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이미지 확대보기사람의 노동만이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이 노동가치설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이다. 스티븐슨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나온 지 6년째 되던 해인 1781년 영국 뉴캐슬 부근의 와이램이라는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해 학교는 구경도 못했다. 어릴 때부터 탄광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었다. 스티븐슨은 탄광일 하면서 석탄을 더 빨리 더 많이 캐낼 방도를 연구한다. 그의 나이 35세 되던 해인 1814년 처음으로 석탄 운반용 기관차를 탄광에서부터 항구까지 달리게 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 기관차를 이용하면서 영국의 석탄 생산량은 크게 늘어났다. 산업혁명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스티븐슨의 핵심 기술은 증기기관이다. 증기기관(Steam engine)이란 수증기의 열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전환시킨 뒤 그 힘으로 기계를 움직이는 장치이다. 1705년 영국의 발명가 토머스 뉴커먼이 발명했다. 1769년 제임스 와트가 상업화에 성공했다. 끓는 물을 이용하여 동력을 만들어내는 이 증기기관을 스티븐슨이 응용하여 철도를 만든 것이다. 그 철도가 석탄 생산량을 대폭 늘렸다. 늘어난 석탄의 양은 산업혁명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산업혁명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소재는 석탄이었다. 증기기관을 움직이려면 우선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물을 끓이기 위해서는 석탄이 필요했다. 누가 얼마나 많은 양의 석탄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부의 판도가 좌우될 정도로 석탄이 중요했다. 산업자본가들은 너도나도 전세계를 돌며 석탄 탄광 개발에 열을 올렸다. 석탄개발회사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뛰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석탄의 소비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증기기관을 더 잘 돌릴 수 있는 기술이 나왔다. 증기기관의 동력전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기술 혁신이 이뤄진 것이다. 이 소식이 나오자마자 석탄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했다. 소량의 석탄으로도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내는 증기기관이 등장한 만큼 석탄의 수요가 급격하게 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될 수 밖에 없었다. 석탄 가격도 곤두박질 했다. 증기기관의 기술혁신 소식은 적어도 당대 석탄산업과 석탄 산업에 엄청난 돈을 투자한 사업가들에게는 실로 엄청난 재앙이었다. 이것이 산업혁명 초기 경제계를 발칵 뒤흔든 그 유명한 제1차 석탄 파동이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William Stanley Jevons)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제번스는 현대 경제학을 과학의 경지로 올리는데 1등 공신 역할을 한 경제학자이다. 경제학에 수학을 맨 처음 도입한 이가 제번스였다. 제번스는 부가가치의 근원을 '노동'이 아닌 '인간의 주관적 효용'에서 찾음으로써 한계 혁명을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고센 등과 공동으로 개발한 한계효용 이론(Marginal Utility)은 가치는 물건을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노동)이 아니라 소비자가 마지막 한 단위를 소비할 때 느끼는 만족감인 '한계효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것이다. 이후 카를 멩거, 레온 발라스 등을 거치면서 한계 혁명으로 발전한다. 이 한계 혁명이 현대 미시 경제학의 출발점이다.
바로 그 시절 증기기관의 열 효율 기술 혁신으로 석탄산업이 붕괴 위기를 맞고 있었다. 제번스는 역발상의 아이디어를 냈다. 기술 발전으로 자원 이용의 효율성이 높아지면 단기적으로는 그 자원의 가격이 떨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그 자원의 전체 소비량이 늘어난다고 주장한 것이다. 석탄엔진의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면 증기기관을 채택하는 곳이 많아지고 그 결과 석탄가격은 다시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제번스의 역설(Jevons Paradox)이라고 부른다. 1865년에 발표한 석탄 문제(The Coal Question)라는 논문의 핵심 내용이다. 석탄 한 알로 얻을 수 있는 동력이 커지자 동력의 '단가'가 낮아졌다. 이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분야에 증기기관이 도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면직 공장의 물레를 돌리던 엔진은 거대한 기차를 움직이고 대양을 건너는 선박에 탑재되었다. 효율의 향상이 가격 하락을 이끌고, 낮아진 가격이 폭발적인 수요 창출로 이어진 것이다. 제번스의 역설에 따르면 석탄은 효율화 덕분에 사장된 것이 아니라 효율화 덕분에 '산업의 쌀'로 등극할 수 있었다.
요즘 구글 터보퀀트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터보퀀트(TurboQuant) 기술은 AI 추론 과정에서 메모리 자원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알고리즘 혁신이다. AI 연산의 병목 현상인 KV 캐시 데이터를 압축하여 메모리 점유율을 낮추고 속도를 높인다. 이 소식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메모리를 적게 쓰고도 AI를 돌릴 수 있다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가 급감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유포되고 있다. 산업혁명 시대 석탄 파동와 유사한다. 제번스의 역설에 따른다면 터보퀀트는 메모리 수요를 죽이는 '독약'이 아니라, AI가 탑재될 수 있는 기기의 범위를 기하급수적으로 넓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석탄은 결국 석유라는 새로운 대체재에 의해 왕좌를 찬탈당했다. 석탄이 석유에 자리를 내주었듯이 언젠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도 또 다른 소재로 대체될 수 있다. 효율화 기술이 하드웨어의 존재 가치를 모두 지우기 전에 스스로를 파괴하고 CXL과 PIM 등의 차세대로 넘어가려는 혁신이 동반되어야만 '석탄의 운명'을 피할 수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