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협상·원유 증산 '빅딜' 이면, 전통 우방 이스라엘 향한 '싸늘한 시선'
미국 '거래 우선주의' 업은 사우디, 중동 새 주도권 잡나…이스라엘 독자행동 가능성도
미국 '거래 우선주의' 업은 사우디, 중동 새 주도권 잡나…이스라엘 독자행동 가능성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 미국 거대 기술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대동했으며, 사우디로부터 3000억 달러(약 416조1600억 원)가 넘는 대미 투자 약속을 받아내고 인공지능(AI), 에너지 분야 등에서 대규모 계약을 체결하는 등 미국 국내용 '성과'를 올렸지만, 오히려 중동의 긴장 완화 흐름에 역행했다. 특히 이번 순방에서는 새로운 긴장을 유발할 만한 두 가지 흐름이 주목된다. 사우디와 경제·국방 협력을 한층 강화했고, 무기 판매, AI·데이터센터 투자, 우주·원자력 분야 협력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첫 번째 이변은 미국 최대 중동 동맹국 이스라엘에 대한 이례적 냉대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이 이념·동맹 중심에서 '거래 우선'의 성과 중심으로 전환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는 새삼스럽지 않지만, 이번 이스라엘 홀대는 역내 관계에 미묘한 파문을 던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이스라엘을 방문하지 않고 '지나쳤으며', 이스라엘은 건너뛴 채 사우디, 시리아 임시 정부와 각각 협의했다.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과도 휴전했고, 이스라엘을 배제한 채 팔레스타인 인질 석방 협상과 시리아 제재 일부 해제를 밀어붙였으며, 아부 무함마드 알샤라(알자울라니) 시리아 임시 대통령과 회담 계획까지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랍과 이스라엘의 화해를 '꿈'이라 부르며 "야만적인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이러한 행보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상당한 불쾌감을 안긴 것으로 관측된다. 이로써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의 무조건적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고, 심화하는 고립감 속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우선순위에 둔 이란과의 핵 개발 협상은 네타냐후 총리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지난 4월부터 데니스 위트코프 미국 중동 특사와 아바스 아라크치 이란 외무장관은 네 차례 협상을 진행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순방 중 "합의가 임박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이 같은 상황 전개를 주시하는 데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협상 시한을 '2개월'로 못 박은 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미국 측은 네타냐후 총리의 이란 공격 제안을 일축했고, 이스라엘로서는 핵시설 완전 파괴에 미군 협력이 필수적이어서, 2개월의 협상 기간 동안 미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형국이다.
◇ 이란 핵협상에 '속앓이' 이스라엘…'2개월 시한' 속 군사행동 고심
사이토 미쓰구 전 이란 대사는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을 두고 "이 2개월이 중요 고비"라며 "이란 핵 개발 능력을 없애려는 이스라엘에게 지금은 다시 없는 좋은 기회"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이란은 2024년 두 차례 직접 맞붙었고, 특히 지난해 10월 공격으로 이란 방공망이 무너졌다"고 덧붙였다.
이란은 방공망 복구에 약 6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여, 이란 핵 개발 능력이 되살아나기 전 '공백기'인 지금이 이란 핵시설 공격의 가장 좋은 때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의 이란 공격 제안에 대해, 사이토 전 대사는 "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을 우선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일단 '2개월' 시한을 지켜보며 미국의 협상 결과를 기다리겠지만, 협상이 결렬되거나 합의 내용이 미흡할 경우, 이란의 핵무장 능력 복원 전 '공백기'를 이용한 군사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긴장감이 높아진다. 지하 깊숙한 농축 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벙커버스터'를 보유한 미군의 지원이 이스라엘에게 절실한 만큼, 미국의 협상 태도와 그 결과는 중대 변수다.
◇ 트럼프 등에 업은 사우디, 원유 증산·원전 협력 '광폭 행보'
두 번째 이변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 확대와 그에 따른 원유 시장의 격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순방 기간 "사우디와 지금까지 없던 굳건한 관계"라고 자랑했다. 고야마 겐 일본 에너지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번 방문은 미국과 사우디 관계가 전략적으로 한층 깊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계기"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 방문 직전 사우디가 주도하는 OPEC 플러스(OPEC+)는 대규모 원유 증산을 단행, 이로 인해 국제 유가는 약 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급락했다. 트럼프 관세에 따른 세계 경제 둔화 우려가 증폭되는 가운데 나온 결정이어서 주목된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사우디의 이번 결정이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증산을 강행했던 1997년 자카르타 총회의 잘못된 판단을 재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한다. 한편에서는 사우디가 감산 부담을 홀로 떠안다 결국 시장 조절자 역할을 포기했던 1985년의 정책 선회와 유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가 상승 억제를 명분으로 원유·천연가스 증산을 압박하며 OPEC에도 "유가가 너무 높다"고 불만을 토로해왔다. 사우디는 석유 의존 경제 탈피를 위한 개혁 자금 확보가 절실함에도, 미국의 물가 안정 요구에 부응, 세수 감소를 감수하면서까지 증산에 화답한 것이다. 카타르가 검토 중이라는 대통령 전용기 제공보다 훨씬 효과적인 '선물'이라는 해석이다.
미국과 사우디 간 원자력 발전 협력 논의도 급물살을 탔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진 원전 건설 등 협상에서, 기존의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라는 기술 이전 조건이 완화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 방문 직전 이 조건이 철회됐다는 관측이다. 원전 협력을 발판 삼아 이스라엘과 사우디 관계 개선을 유도하려던 미국의 기존 구상에 변화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사우디의 영향력이 급부상하며 수니파 중심의 새로운 중동 질서가 윤곽을 드러내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는 모양새다. 이스라엘로서는 국교 미수립 관계인 역내 경쟁자 사우디의 원자력 기술 확보를 좌시하기 어려운 처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중동 순방은 미국 경제 이익 확보와 사우디와의 전략적 연대 강화에 집중하면서, 전통적 우방 이스라엘을 홀대하는 이례적 행보를 연출했다. 이란 핵협상과 원유 증산 등을 둘러싼 일련의 조치들은 중동 질서 재편 가능성과 맞물려 새로운 긴장과 불안 요인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과 이스라엘, 이란, 사우디 등 주요국 간의 복잡다단한 '거리 조절'이 향후 중동 정세 안정의 최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