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버만 반쪽짜리 백업…'클라우드 이중화' 부재가 화 키웠다
정부, 위기경보 '심각' 격상…'정부판 카카오 먹통' 비판 속출
정부, 위기경보 '심각' 격상…'정부판 카카오 먹통' 비판 속출

정부 핵심 전산시설인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에서 발생한 화재가 전국 행정망 마비 사태로 번지자, 정부가 재난 대응 단계를 최고 수준으로 올렸다. 단순 화재를 넘어 정부 클라우드 시스템의 '안전 불감증'과 허술한 이중화 체계가 드러난 '인재(人災)'라는 비판이 거세다.
위기경보 '심각' 격상…정부 기능 사실상 마비
행정안전부는 27일 오전 윤호중 장관 주재로 긴급 상황판단회의를 열고, 재난 대응을 위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가동했다. 위기경보 단계 역시 '경계'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했다. 이는 26일 오후 8시 20분경 대전 국정자원관리원 리튬배터리실에서 발생한 화재로 정부 주요 전산망이 마비된 데 따른 조치다.
이번 화재로 정부24, 국민신문고를 비롯한 주요 정부 서비스 사이트가 일제히 멈춰 섰다. 정부는 자체 홈페이지 대신 포털사이트 공지 페이지를 통해 국민 행동요령과 대체 민원처리 경로를 긴급 안내하는 이례적인 상황을 맞았다. 행안부는 "각 기관에서 수기 접수, 처리기한 연장 등으로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며 "조속한 복구를 위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는 '반쪽짜리' 재난복구(DR) 체계가 지목된다. 국정자원 대전 본원은 정부 자체 클라우드인 'G-클라우드'를 사용하고 있으나, 물리적 서버 일부에 대한 백업만 구축했을 뿐 클라우드 전체를 실시간으로 복제하는 완전 이중화 시스템은 갖추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화재 발생과 동시에 전산망 전체가 멈춘 이유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3년 전 카카오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와 구조적으로 판박이"라며 "당시 관리 시스템 이중화 부재로 장애가 확산된 문제가 정부 버전으로 재현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20년 넘은 노후 시설, 예산·계획은 '공염불'
국정자원은 대전 본원과 공주 센터 간 이중화 구축을 추진해왔으나, 예산 부족과 기술 검토 지연으로 계획은 제자리걸음이었다. 2005년 문을 연 대전 본원은 20년이 넘은 노후 시설로, 소방·전력 시스템의 안전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다. 정부는 올해 초 클라우드 재난복구 강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실제 사업은 내년 이후로 미뤄진 상태였다.
한 클라우드 업계 관계자는 "국가 데이터의 심장이라 불리는 곳이 이 정도 수준이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며 "AI 시대에 데이터센터는 국가의 혈관과 같으므로, 화재 대비는 물론 전원, 냉각 시스템까지 근본적인 재설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국가 IT 인프라, 전면 수술 불가피
현재 정부는 전자 가족관계등록시스템, 홈택스 등 대체 사이트를 통한 업무 분산에 나섰지만, 일부 서비스는 여전히 접속 장애가 이어지고 있다. 행정 현장에서는 "정부24가 멈추자 창구 업무가 마비됐다", "내부 결재 시스템까지 먹통"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화재를 공공 클라우드 체계 전면 재정비의 신호탄으로 본다. 한 IT 전문가는 "카카오 사태 이후 민간은 삼중화, 사중화까지 추진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단일 센터에 의존하는 안일함을 보였다"며 "행정 인프라가 민간보다 뒤처져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정부가 화재 원인 규명과 복구에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국민 불편과 행정 신뢰도 추락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판 카카오 먹통' 사태를 계기로 국가 클라우드 이중화와 데이터센터 현대화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됐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