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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에너지 셧다운’ 공포… 데이터센터 비상 발전기까지 쥐어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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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에너지 셧다운’ 공포… 데이터센터 비상 발전기까지 쥐어짜나

PJM, 14만MW 폭증한 전력 수요에 연방 긴급권한 발동… 백업 자원 총동원
기후 변동성이 무너뜨린 30년 수요 모델, 인프라 한계 노출로 시스템 재설계 불가피
기후 적응 비용 수십억 달러 투입 예정… 결국 전기요금 인상 ‘청구서’로 돌아온다
미국 최대 전력망 운영 기구인 PJM 인터커넥션이 기록적인 북극 한파에 따른 대규모 정전을 막으려고 데이터센터의 백업 발전기까지 동원하는 고육책을 내놨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최대 전력망 운영 기구인 PJM 인터커넥션이 기록적인 북극 한파에 따른 대규모 정전을 막으려고 데이터센터의 백업 발전기까지 동원하는 고육책을 내놨다. 이미지=제미나이3
미국 최대 전력망 운영 기구인 PJM 인터커넥션(PJM Interconnection)이 기록적인 북극 한파에 따른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을 막으려고 데이터센터의 백업 발전기까지 동원하는 고육책을 내놨다.

지난달 30(현지시각) 에너지 전문 매체 유틸리티 다이브(Utility Dive) 등에 따르면, 미 에너지부(DOE)는 전력 피크가 역대 최고치인 143700MW(메가와트)에 육박하자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수용가의 비상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긴급권한을 발동했다. 이는 기후 이변으로 기존 전력 수요 모델이 무용지물이 된 가운데, 미국 에너지 인프라가 근본적인 체질 개선 압박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비상 발전기 9GW의 함정… 종이 위 숫자에 불과한 실효성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겨울 폭풍 (Fern)’으로 인한 정전을 막으려고 연방전력법 제202c항에 따른 임시 권한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PJM13개 주 전역의 데이터센터와 대형 산업 시설에 설치된 백업 발전기를 전력망에 투입할 수 있게 됐다. 당초 지난달 31일 만료 예정이었던 이 명령은 혹한이 이어지면서 이달 2일 자정까지 연장됐다.

PJM이 예상한 지난달 30일 최대 전력 수요는 141900MW(메가와트), 지난해 기록한 역대 최고치인 143700MW에 근접했다. PJM은 모든 발전 자원과 긴급 수요 대응(DR) 수단을 동원한 뒤에도 전력이 부족한 '에너지 비상경보 2단계(EEA 2)' 상황이 되면 백업 발전을 공식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실제 가용 용량과 실효성을 두고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에너지부 측은 미국 전역에서 35GW(기가와트) 이상의 백업 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에너지정보청(EIA)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 캡스톤(Capstone) 보고서는 실제 가동 가능한 자산이 9GW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캡스톤 분석가들은 "전력망 운영자가 직접 발전기를 운전할 메커니즘이 부족하고 기존 수요 반응 프로그램 외에는 참여 유인책이 없다""실질적인 완화책이라기보다 정치적 전술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폭염·한파에 뒤흔들리는 수요 지도…예측 불허일상이 된 전력망


기존 전력 수급 전략이 한계에 부딪힌 근본 원인은 기후 변동성이다. 과거에는 여름 냉방, 겨울 난방이라는 단순한 공식 아래 수십 년간의 역사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요를 예측했다. 하지만 최근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사례는 이러한 모델을 무력화하고 있다.

2023년 텍사스 폭염 당시, 기온이 섭씨 38(화씨 100)를 웃돌자 전력 피크 시간대가 오후 9시로 옮겨갔다. 낮 동안 건물에 저장된 열이 밤늦게까지 배출되면서 예상치보다 전기 사용량이 30% 급증했기 때문이다. 겨울철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21년 텍사스 한파 당시 천연가스 발전소와 풍력 터빈이 동결되면서 전력 가격이 MWh(메가와트시)50달러에서 9000달러(1305만 원)로 폭등했다.

배전 시스템의 물리적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변압기는 극심한 기온 변화에 과열되고 지하 케이블은 고장이 잦아지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진 점도 복잡성을 더한다. 태양광은 구름 낀 무더운 날 출력이 급감하고, 풍력은 고요한 겨울 저녁 난방 수요가 최고조일 때 멈춰 서는 등 전력 공급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에너지 시스템 근본 재설계와 비용 부담 과제


미국 전력 업계는 이제 20~30년 장기 예측을 바탕으로 인프라를 구축하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기후 적응을 위해 변전소와 송전선을 보강하고 전력망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수십억 달러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이러한 투자 비용은 결국 전기 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점이 문제다. 이미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백업 발전기와 가정용 배터리 저장 장치에 직접 투자하며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스마트 온도조절기와 전기차 충전 부하 관리 등 소비자의 행동 변화도 전력망 운영의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기후 적응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치열하다. 일부 주 정부는 보조금을 지원하지만, 대다수 유틸리티 기업은 인프라 투자분을 요금에 반영하려 하고 있다. 미국 전력망 전문가들은 "날씨는 계속해서 극단적으로 변할 것이며, 에너지 시스템이 이 속도에 맞춰 진화하지 못하면 신뢰성 붕괴는 피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이번 PJM의 데이터센터 백업 발전기 동원 검토는 단순한 비상 대책을 넘어, 기후 위기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 미국 에너지 인프라가 마주한 거대한 전환점을 보여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