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해외 매출 3조 원 목표…베트남 중심 복합몰 확장 가속
'숍인숍'·자체 브랜드로 현지화…글로벌 소싱 허브로 공급망 재편
'숍인숍'·자체 브랜드로 현지화…글로벌 소싱 허브로 공급망 재편

K-컬처(한류)를 앞세운 롯데쇼핑이 동남아시아 시장 공략의 전초기지로 싱가포르를 선택했다. 국내 유통시장이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며 성장이 정체되자, 동남아를 '제2의 성장축'으로 삼아 2030년까지 해외 매출 3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2026년 싱가포르에 해외 사업을 총괄하는 본사를 세우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기존 거점의 사업 역량을 한층 강화할 방침이다.
김상현 롯데그룹 부회장 겸 유통군 총괄대표는 17일(현지시각) 싱가포르 유력 일간지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롯데를 동남아시아 최고의 쇼핑 명소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며 이 같은 계획을 공식화했다. 롯데쇼핑의 이번 결정은 동남아 전역에 확산된 한류 열풍이 K-유통의 영토 확장으로 이어지는 것을 상징하며, 앞으로 기업공개(IPO) 추진, 복합 쇼핑몰 확장,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다각적 전략과 맞물려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금융·인재 허브 싱가포르, 글로벌 전초기지로 낙점
롯데쇼핑이 싱가포르를 해외 사업의 '컨트롤 타워'로 삼은 것은 전략에 따른 판단이다. 김상현 총괄대표는 싱가포르를 "롯데의 역내 사업을 위한 자연스러운 중심축"이라고 평가했다. 아시아의 금융·물류 중심지로서의 입지적 우월성과 안정적인 법·제도, 그리고 세계적인 사업을 이끌어갈 우수한 인재 확보가 쉽다는 점을 핵심 이유로 들었다.
싱가포르 본사는 설립 초기에는 소규모 정예 인력으로 출발해 점진적으로 규모를 키울 계획이다. 특히 사업 전반에 인공지능(AI) 혁신 기술을 적극 도입하여 매장 운영을 효율화하고, 고객에게는 맞춤형 경험을 강화하는 데 주력한다. 이와 함께 현지 파트너와 협력하는 '리테일 미디어 네트워크'를 구축해 데이터 기반의 정교한 표적 광고를 집행하는 등 새로운 수익 모델 발굴에도 나선다.
궁극적으로 롯데쇼핑은 이 지역에서 재무 안정성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룬 뒤, 2030년 이전에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은 동남아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재투자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성공 모델 앞세워 '아세안 벨트' 구축
롯데쇼핑의 동남아 시장 자신감은 이미 진출해 있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의 성공 경험에서 나온다. 현재 롯데는 인도네시아에 49개, 베트남에 19개 매장을 운영하며 현지 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23년 베트남 하노이에 문을 연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롯데의 동남아 사업 성공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쇼핑몰, 호텔, 사무실, 주거 시설이 결합된 35만5000㎡ 규모의 이 초대형 복합단지는 문을 연 지 1년 만에 1000만 명 넘는 방문객을 끌어모았다. 입점 브랜드 400여 개 가운데 40%가 베트남이나 하노이에 처음 소개되는 신규 브랜드일 정도로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총괄대표는 "다낭점 역시 관광객들이 귀국 전 반드시 들르는 마지막 필수 방문지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는 이 같은 성공을 발판 삼아 2030년까지 베트남 주요 도시에 프리미엄 복합 쇼핑몰 2~3곳을 추가로 열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30년 해외 매출 3조 원(약 28억 싱가포르 달러) 목표를 달성한다는 구상이다.
해외 사업 실적은 이미 가파른 성장세를 나타낸다. 지난해 1조5000억 원이었던 해외 매출은 2024년 1조6000억 원으로 6.7% 늘었으며,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20억 원에서 400억 원으로 81.8%나 뛰었다. 올해 전망은 더욱 밝다. 2025년 상반기에만 해외 매출 9000억 원, 영업이익 340억 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2.5%, 54.5% 성장했다. 2025년 상반기 기준, 12.9%인 전체 매출 대비 해외 비중을 2030년까지 2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롯데쇼핑은 대규모 복합몰 개발과 함께 현지 시장에 유연하게 침투하기 위한 새로운 유통 모델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숍인숍(Shop-in-shop)' 전략이다. 지난 5월 싱가포르 대형마트 체인 '페어프라이스'의 비보시티 매장 안에 '롯데마트 익스프레스'를 열었으며, 이 성공 모델을 다른 시장으로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이는 치열한 현지 경쟁 속에서 빠른 확장을 꾀하는 실험적인 모델이다.
주요 경쟁자인 일본 이온(Aeon) 그룹과의 차별화를 위해 '한류와 현지화의 결합' 전략을 구사한다. 한국의 최신 식품, 패션, 화장품 브랜드를 엄선해 소개하는 동시에, 2026년 싱가포르 1호점 개점을 앞둔 롯데리아처럼 한국식 식음료(F&B) 브랜드를 확장해 K-콘텐츠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한편, 롯데는 세계적인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한다. 김 총괄대표는 미국의 관세 정책이 직접적인 타격은 없었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 같은 간접 영향으로 제품 가격 인상 압박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지구 온난화로 한국 해역의 수산물 어획량이 줄어드는 등 기후 변화가 농수산물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위협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롯데는 싱가포르 본사 산하에 '글로벌 소싱 사무소'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동남아 지역에서 안정적인 상품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외부 위협이 상품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다질 방침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