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의 방위비 분담 확대를 강하게 요구했지만 정작 그 배경이 되는 러시아에 대한 직접 언급은 최대한 자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24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이날 개막한 나토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이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과 관련 인프라에 지출하도록 압박했다. 이는 기존 목표였던 2%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러한 증액 요구의 직접적인 이유인 러시아의 위협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 "러시아가 위협" 강조한 나토, 트럼프는 침묵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이번 회담에 앞서 "러시아는 나토 영토, 더 나아가 유로-대서양 전역에 대한 장기적 위협"이라며 군비 증강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지난 4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토가 요구하는 만큼 지출하지 않으면 러시아어를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고 강하게 경고하기도 했다.
NYT는 "러시아가 이번 회담의 진짜 '코끼리'지만 회원국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이를 공개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 우크라이나 문제는 뒷전으로…줄어든 젤렌스키 역할
이번 회담에서 우크라이나는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밀려났다. 블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참석을 망설였지만 결국 공식 만찬에 참석하고 몇 차례 양자 회담을 갖기로 했다. 다만 정상회의 본회의나 나토-우크라이나 협의회는 열리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주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도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을 전격 취소했으며 러시아가 G7에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변화 속에 우크라이나가 외교적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 '5% 국방비' 목표에 합의…트럼프에 성과 안겨
나토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국방비 지출 목표를 GDP 대비 5%로 상향 조정하는 데 사실상 합의했다. 이 가운데 3.5%는 전통적 군사력 증강에, 나머지 1.5%는 군사적으로 활용 가능한 도로·교량, 응급의료, 민방위 대비 등에 쓰일 예정이다. 각국이 이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기한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뤼터 사무총장은 "이번 회의의 목표는 회원국 간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분명한 성과를 안겨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 나토 내부 균열 우려…우크라이나는 '시험대'
NYT는 나토 내부에서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와 슬로바키아의 로베르트 피초 총리 등 일부 지도자들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지지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나토를 더 취약하게 만든다"며 "나토는 러시아를 상대하기보다 자체 방어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정상회의의 목표가 제한적인 것은 미국 행정부의 접근방식 때문"이라며 "정상회의는 나토가 주요 원칙에 대해 여전히 단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마이클 카펜터 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주재 미국 대사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번 회의에서 나토가 자신을 확실히 지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지, 아니면 회의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실질적이고 분명한 지지 없이 조심스럽게 지나갔다는 인상을 받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