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직전 사업 진출해 225억 개 보유...SEC 소송 중단·사면으로 논란 증폭
이미지 확대보기일본 닛케이가 10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과 그 일가가 단기간에 이처럼 거액의 자산을 쌓은 사례는 전례가 없다.
트럼프 일가 암호화폐 사업의 중심에는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WLF)이 있다. 지난해 9월 설립된 이 회사는 대선 일주일 전인 10월 30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디지털 자산 판매' 신고를 마쳤다. 대표자는 도널드 트럼프다.
토큰 발행으로 1년 만에 28억 달러 자산 확보
WLF는 디지털 토큰(WLFI)을 1000억 개 발행했다. 올해 9월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에 토큰을 상장하면서 시장에 유통되는 270억 개 분량만으로 33억9000만 달러(약 4조9200억 원)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정부윤리국 제출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는 157억 개의 토큰을 보유하고 있다. 장남 등 일가 기업 보유분까지 합치면 총 225억 개다. 1년 만에 총 28억 달러(약 4조 원)의 시장가치를 얻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적도 없는 토큰을 누가 사들였을까. 올해 4월 2500만 달러(약 363억 원)어치를 매입한 싱가포르의 DWF랩스는 대량 매매로 암호화폐 가격을 조작하는 마켓메이커다. 1억 달러(약 1450억 원)를 투자한 아랍에미리트(UAE)의 아쿠아원은 출자자조차 불명확해 실체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극단적 사례는 암호화폐 '트론' 창업자 저스틴 선이다. 그는 시장 조작 혐의로 2023년 3월 SEC로부터 소추됐다. 그런데 7500만 달러(약 1080억 원)어치 WLF 토큰을 매입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월 소송을 중단했다. 올해 10월에는 트럼프가 바이낸스 창업자 창펑 자오를 사면했다. 자오는 2023년 자금세탁 혐의를 인정한 바 있다.
말로 시장 움직이는 대통령
WLF의 토큰이 팔리면 트럼프 일가에는 실제 수입이 발생한다. WLF는 토큰 판매로 5억5000만 달러(약 7990억 원)를 확보했다. 회사 사업설명서에 따르면 수익의 75%가 일가 기업에 흘러간다. 트럼프는 지난해에만 WLF에서 5735만 달러(약 830억 원)의 실수입을 얻었다.
트럼프가 암호화폐 사업에 몰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금융권 안팎에서는 2021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일가가 일부 은행에서 대출을 거부당한 사실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회 습격 사건 등 때문이었지만, 은행 시스템에서 배제된 공포와 반발이 일가를 암호화폐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암호화폐 국가전략비축의 축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다." 트럼프는 지난 3월 2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런 성명을 냈다. 두 코인 가격은 수 시간 만에 10%나 올랐다. 실제로 WLF는 토큰 판매 자금을 바탕으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투자하고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발언만으로 시장을 움직여 일가 사업 수익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바이낸스와 트럼프 일가 사이에는 특수한 거래가 있다. 바이낸스가 중동에서 20억 달러(약 2조9000억 원) 투자를 받을 때 달러 대신 WLF의 스테이블코인 'USD1'을 사용했다. 20억 달러라는 거금이 WLF에 공급돼 연 1억 달러(약 1450억 원) 전후의 이자 수익을 안겨줬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권과 업계 유착, 정치적 위기로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뒤 잇따라 암호화폐 규제를 풀었다. 취임 첫날 규제 강경파인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이 사임했다. 감시 기관이 약화되자 일가 사업도 급가속했다.
트럼프 가족 기업은 지난 1월 '트럼프코인'을 발행했다. 실용성 없는 밈코인임에도 유통 총액은 15억5000만 달러(약 2조2500억 원)에 달한다.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운영 회사는 20억 달러어치 비트코인을 확보했다. 일가의 암호화폐 사업은 1년 만에 시가총액 제로에서 100억 달러로 성장했다.
백악관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은 "대통령과 일가는 이해상충에 관여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암호화폐 사업은 트럼프 정권의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간단체 어카운터블US 조사에 따르면 WLF 토큰 매입자에는 북한, 이란, 러시아 관련 조직이 포함됐다. 암호화폐는 내부 거래로 가격을 쉽게 급등시키거나 폭락시킬 수 있다.
야당인 민주당은 반격에 나섰다. '암호화폐 부패 종식법안' 등 여러 규제안을 준비했으며, 내년 중간선거에서 세력을 확대하면 의회 조사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트럼프가 역경에 빠지면 암호화폐 시장 전체가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 시장 규모는 3조5700억 달러(약 5180조 원)로 이 1년 새 1.5배 늘었다. 배경에는 국가 비축과 규제 완화 검토를 매수 재료로 삼는 '트럼프 풋'이 있었다. 정권과 업계의 유착이 새로운 '어두운 정부'로 변질되면 트럼프 지지층의 이탈을 가져올 수 있다. 1기 재임 때 두 차례 탄핵소추를 받은 트럼프에게 지지 기반 상실은 최대 위기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