sum)’는 철학적 원리에 도달했다. 이희우의 ‘나’는 작가 개인의 모습이지만, 그 개인적이고 특수한 경험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자아의 모습으로 확산한다. 데카르트의 자아가 사유와 존재로서의 ‘나’라면, 이희우의 자아는 복제되며 끊임없이 자신을 찾아 탐구하고 방황하는 ‘나’다. 이런 자아는 진지하기 보다는 우스꽝스럽고, 심각하기 보다는 풍자적이며, 깊이를 지니기 보다는 가벼운 해학성을 띤다. 한 때 유행했던 디씨인사이드(DC inside) 사이트의 폐인들처럼, 컴퓨터 화면 뒤로 자신의 본 모습은 숨긴 채 웃고 떠드는 자아의 껍데기만 보여준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보는 우리의 모습이 태어날 때의 벌거벗은 모습이 아니듯, 껍데기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실의 일면이다. 이 껍데기와 진실 사이에 이희우의 작품이 있다.
가상현실 속 무한복제 되는 아바타 '나는 누구인가'
이미지 확대보기▲이희우작터부(taboo),캔버스에아크릴,116.7x90.9cm,2013▲이희우작샤넬백(Showoff),캔버스에아크릴,72.7x60.6cm,2013▲이희우작주변인프로젝트(MarginalManProject),마네킨,로봇청소기등,2011▲이희우작삼신기(Threeregalia),캔버스에아크릴,각30x30cm,2010
이희우는 처음에 가상공간에서 캐릭터를 복제하기 시작했다. 붕어빵처럼 동일하게 자신의 이미지를 찍어내는 것이다. 실제로는 작가가 일일이 그림을 그린 이 복제 프로젝트는 회화와 판화, 영상의 경계를 교묘히 방황한다. 이 후 가상공간에서의 캐릭터 놀이와 그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로봇 청소기 위에 올라가 목적 없이 떠도는 존재는 가상 세계 속에서 자신을 띄우려고 과장하거나 비하하는 인물들을 풍자한 것이다. 이들은 서로 돌아다니며 서로 부딪치고 때로는 피해 다니면서 계속 주변을 맴돈다. 관객은 이들 사이에 들어가 이들의 일부가 되기도 하며, 같이 주변인으로 머문다. 이러한 주변인의 이미지는 순수 예술가(fine artist)로서의 작가의 고민과 겹쳐진다. 회화와 일러스트의 경계에 있는 듯한 이희우의 그림은 ‘나는 작가인데, 이미지로서의 작가는 따로 있다’는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 그 고민은 무언가 고상하고 고뇌하는 이미지의 예술가가 아니라 PC방의 게이머들처럼 거장의 붓과 나이프 등 유리한 아이템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보통 화가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세 가지 이미지-파이프, 베레모, 술 또한 게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내는 카드처럼 익살스럽게 예술가의 허례허식을 비웃는다. 자만심과 오만함을 벗어던진 작가는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불안함에 대한 방어 기제로 풍자를 선택한다. 이러한 풍자는 인터넷에서 익숙한 이미지가 컴퓨터 이미지가 아니라 다시 작가의 손에서 회화로 태어나며 완성된다. 회화과에서 선배들이 금기시 했던 꽃그림은 문신에 쓰이는 붉은 장미로 그려져 터부를 비꼬고, 온갖 잡다한 물건을 넣고 다니는 쇼핑백만이라도 샤넬 쇼핑백-심지어 쇼핑백도 짝퉁으로 제작해서 판다-을 매고 다니는 허영심을 비꼬아 보그 병신체(패션지에서 무분별하게 외래어를 남발하는 것을 비꼬는 인터넷 신조어)를 사용하는 패션계를 조롱한다.
