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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법원 상호관세 위법 판결에도 한국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합의,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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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법원 상호관세 위법 판결에도 한국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합의, 흔들리지 않는다

자동차·철강 품목관세 여전히 살아 있어…트럼프, 무역법 122조로 24시간 만에 반격
"150일 뒤 더 강한 관세 온다"…협상 테이블 뒤집기보다 버티기 선택하는 각국
美 연방대법원이 지난 20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가 위법이라고 결정했지만, 국제 통상 전문가들은 한국·유럽연합(EU)·일본 등 이미 합의를 맺은 나라들이 협정을 뒤집기보다 현상 유지를 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美 연방대법원이 지난 20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가 위법이라고 결정했지만, 국제 통상 전문가들은 한국·유럽연합(EU)·일본 등 이미 합의를 맺은 나라들이 협정을 뒤집기보다 현상 유지를 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지=제미나이3
관세가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는데, 왜 한국은 3500억 달러(506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합의를 되돌리지 못하는 것일까.

美 연방대법원이 지난 20(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가 위법이라고 결정했지만, 국제 통상 전문가들은 한국·유럽연합(EU)·일본 등 이미 합의를 맺은 나라들이 협정을 뒤집기보다 현상 유지를 택할 것으로 내다봤다.

파이낸셜타임스(FT)21일 이 같은 분석을 전했다. 자동차·철강 품목관세 보복 위협이 건재한 데다 안보 협력 카드까지 걸린 탓에, 대법원 판결이 곧 협상 레버리지 소멸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위법 판결이 협상 우위를 바꾸지 않는다"


대법관 9명 가운데 6명은 무역적자를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해 관세를 부과하는 근거로 삼아온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 권한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행정부는 IEEPA 문구가 관세에 적용된다고 의회가 명시한 법률 조항을 단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고 못 박았다.

이번 판결로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매긴 10% 기본관세와 국가별 상호관세는 법적 근거를 잃었다. 그러나 자동차·철강·반도체·의약품 등에 부과된 품목별 관세는 무역확장법 232조와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하기 때문에 이번 판결과 무관하게 그대로 유지된다.

국제상공회의소(ICC)의 앤드루 윌슨 사무차장은 "최근 각국 정부와 나눈 대화를 보면, 지금 당장 기체결 합의에서 이탈하려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스위스 로잔에 있는 IMD 비즈니스스쿨의 시몬 에브넷 지정학·전략 교수는 "스위스처럼 현재 미국과 협상 중이거나 임시 합의를 맺은 나라에게는 150일이 지난 뒤 고율 관세 부과 위협이 오히려 양보 압박을 높이는 효과를 낸다. 전반적인 구도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의 블로그에 적었다.

트럼프의 '24시간 반격'…무역법 122, 150일 시한폭탄


판결이 나온 당일, 트럼프 대통령은 1974년 무역법 122조를 꺼내 들었다. 모든 나라에 10% 일괄관세를 즉시 부과했고, 이튿날인 21일에는 이를 15%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122조는 심각한 무역적자 해소를 목적으로 최대 15%의 관세를 150일간 부과할 수 있는 조항이다. 다만 150일이 지나면 의회 승인 없이 유지할 수 없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판결 전부터 "전체 세수 측면에서 비슷한 수준의 관세를 계속 부과하는 능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혀 대체 수단 가동을 예고했다. 그가 꼽은 대안은 무역법 301조와 무역확장법 232조다.
법조계와 통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조항들이 IEEPA처럼 광범위하고 즉각적인 관세 부과에는 절차상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연구팀은 IEEPA 기반 관세로 이미 1750억 달러(253조 원) 이상이 징수됐다고 추산했다. 환급 문제는 대법원이 직접 다루지 않고 하급심으로 넘겼다.

한국·EU·인도, 각자의 계산법


한국의 경우 지난달 한미 양국이 업무협약(MOU) 형태로 맺은 3500억 달러(50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은 법적 구속력이 낮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행정부의 일방적 관세 압박에는 어느 정도 제동이 걸렸다. 다만 자동차 품목관세는 이번 판결 대상에서 벗어나 있어 그대로 살아 있다. 자동차가 대미 수출의 핵심 품목인 한국 입장에서는 대미 투자 합의 이행 여부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당분간 가시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EU 쪽에서는 유럽의회가 오는 23일 이른바 '턴베리 합의' 비준 연기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턴베리 합의는 EU산 수입품에 15%의 관세를 적용하되, 미국도 상응하는 시장 개방 조건을 수용하는 방식의 상호 관세 협정이다. 브뤼셀 안팎에서는 판결을 계기로 협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지만, 자크 들로르 연구소의 니콜라스 쾰러-스즈키 무역·경제안보 자문역은 "자동차 관세 재부과 위험이 여전해 유럽의회가 협정에 정면으로 도전할 유인을 눌러놓는다"고 말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지원과 연계된 미국의 안보 카드까지 작동하고 있어, EU가 섣불리 합의를 흔들기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인도는 판결 직후 통상부 명의로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는 신중한 입장을 냈다. 이달 미국과 합의한 인도산 수입품 관세는 50%에서 18%로 낮아진 상태다. 브리지 인디아 싱크탱크의 프라틱 다타니 설립자는 "이번 판결로 인도 같은 교역국의 협상 여지가 넓어졌고, '트럼프는 결국 겁을 먹고 물러선다'는 이른바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 해석에 힘을 실어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당일 인도 합의의 향방을 묻는 기자 질문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전직 영국 무역부 관리 출신으로 현재 SEC 뉴게이트 컨설팅에 있는 앨리 레니슨은 "법적 불확실성으로 미국의 레버리지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백악관은 이제 외교적으로 훨씬 더 섬세하게 움직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이 트럼프의 관세 무기를 빼앗은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자리를 또 다른 위협이 채우고 있는 한, 협상 테이블의 힘의 구도가 하루아침에 뒤집히지는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