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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반도체 공장엔 외국인력 수천명 필요"…H-1B 비자 10만 달러 인상 두달 만에 입장 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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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반도체 공장엔 외국인력 수천명 필요"…H-1B 비자 10만 달러 인상 두달 만에 입장 번복

현대 조지아 공장 한국인 475명 단속 후 "바보같은 짓" 자인…MAGA 반발 속 기술이민 옹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첨단 반도체 공장 운영에 외국인 노동자가 필수라며 자신의 핵심 지지층인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9(현지시각) 케네디센터에서 열린 미국-사우디 투자 포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노동자들의 컴퓨터 칩 제조 기술 부족을 직접 언급하며 외국인력 도입을 강력히 옹호했다고 보도했다.

"칩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으로는 안 돼"


트럼프 대통령은 엔비디아의 황 CEO를 직접 거명하며 더욱 강도 높은 발언을 이어갔다. 엔비디아는 대만에서 온 노동자들이 다수 근무하는 애리조나 공장에서 고성능 블랙웰 칩 생산을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칩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로는 공장을 운영할 수 없다""수천 명의 외국인 기술자를 데려와야 하고, 나는 그들을 환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보수 지지자들을 의식한 듯 "나는 보수 친구들을 사랑하고 MAGA를 사랑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짜 MAGA"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미국인을 교육할 것이며 단기간에 미국인 노동자가 성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일부 지지자들이 "정치적으로 극우"에 속하며 자신이 이 문제로 "약간의 비난"을 받을 수 있음을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애국자들이지만, 우리 국민이 이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9H-1B 수수료 10만 달러 인상 뒤 두 달 만에 번복


이번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919일 숙련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H-1B(취업) 비자 신청 수수료를 10만 달러(14600만 원)로 대폭 인상한 지 두 달 만에 나왔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H-1B 프로그램이 미국인 노동자를 저임금 외국인으로 대체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며 "미국인 근로자 우선" 원칙을 강조했다.

H-1B 비자를 둘러싼 논쟁은 공화당 내부를 분열시키고 있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등 전통적 MAGA 지지자들은 H-1B가 미국인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주장한다. 반면 머스크 등 실리콘밸리 출신 신규 트럼프 동맹 세력은 H-1B가 세계 최고 인재 유치에 필수적이라고 반박한다.

보수 여론조사기관 라스무센리포트의 수석 조사관 마크 미첼은 최근 백악관을 방문한 뒤 소셜미디어 엑스(X)"H-1B는 독성이 강한 제3의 레일이며, 아마도 다시는 옹호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대 조지아 공장 한국인 단속, 외교 마찰 부른 뒤 태도 변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 배경에는 지난 9월 조지아 현대 배터리 공장 한국인 노동자 단속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이민세관단속국(ICE)94일 조지아주 엘라벨 현대-LG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475명을 단속했으며, 이 중 300명 이상이 한국인 숙련 기술자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포럼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며 "단속 후 '멈춰라. 바보 같은 짓 하지 마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일부 한국인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복귀했다고 덧붙였다.

76억 달러(111600억 원) 규모의 현대-LG 배터리 공장은 현대가 총 260억 달러(381900억 원)를 투자하는 조지아 전기차 생산 단지의 일부다. 현대 CEO 호세 무뇨스는 이 단속으로 공장 가동이 2~3개월 지연됐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했으며,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 직접 투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장 노동자용 임시 비자 방안은 아직 불투명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부터 칩, 배터리 등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초기에는 전문 기술을 가진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해야 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임시로만 근무하면서 미국인 노동자를 교육할 수 있다고 제안했으나, 이들이 임시로 이주할 수 있는 명확한 경로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백악관 대변인 쿠시 데사이는 성명에서 "미국 노동자는 세계에서 가장 재능 있고 근면한 인력"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 산업 지도자들과 협력해 미국인의 잠재력을 이끌어내 다음 황금기를 열겠다"고 밝혔으나, 외국인 비자 프로그램이 미국인 일자리를 빼앗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변덕스러운 관세 정책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혼란을 겪는 가운데, 많은 기업이 미국에 대형 공장을 열겠다고 약속하며 백악관으로부터 관세 면제를 받으려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투자를 자신의 무역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신호로 자주 언급하지만, 일부 제조 계획은 그의 집권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현재 연간 약 85000개로 제한된 H-1B 비자는 주로 기술, 공학, 의료 분야의 고숙련 노동자를 위한 것으로, 2024 회계연도에 갱신을 포함해 약 40만 건의 H-1B 비자가 승인됐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