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스위스가 오랜 기간 유지해온 ‘중립과 합의’ 중심의 국가 운영 모델이 빠르게 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세계 최대 부(富) 관리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해온 스위스의 기업·금융 수장들이 공개적으로 위기감을 드러내며 국가 정체성과 경쟁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2일(이하 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콜럼 켈러허 UBS그룹 이사회 의장은 지난달 4일 홍콩에서 열린 ‘글로벌 금융 리더 투자 정상회의’에 참석해 “스위스는 광채를 잃고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했다.
켈러허 의장은 자산관리 시장에서의 경쟁 심화와 미국의 관세 부과로 제약 등 수출 산업이 타격을 받은 점, 규제 환경이 점점 더 자유로운 국가들과 어긋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이같이 지적했다.
세베린 슈반 로슈 이사회 의장도 이달 진행된 한 패널 토론에서 스위스가 “결정적인 순간”에 와 있다며 글로벌 투자 압력과 느린 정치적 의사결정이 경쟁력을 잠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는 것을 꺼려온 스위스에서 이처럼 공개적인 비판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 중립과 합의의 국가, 1년 사이 흔들린 자신감
전후 수십 년 동안 스위스는 직접민주주의에 기반한 합의 정치, 안전자산 통화로서의 스위스프랑, 예측 가능한 산업·외교 구조 덕분에 주변국의 격변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러나 지난 1년은 이런 ‘완충지대’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발터 투른헤르 전 스위스 연방 사무총장은 “이번 위기는 특히 날카롭게 느껴진다”며 “마치 운동장에서 보호자 없이 더 강한 상대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다비드 바흐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총장도 “올해 긴장은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밀려왔다”고 진단했다.
◇ 트럼프 관세·다보스 논란…외부 충격의 연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스위스에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한 사건은 경제 블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소국 스위스의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세계경제포럼(WEF)을 이끌던 클라우스 슈바프 전 회장을 둘러싼 조사와 다보스 포럼을 상징으로 한 제네바 국제사회의 위상 약화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국내에서는 네슬레 최고경영진의 사임, 율리우스 베어 등 사설 은행들의 자금세탁 방지·준법 논란까지 겹치며 불안감이 커졌다. 스위스 유력 경제지 노이에 취리허 차이퉁 암 존탁은 최근 보도에서 “스위스는 더 이상 지루하지 않다”며 정체성 위기를 지적했다.
◇ 그럼에도 ‘회복 탄력성’ 강조하는 시각
반면 스위스의 근본 체력은 여전히 견고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스위스는 국경 간 자산관리의 세계 최대 중심지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자산관리 규모는 지난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취리히연방공과대학을 축으로 한 혁신 생태계, 고부가가치 정밀 제조업, 우수한 공공서비스 역시 강점으로 꼽힌다.
필리프 힐데브란트 전 스위스 중앙은행 총재는 “통화 가치 급등 같은 압력에도 기업들은 민첩하게 대응해왔다”며 “수출 경쟁력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직접민주주의 제도 역시 급격한 정책 변화를 억제하는 완충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다.
◇ 중립의 재정의와 EU와 관계, 피할 수 없는 선택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스위스의 중립은 사이버전, 제재, 무기 재수출 문제를 놓고 근본적 질문에 직면했다. 스위스 정부는 EU과 유엔 제재를 채택했지만 중립 원칙의 적용 범위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EU와의 단일시장 접근을 업데이트하는 이른바 ‘양자협정 3’도 국민투표 가능성이 거론되며 정치적 부담으로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스위스가 더 이상 외부 문제를 뒤로 미루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중립, 국방, 유럽, 이민, 국가 역할을 둘러싼 결정을 한꺼번에 내려야 하는 국면이라는 얘기다. 스위스의 독특한 모델이 빠르게 변하는 세계에서 여전히 통할지, 아니면 조정이 불가피할지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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