가상현실 속 무한복제 되는 아바타 '나는 누구인가'
이미지 확대보기▲이희우작공즉시색(Emptinessisform),캔버스에아크릴,콘테,각130X162cm,2005▲이희우작피에타(Pieta),캔버스에아크릴,130X180cm,2007
이희우 작품 속의 종교적인 도상들도 종교의 엄숙함을 벗어버리고 이성을 넘어선 믿음을 보여주는 종교의 이미지를 차용함으로써 풍자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블랙 코미디처럼 반전의 웃음을 주는 것이다. 와상과 좌상의 불상들은 부처의 비워냄을 표현하고 있으나 부처가 된 그림 속 이희우는 손에 리모콘을 쥐고 있다. 내가 리모콘을 쥐고 있어 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나, 실상 나는 TV의 노예다. 불상의 연꽃을 들고 있는 수인(手印)도 불교의 엄숙함을 벗어던지고 일본 애니메이션 나루토에 나오는 닌자의 손동작과 섞여 있다. 기독교의 피에타상도 자신의 벗은 몸을 부둥켜안고 있는 작가 자신을 보여준다. 성모가 된 자신에게 안겨있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는 구원받을 수는 없으나 나와 다른 나의 아바타가 보여주는 우스꽝스런 모습들은 카타르시스의 역할을 한다. 이기우의 세계는 지름신이 강림하는 소비사회의 물질만능주의와 무엇이든 손쉽게 얻고 잃는 가상세계의 덧없음, 작가로서의 아우라를 지켜내야 한다는 강박증, 대중문화와 고급 예술의 이미지가 뒤얽혀있다.
가상현실 속 무한복제 되는 아바타 '나는 누구인가'
이미지 확대보기▲이희우작무릉도원(Elysium),캔버스에아크릴,90X50cm,2009▲이희우작드로잉(drawing),종이에혼합매체,21x29.7cm
변신하거나 상황을 바꿀 때 갑자기 ‘펑!’하며 구름이 나타나기도 하고, 인터넷 안에서의 싸움과 현실 세계에서의 싸움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마우스는 외로운 우리에게 구원이 되고 돈과 아이디어, 그리고 올바른 마법의 약만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왕이 될 듯하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는 무한한 욕망을 드러내는 나약한 존재다. 선글라스 뒤로 표정을 숨기는 이희우의 자화상은 두 눈으로 진실을 꿰뚫듯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뒤러(Albrecht Durer)의 자화상과는 사뭇 다르다. 뒤러가 화가를 신의 뒤를 잇는 ‘제2의 창조자’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모습을 신의 이미지에 투영하여 화면 중심에서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며 긍지와 자신감으로 충만한 당당한 모습으로 우리를 압도하고 있다면, 이희우는 사이트 여기저기를 방황하면서 자신의 못난 모습은 속이고 좀 더 잘나 보이고 싶은 나약한 속내를 드러냄으로써 우스꽝스러운 동변상련을 전해준다.
가상현실 속 무한복제 되는 아바타 '나는 누구인가'
이미지 확대보기▲알브레히트뒤러작자화상(SelfPortrait),1500,목판에유화,66.3×49cm▲이희우작수다쟁이(bigmouth),캔버스에아크릴,90.9x116.7cm,2013
이희우는 말한다. “자아의 탐구에서 시작된 나의 작품은 존재론적인 자아의 부정과 함께 가상의 자아를 재창출하고 있다. 나는 너무 거창하게 존재를 언급하는 예술을 믿고 싶지 않다. 단지 탐구의 노정의 길목에서 이제 막 생경하고도 혼란스러운 예술가로의 길로 접어든 내가 ‘이희우’ 통해 본 현시대를 조심스럽게 전하고 싶을 뿐이다.” 자신을 찾는 여행은 평생 계속된다. 나는 무수한 복제를 통해 나의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또한 보잘 것 없는 나의 이미지는 금세 잊히고 만다. 그러나 그 어떠한 것도 나의 모습이고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노력은 평생 계속될 것이다.
■ 작가 이희우는 누구?
작가 이희우는 홍익대학교 회화과 및 동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갤러리 스페이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부남미술관, 공평갤러리 등에서 단체전을 했으며, CSP111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루브 등에서 ‘넷스케이프(Netscape)’, ‘주변인 프로젝트’, ‘아스트랄로 피테쿠스’ 등의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다. 회화와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와 아바타를 확장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 필자 전혜정은 누구?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