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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법원, 트럼프 행정부 '관세권'에 제동…日·英과의 무역협정 무효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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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법원, 트럼프 행정부 '관세권'에 제동…日·英과의 무역협정 무효되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위헌 논란, 대법원 최종 판결 주목
8월 '상호관세' 발효 불투명…WTO '최혜국 대우' 원칙도 위협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가 2025년 6월 16일 캐나다 앨버타주 카나나스키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도중, 트럼프가 내던진 영국과의 무역협정 문서를 주워 들고 언론에 답변하는 모습.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가 2025년 6월 16일 캐나다 앨버타주 카나나스키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도중, 트럼프가 내던진 영국과의 무역협정 문서를 주워 들고 언론에 답변하는 모습.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명분으로 발동한 광범위한 관세 부과 권한이 연방법원의 심판대에 올랐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그가 주요 업적으로 내세운 여러 무역 협정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미국 행정부의 통상 정책이 중대 기로에 섰다고 미 경제방송 CNBC가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핵심 쟁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관세를 부과한 조치의 적법성 여부다. 현재 연방항소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권한에 이의를 제기한 소송의 구두 변론을 앞두고 있다. 'V.O.S. 셀렉션스 대 트럼프'라는 이름의 이 사건은 IEEPA를 활용한 관세 부과에 제동을 건 6건 넘는 연방 소송 가운데 가장 진척이 빨라, 법조계와 산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사건은 트럼프 행정부가 펜타닐과 관련해 캐나다·멕시코·중국에 관세를 매기고, 지난 4월에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상호 관세'를 부과하면서 시작됐다.

앞서 1심인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은 2025년 5월 "IEEPA는 대통령에게 무제한적인 관세 부과 권한을 주지 않는다"며 원고 쪽 손을 들어줬다. 트럼프 대통령이 권한을 넘어섰다고 보고, 8월 1일부터 부과 예정이던 높은 세율의 '상호관세'(최소 10%에서 나라마다 최대 50%에 이르는) 조치를 포함한 관련 행정명령에 무효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바로 항소하자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최종 판결 전까지 관세 효력을 유지하도록 결정을 일시 중지시켰다.
원고 쪽 변호인단은 법원에 낸 서류에서 "IEEPA 법 조문 어디에도 관세, 부과금, 세금에 관한 언급이 없으며, 약 50년의 법 역사상 어떤 다른 대통령도 이를 근거로 관세를 부과한 전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수입 규제' 권한에 관세 부과가 포함된다고 맞서고 있다.

◇ 파이퍼 샌들러 "최근 무역협정 모두 불법될 수도"


다국적 법무법인 시들리 오스틴의 파트너 테드 머피는 CNBC 인터뷰에서 "관세가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한다"며 "이 법은 본래 이런 목적으로 쓰인 적이 없으며, 매우 넓게 적용되고 있어 합당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법원의 최종 판단에 따라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투자은행 파이퍼 샌들러는 지난 25일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하급심은 물론 연방 대법원에서도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렇게 되면 그가 최근 몇 주간 맺은 모든 무역 협정은 불법이 된다"고 예측했다.

대법원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올 경우, 관세 협정의 기초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영국과 해마다 자동차 10만 대에 한해 관세를 25%에서 10%로 낮추고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일부 면제하는 협정을 맺었다. 일본과는 미국 투자를 대가로 자동차 등에서 상호 관세를 내리기로 합의했다. 만약 IEEPA에 근거한 관세가 위법이라고 최종 판결 나면, 이들 협정은 법적 토대를 잃고 전면 무효가 되거나 재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특히 미국이 나라마다 차등을 둬 관세 혜택을 주는 방식은 세계무역기구(WTO)의 핵심 원칙인 '최혜국 대우'와 정면으로 배치돼, 국제 통상 질서 전체에 미칠 파장도 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소송, 대법원행 유력…국제사회도 '촉각'


법적 근거가 흔들리면서 국제 사회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현재 미국과 무역 협상을 벌이는 한국, 독일, 베트남 등 주요국들은 협정 체결과 이행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각국 산업계 역시 관세 적용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워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소송은 6대 3으로 보수가 우위인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대법관만 3명이지만, 법리 판단은 다른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논란이 커지자 백악관은 공식 견해를 내놨다. 백악관의 쿠시 데사이 대변인은 "행정부는 헌법과 의회가 미국 노동자를 위해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고 국가 안보를 지키려고 부여한 관세 권한을 합법하고 공정하게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다른 법률을 근거로 추가 관세를 물리거나 입법으로 우회하는 길을 찾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이지만, 핵심 정책이 이미 큰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가 많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