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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가격 담합' 구찌에 1억 1960만 유로 과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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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가격 담합' 구찌에 1억 1960만 유로 과징금

8년간 온라인 판매 막고 재판매 가격 통제…EU 경쟁법 정면 위반
끌로에·로에베도 제재…"고급 브랜드 관행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14일(현지시각) 이탈리아 고급 브랜드 구찌가 '반경쟁 가격정책'으로 유럽 경쟁법을 위반했다며 과징금 1억 1960만 유로(약 1983억 원)를 부과했다고 밝혔다. 구찌는 온라인 판매를 막고 유통망의 가격 결정권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시장 질서를 어지럽혔다. 이번 조치는 브랜드 가치를 앞세워 공정 경쟁 원칙을 훼손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EU의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 이 결정은 구찌를 넘어 비슷한 관행이 퍼져있는 세계 고급 패션 업계 전반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온라인 판매 막고 가격 통제…'명백한 위법'


EU 집행위원회가 지적한 구찌의 위법 행위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소매업체 사이의 자유로운 경쟁에 따른 가격 인하를 막고자 유통업체와 매장에 특정 재판매 가격을 지키도록 강요했다. 이는 소비자가 더 싸게 제품을 살 기회를 빼앗는 명백한 담합 행위다. 둘째, 특정 제품군의 온라인 판매를 금지하라고 직접 요구해 유통 경로를 막았다. 이 때문에 일부 소매상은 자기 회사 온라인 상점의 판매를 중단해야 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단일 시장 안에서 자유로운 상거래를 보장하는 EU의 핵심 가치를 정면으로 어긴 것이다. 경쟁을 막는 이런 관행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해치고 가격 경쟁을 막아 시장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위법 행위로 여긴다.

구찌는 시장을 어지럽히는 행위를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벌였다. EU 집행위 조사 결과, 위법 행위는 2015년 4월부터 2023년 4월까지 8년 동안 계속됐다. 이처럼 오래 굳어진 잘못된 관행은 2023년 초 집행위의 예고 없는 현장조사로 마침표를 찍었다. 위법 사실이 드러난 뒤, 구찌의 모회사인 케어링 그룹의 구찌는 혐의를 인정하고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구찌는 조사에 협력한 덕분에 과징금 50%를 감경받아 최종 금액은 1억 1967만 4000유로(약 1984억 원)로 정해졌다. 만약 협력하지 않았다면 약 2억 4000만 유로(약 3979억 원)가 넘는 벌금을 물었을 것으로 보인다.

"브랜드 가치, 불공정 행위의 변명 안돼"

EU의 테레사 리베라 공정·경쟁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이번 조치를 발표하며 "이 결정은 패션 산업을 넘어 유럽에서는 이런 관행을 용납하지 않으며, 공정한 경쟁과 소비자 보호 원칙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유럽의 모든 소비자는 무엇을 어디서 사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진정한 가격 경쟁의 혜택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덧붙였다. EU가 고급 산업의 브랜드 가치 보호가 경쟁 제한 행위의 명분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을 명확히 한 대목이다.

구찌 제재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EU 집행위원회는 똑같이 경쟁을 막는 가격 정책을 편 다른 고급 브랜드로 조사를 넓혀 추가로 제재했다. 시기와 위반 유형이 구찌 사례와 많이 겹치는 경쟁법 위반으로 고급 브랜드인 끌로에와 로에베 역시 과징금을 피하지 못했다. 집행위는 끌로에에 1970만 유로(약 326억 원), 로에베에 1800만 유로(약 298억 원)의 과징금을 각각 매겼다. 이로써 EU가 3개 고급 브랜드에 부과한 과징금 총액은 1억 5700만 유로(약 2601억 원)에 이른다. 이번 연쇄 제재로 EU 규제 당국이 고급 패션 산업의 고질적인 가격 통제 관행을 넘어 본격적인 구조 개혁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