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기·가격 경쟁력 발판 삼아 기술 이전·생산 거점으로 진화…유럽 방위산업 생태계 재편 가속
'단순 공급자'에서 '공동 개발 파트너'로…차세대 무기 경쟁까지 영향력 확대
'단순 공급자'에서 '공동 개발 파트너'로…차세대 무기 경쟁까지 영향력 확대
이미지 확대보기이들의 공통 전략은 단순하되 파괴력이 크다. 무기를 팔고 물러서는 데서 멈추지 않고,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을 통해 '유럽 내부 플레이어'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시장 점유율 확대를 넘어 유럽 방위산업·기술·산업 기반(EDTIB·European Defence Technological and Industrial Base) 자체를 흔드는 구조적 전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납기·가성비' 넘어 '산업 거점' 전략으로
한국 방산의 유럽 진출은 2014년 크림반도 사태 이후 K9 자주포를 계기로 본격화됐다. 초기 경쟁력은 빠른 납기와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그러나 최근 전략의 무게중심이 완전히 이동했다.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을 결합한 '다국적 산업 네트워크' 구축, 즉 유럽 방산 생태계 안으로 직접 이식(移植)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폴란드다. 한국 방산 기업들은 단순 물자 수출을 넘어 미사일 생산 합작법인 설립, 전차·자주포 현지 생산라인 구축을 병행하며 폴란드를 '유럽 방산 허브'로 키우고 있다. 이는 단순 계약 이행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자체를 이전하는 수준의 협력이다.
루마니아에서도 같은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조립 공장 설립과 현지 공급망 구축을 통해 동유럽 전역을 커버하는 또 하나의 거점으로 부상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범정부 차원의 '원팀 코리아(One Team Korea)' 체제를 가동, 기업 간 내부 경쟁을 조율하며 해외 시장 대응력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한국은 '빠르게 납품하는 공급자'라는 초기 이미지를 탈피해 '유럽의 산업 기반을 함께 키우는 전략적 파트너'로 위상을 격상시키고 있다.
브라질, C-390으로 유럽 군용 수송기 시장 절반 장악
항공 분야에서는 브라질이 두드러진 성과를 거뒀다. 엠브라에르(Embraer)의 C-390 멀티미션 수송기는 유럽 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사실상의 표준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성공의 핵심 거점은 포르투갈이다. 엠브라에르는 포르투갈 항공기업 OGMA의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유럽 기업'이라는 법적·정치적 정체성을 획득했고, 포르투갈 정부는 NATO 표준화와 공동 판매를 주도하는 허브 역할을 자임했다.
최근에는 경공격기 A-29N을 NATO 규격으로 개량해 동유럽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는 전통적인 항공 전력 공급을 넘어 훈련기·대드론(Anti-Drone) 시장까지 영역을 확장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튀르키예, UAV·장갑차로 동유럽 공략…'유럽 내 제조국'으로 변신
세 나라 가운데 가장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튀르키예다. NATO 회원국이라는 정치적 지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실전 검증된 무인기 성능을 앞세워 동유럽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특히 바이카르(Baykar)의 TB2 드론은 이른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탁월한 전과(戰果)가 입증되면서 폴란드·루마니아·크로아티아 등지에서 잇따라 도입 계약이 성사됐다.
튀르키예의 또 다른 강점은 '현지화'다. 헝가리·루마니아 등에 생산 거점을 구축하고 합작법인을 통해 유럽 기업을 자국 공급망에 편입시키고 있다. 이는 가격 경쟁력과 납기 단축뿐 아니라 정치적 수용성까지 동시에 확보하는 다층적 전략이다.
이탈리아에서는 피아지오 에어로(Piaggio Aero) 인수와 레오나르도(Leonardo)와의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유럽 내 직접 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스페인과는 훈련기 공동 개발을 추진하며 기술 이전까지 병행하고 있다. 요컨대 튀르키예는 '수출국'에서 '유럽 내 제조국'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구조적 전환…'공급자→공동 개발자'로
세 나라의 동시 부상은 공통된 지정학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각국은 즉각적인 전력 보강을 요구했으나, 기존 유럽 방산 업체들은 납기 지연과 생산 능력 부족이라는 고질적 한계를 드러냈다. 미국 역시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기조 아래 공급 불확실성을 노출했다. 한국·튀르키예·브라질은 바로 이 간극을 파고들었다. 가격과 납기는 물론, 기술 이전과 산업 참여라는 카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유럽 수요국들의 요구를 정확히 충족시킨 것이다.
그 결과 유럽 방산 시장의 관계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 과거 '유럽 공급자 對 제3국 수입자'라는 수직적 구도는 해체 수순에 들어섰다. 이제 비(非)유럽 기업들이 유럽 내 생산과 연구개발을 직접 주도하는 '대등한 파트너'로 올라선 것이다.
이 흐름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차세대 전투기, 무인전투체계, 통합 방공망, 협동전투기(CCA·Collaborative Combat Aircraft) 등 미래 전장 기술 영역에서도 이들 3국의 참여와 영향력은 이미 확대되고 있다.
유럽 방산 시장은 더 이상 '유럽만의 시장'이 아니다. 한국·튀르키예·브라질이 새로운 경쟁 질서를 쓰는 가운데, 글로벌 방산 패권은 빠르게 다극(多極)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
































