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공격 드론에 맞서 '가성비'로 승부…레이저·그물 등 비살상 무기도 등장
세계 안티드론 시장 10년 내 10배 성장 전망…韓·日 등 아태지역이 성장 주도
세계 안티드론 시장 10년 내 10배 성장 전망…韓·日 등 아태지역이 성장 주도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촉발된 드론 전쟁의 그림자가 세계의 하늘을 뒤덮고 있다. 과거 전선에 국한됐던 공중 위협은 이제 값싼 무인기가 되어 민간 공항과 핵심 운송로의 안보까지 뒤흔드는 '뉴노멀'이 됐다. 이러한 '공중의 무법자'에 맞서 실리콘밸리부터 유럽까지 첨단 기술 기업들이 '드론 잡는 드론' 개발이라는 총성 없는 전쟁에 뛰어들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1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자폭으로 적기를 격추하는 요격 드론, 고출력 레이저, 그물을 발사해 생포하는 기술까지 등장하면서 하늘의 패권을 둘러싼 창과 방패의 경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드론 위협은 형태, 크기, 속도, 고도가 제각각이며 공격용과 정찰용, 단독 비행과 벌떼(스웜) 공격 등 양상이 복잡해 단일 대응책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우크라이나 전장과 유럽 도심의 공항을 방어하는 데에는 서로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어떤 상황이든 대응 시스템은 찰나의 침입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어야 하고, 공격 대상인 드론보다 비용 효율이 높아야 한다는 공통 과제를 안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해법은 실험 단계에 있으며, 여러 기술을 통합한 다층(layered) 방어체계를 구성한다.
이러한 시대 요구에 부응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마르크 뤼터 사무총장은 회원국의 드론 탐지 및 요격 공조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NATO 회원국들은 러시아의 끊임없는 공격 속에서 드론 방어 기술 혁신을 이뤄낸 우크라이나의 경험을 따라잡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감시 드론 제조업체 퀀텀 시스템즈의 스벤 크룩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요격은 매우 어렵다"며 "빠르게 움직이는 표적을 정확히 타격하면서도 대량생산이 가능할 만큼 저렴한 자율 드론 설계는 아직 누구도 완벽히 해결하지 못한 과제다. 궁극적으로는 드론 조종사를 찾아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드론 방어의 세계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곳은 '세계 최대의 안티드론 실험장'이다. 활동가 세르히 스테르넨코는 자국산 '와일드 호네츠' 요격 드론 약 3500대를 군에 보급하기 위한 자금을 모금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요격 드론은 단가가 약 2200달러(약 310만 원)에 불과하지만 명중률은 70%에 이른다"고 강조하며 압도적인 가격 대비 성능을 설명했다. 이 드론의 가격은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방공 미사일의 수십 분의 일에 불과하다. 우크라이나는 탐지 센서 네트워크, 전자전 시스템(EW), 이동형 대공포(게파르트), 요격 드론군을 아우르는 다층 방어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자폭 드론부터 그물 포획까지…아이디어 각축장 된 서방
각국 정부와 군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 육군은 실전형 전장 요격 시스템을 시험하는 '프로젝트 플라이트랩(Project Flytrap)'을 진행하고, 영국은 우크라이나와 협력해 자국 공장에서 '옥토퍼스(Octopus)' 요격 드론을 공동 생산하기로 했다. 러시아제 무인기 침입을 겪은 폴란드와 독일 또한 방어체계를 대폭 강화했다. 반복된 드론 침입으로 뮌헨 공항이 폐쇄되는 홍역을 치른 독일은 군과 연방 경찰의 드론 격추 재량권을 확대하는 법 개정을 서둘렀다.
최근 독일군은 2023년 세운 스타트업 타이탄 테크놀로지스를 파트너로 선정했다. 타이탄의 막스 엔더스 사업개발 책임자는 "우리 요격기는 속도 시속 250km, 사거리 14km, 1kg의 폭발물을 탑재하며, 우크라이나에서 실전 시험 중이다. 조종사 한 명이 최대 8대의 드론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스웨덴의 노르딕 에어 디펜스는 무게 255g, 길이 61cm에 불과한 소형 충돌형 요격체 '크루거 100'을 개발한다. 시속 274km로 돌진해 드론을 파괴하는 이 요격기는 가격을 약 5000달러(약 710만 원)로 책정했으며 2026년부터 납품할 예정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마라 또한 '먼지처럼 싼(dirt cheap)'을 표방하는 '스파이크(Spike)' 요격기를 개발해 미군 및 NATO와 협력하고 있다. 마라의 대니얼 코프먼 최고경영자(CEO)는 "우크라이나 부대와 협력을 시작했으며, 내년 현장 시험 성공을 조건으로 군의 정식 수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물리 타격 외의 해법도 주목을 끈다. 호주의 일렉트로 옵틱 시스템즈는 본래 우주 위성 추적용으로 개발한 초정밀 레이저 기술을 드론 무력화에 적용했다. 일렉트로 옵틱 시스템즈의 안드레아스 슈베어 최고경영자(CEO)는 "우리 시스템은 드론의 센서를 태우거나 동체를 파괴할 수 있으며, 분당 최대 20기의 드론을 제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레이저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위력이 약해져 근거리 방어에 알맞으며, 발전소나 정부 건물 등 핵심 시설 방어에 효과가 있다. 더 나아가 미국 등지에서 개발하는 마이크로웨이브 시스템은 특정 공역 전체의 전자기기를 마비시켜 드론 스웜 공격에 대한 궁극적인 해법이 될 수 있어 기대를 모은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영국 국방과학기술연구소(DSTL) 등이 이 분야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한편, 도심이나 원자력 발전소처럼 부수 피해가 우려되는 곳에서는 비폭력 방식이 필요하다. 독일의 아르구스 인터셉션이 개발한 'A1-팔케'는 그물을 발사해 드론을 생포한 뒤 기지로 귀환하는 독특한 시스템이다. 아르구스의 스벤 슈타인그레버 공동 창업자는 "우리의 목표는 하늘에서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것"이라며 "물리적 개입이 필요하지만 부수 피해를 반드시 막아야 하는 상황을 위해 설계했다"고 밝혔다.
미래 전장 바꿀 '창과 방패'…36조 시장 선점 경쟁
다양한 하드웨어의 성능을 극대화하려면 지휘, 통제, 컴퓨터, 통신을 아우르는 'C4' 시스템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전문가들은 침입자를 정확히 식별하고 가장 효과 있는 대응 수단을 신속하게 할당하는 통합 관제 시스템이 드론 방어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공격 드론보다 요격 장비가 비싸서는 안 된다는 비용 효율 문제와 소형 모터, 배터리, 센서 등 핵심 부품의 공급망 병목 현상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러한 흐름은 '드론 대항 기술 산업(Counter-Drone Industry)'이라는 거대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NQ 디펜스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안티드론 시장은 2025년 29억 7000만 달러(약 4조 2300억 원)에서 연평균 27.5% 성장해 2034년에는 262억 달러(약 37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한국, 일본, 호주 등이 포함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성장이 두드러질 전망이다. 미래 안티드론 기술은 지능화, 저비용화, 다층 방어 체계화라는 세 가지 방향으로 수렴할 것이며, 우크라이나가 실전에서 보여준 민관 합동-기술 혁신형 대응 모델이 앞으로 NATO와 민간 보안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